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새만금 속도전’을 이야기할 때 중국 ‘푸동(浦東) 지구’와 비교했다.
푸동지구가 1990년에 시작해 새만금(91년 11월 착공)보다 1년 앞섰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대규모 개발이었다는 점에서 ‘누가 얼마나 빨리 뛰어갈지’ 흥미로운 경쟁 대상이 됐다.
새만금의 개발면적은 409㎢로, 서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푸동은 이런 새만금보다 3배가량 더 넓은 1210㎢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만금과 푸동신구의 비교는 무의미해졌다. 상전벽해의 한쪽과 엉거주춤의 다른 쪽을 비교하는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랬다. 1990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던 푸동지구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단기간에 금융과 상업 허브로 급부상했다.
푸둥 국제공항은 1997년 10월에 전면적으로 착공돼 2년 후인 1999년 9월 완공되는 등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을 전광석화처럼 끝냈다.
새만금이 방조제를 쌓아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소모적 논쟁에 몰두하는 사이에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푸동지구의 SOC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세계 자본을 흡입하는 데 열중했다.
푸동지구의 개발 역시 3단계로 나눠, 1단계인 지난 1991년부터 1995년에는 중국인과 외국인 투자유치 여건조성을 중심으로 속도전에 매진했다.
2단계인 1996년부터 2000년에는 중점 개발단계로 사회간접시설 확충에 진력했고, 마지막 3단계인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산업자본 유치와 금융·무역·과학기술 정보의 메카를 꿈꾸고 현실로 만들어왔다.
덕분에 푸동지구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글로벌 기업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마천루로 가득한, 말 그대로 천지(天地)가 개벽(開闢)의 현장이 된 지 오래됐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새만금은 어떤가.
지난 30여년 동안 끊임없이 각종 공방과 논란에 휩쓸려 ‘가다 말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올 6월말 현재 개발면적(291㎢)의 48% 수준인 140㎢ 정도만 매립돼 있는 상태이다.
비슷하게 출발한 푸동지구가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와 금융 중심지로 우뚝 선 사이 새만금은 아직 땅조차 절반 정도만 매운 상태이다.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새만금 기본계획’에 의해 총 4단계로 나눠 추진 중인 새만금개발 완료 목표시점은 2050년으로 축 늘어져 있다.
현재는 2단계로 오는 2030년까지 전체 개발면적의 78%까지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후 3단계로 2040년까지 87%를 개발하고, 2050년에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계산이다.
한쪽은 개발 10여년 만에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뤄냈고, 다른 쪽은 착공 60여년 만인 2050년에 그나마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역대 정부마다 각종 선거과정에서 “새만금 속도전을 통해 전북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활짝 열어가겠다”고 화려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진척이 없이 공사기간만 축 늘어지다 보니 총사업비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근에는 22조7000억원으로 급증해 있다.
국비 12조1400억원에 지방비 9500억원, 민간자본 9조7000억원 등으로, 이 가운데 지난해까지 방조제 공사(2조9000억원)를 제외한 용지 조성과 기반시설 구축, 수질 개선 등에 들어간 국비만 9조원가량 된다.
문제는 2050년을 목표로 하는 향후 추진계획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의문점을 찍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정부가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 이후 주요 SOC 예산을 대거 삭감하더니 아예 기본계획(MP)을 다시 그리는 등 새판을 짜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북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의 보복은 안된다”며 “새판을 짠다 해도 SOC예산을 복원해 최소한 새만금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완주·진안·무주·장수군)은 지난 8일 열린 국회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새만금 SOC 예산 삭감은 잼버리 파행 책임을 전라북도에 전가하기 위한 보복성 위법 삭감이자 예산독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새만금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래 7차례 수정됐고, 역대 정부에서 기본계획이 변경될 때조차 SOC 예산은 매번 초과 편성됐다”고 말했다.
안 의원의 말대로 새만금 주요 SOC 사업(10개)의 연도별 예산 확보 현황을 보면 지난 2017년 2647억 원에서 2020년엔 4594억 원으로 늘었고, 2022년엔 5677억 원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1479억원으로 최근 10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음은 물론 부처반영액 대비 정부 예산안이 22% 수준에 불과해 “사실상 예산 테러”라는 반발까지 나오고 있다.
부처에서 엄격한 타당성 검증을 거쳐 필요하다고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기재부가 난도질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인 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잼버리 파행 보복성이라는 전북도민들의 거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에 대해 “새만금 예산 삭감은 잼버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전제, “올해 전체적으로 예산이 대단히 긴축으로 작성됐고, 여건 변화에도 대응해서 제대로 된 그림 하에서 좋은 새만금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언급했다.
어쩔 수 없는 긴축재정과 5년 단위의 기본계획(MP) 변경 차원에서 새만금 SOC 예산을 삭감했다는 주장인데, 전북 정치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병도 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은 “다른 지역 현안의 내년도 예산은 새만금처럼 대규모 칼질당하지 않았다”며 “왜 전북 현안만 긴축재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안호영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일 군산 방문에서 ‘속도 있는 새만금 추진’을 강조했다”며 “그럼에도 잼버리 이후 2주 만에 주무부처와 협의도 없이 기재부가 SOC 예산을 기습 삭감했다. 삭감 동기, 내용, 절차, 삭감 폭을 보았을 때 재정당국이 국가재정법을 위반해가며 자행한 예산 폭거”라고 규정했다.
새만금은 20년 전만 해도 중국의 학자조차 무한 경쟁력을 인정한 바 있다.
중국과학원의 진펑쥔 교수는 지난 2005년 4월 1일 국토연구원이 주최한 ‘대규모 간척용지의 장기활용 방향모색을 위한 국제세미나’에 참석, ‘황해권 시대의 새만금 역할과 기능’을 주제로 발표한 자리에서 “거시적 관점에서 새만금지역이 지니는 잠재력과 의미가 크다”며 “튼튼한 한국경제의 기초 하에서 새만금에 대한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외국의 교수가 정부 투자를 촉구하고 있을 정도로 새만금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지대했던 것이다.
이보다 2년 전인 2002년 11월에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예푸칭 박사(세계경제연구실)가 중국 인민일보 사장보, (사)새만금범국민협의회 공동 주최의 ‘한·중 환황해경제권 투자 및 새만금 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당시 “새만금과 중국 상해의 푸동이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하면 세계 경제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며 “새만금은 앞으로 한·중 경제무역합작에서 ‘물류’와 ‘거래’를 중심으로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새만금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지역개발 전문가들은 이제 더 이상 새만금 SOC 투자를 망설일 시간도, 미룰 시간도 없다고 말한다. 선행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승수효과를 누리려면 후속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재철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장은 “우리나라는 초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낀 '넛 크랙커(Nut Cracker)' 상황에 놓여 있다"며 “기업이 바글거리는 새만금을 만들어 국가경쟁력과 균형발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새만금 SOC 예산은 차질없이 추진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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