화물차 노동자들이 "지금이 바로, 지입제 개선을 넘어서는 지입제 폐지 법안을 통과시킬 최적기"라며 지입제 폐지를 촉구했다.
화물연대는 1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은 화물노동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온 지입제를 개선할 것을 공표했다"며 "하지만 정기국회가 개회한 이후 첫 교통소위가 열리는 오늘 논의테이블에서도 제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의 종료를 앞두고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강경탄압으로 이에 맞섰다.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화물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의 역할을 했다. 국토교통부가 운임을 공표하고 화주가 이 운임을 주지않으면 과태료를 내게끔 했다. (관련기사 : 尹정부, 안전운임제 폐기 방침…화물연대 "주는대로 받으라는 건가")
하지만 3년 동안 시행됐던 안전운임제는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인해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됐다.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이후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대체해 화주의 책임이 대폭 약화된 '표준운임제' 도입을 발표했다. 동시에 화물기사들이 숙원사업으로 꼽아온 지입제 폐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입제는 화물차 기사가 자신의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하고, 영업은 사실상 독립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화물차 기사는 운송사에 영업용 번호판 대여 비용인 지입료를 낸다. 화물운송은 하지 않고 차주에게 지입료만 받는 지입전문회사가 화주와 화물차 기사 사이에서 지입료 장사를 하게 된다.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거치는 현 운송 구조가 만들어진 원인으로 꼽힌다.
지입제가 운송업체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화물운송 면허 총량 규제가 존재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화물차주가 운송업계에 발을 들이려면 통상 번호판 하나에 2000만~3000만 원의 지입료를 내고 운송사 소속이 돼 시장에 우회 진입한다. 신규 화물차의 진입을 막는 허가제와 수급조절제가 도입된 이후 시장 진입 장벽으로 지입제가 활용된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2월 6일 "운송 일감 제공 없이 번호판 장사, 도장값 등 여러 명목으로 실제 일하는 차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노동의 몫을 중간에서 뽑아가고, 이를 화주와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기생 구조를 타파하겠다"며 지입제 폐지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이 담긴 정부안(김정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지난 6월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된 뒤로 단 한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그간 안전운임제가 사라지고, 지입제는 존속한 화물 현장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화물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인천에서 20년 넘게 화물차를 몰았던 이호석 씨는 이날 회견에서 "얼마전 20년 넘게 일했던 운수회사에서 나와 동료들에게 번호판을 반납하라는 내용 증명을 보냈다"며 "내가 속한 운송사는 동종 업체 중에서도 가장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회사였는데, 금년 운송비 협상에서 우리를 비웃듯이 더 낮은 운송료를 제시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3억 원에 육박하는 화물차 비용에 영업용 번호판 사용료로 3000만 원을 냈고, 매달 30만 원씩 위탁 수수료를 내왔다"며 "생계 유지가 어려워 다른 운송사에서 일했더니 회사가 번호판을 반납하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씨는 "번호판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헐값으로, 시키는대로 하라는 게 회사의 입장"이라며 "내 돈 주고 산 내 차인데 주인의 권리 하나 없는 것이 지입차주의 인생"이라고 호소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입법안은 발의 후 정부여당의 성과를 치하할 때만 활용될 뿐 국회에서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가 양극단으로 분열되고 국회가 정쟁에만 골몰하는 이 순간에도, 화물차 번호판을 볼모삼아 화물노동자에게 온갖 횡포를 일삼는 운송사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물연대는 "집권여당 국민의힘과 거대야당 민주당"을 대상으로 하루 빨리 지입제 폐지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