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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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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을까

[노동하는 자유인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③

손흥민의 토트넘이 자본주의 초기의 원시 노동공동체 운동이었다고?

자본주의 초기에 농촌에서 강제로 추방되어 도시로 몰려든 영국의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만 하는 노동노예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 형성된 도시 지역별로 노동자들끼리 모여 우애조합과 독서클럽, 축구클럽 등을 활발하게 조직해 스스로 새로운 노동자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자 했습니다.

(* 오늘날 손흥민의 토트넘,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클럽은 그 뿌리가 지역 노동자 축구클럽입니다. 물론 21세기 영국 노동자들은 축구 경기장에서의 축구 경기 관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입장료 자체가 수십만원이나 되는 귀족 상업 축구로 변했지만 말입니다. 마이크 데이비스, 『인류세 시대의 맑스』, 창비, 2020.)

그리고 노동조합을 결성해 연대와 '쪽수'의 힘으로 파업 등 단체행동을 통해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운동을 벌여나갔습니다. 투표권 확보 투쟁인 차티스트운동과 노동자 정당 운동 또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고 새로운 노동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었습니다.

로버트 오언의 뉴라나크 협동조합 방적공장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협동조합 생산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놀라운 성공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거리, 하루 10시간 반의 노동, 세계 최초로 설립된 유치원과 학교에서 공부하는 300여명의 아이들, 강제적인 질타 없이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 민주적인 근로규칙, 생필품 판매점과 주방-식당 등 공동시설은 예전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공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뉴라나크는 사회 개량의 근거지가 되었다. 1815년에서 1825년 사이 유럽 각국에서는 왕족과 귀부인들, 실업가와 작가들, 성직자와 개혁주의자 등 2만여명의 사람들이 뉴라나크를 찾아와 이 희귀한 사회개혁의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 윤형근, 협동조합의 오래된 미래: 선구자들, 27~28쪽, 그물코, 2013.

노동자들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기치 아래 추구한 사회주의 혁명은 1919년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한때는 새로운 사회와 공동체 국를 열어 제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9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함께 현실 사회주의는 헛된 꿈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소비에트연방도 산업화와 개발-성장을 추구하기는 자본주의와 매한가지였습니다. '자본신' 대신 혁명신, 이데올로기신, 당(黨)신을 내세웠지만 철의 장막 안에서 노동자들은 자유인이기는커녕 당과 국가의 노예 신세일 뿐이었습니다.

각자도생의 노동자들, 각자도생의 무기력한 한국 노동운동

구소련 해체 후 세상은 이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시장만능주의의 자본 세상으로 무한질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각국의 공산당 또한 몰락하고 사민주의 정당이나 이른바 진보세력들도 사실상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이른바 '제3의 노선'으로 전향해 보수니 진보니 하는 구분 자체가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한국도 1992년 김영상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세계화추진위를 만들어 금융을 개방하더니 곧바로 IMF 사태를 맞았습니다. 이 때문에 집권한 김대중은 한 때 박현채의 자립경제론과 민족경제론을 수용하던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신자유주의를 더욱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상한 이름의 정책과 비정규직 노동자도 이때부터 생긴 것입니다.

21세기 들어 이른바 진보-보수 정권이 거듭 오락가락하지만 '자본신'의 무한 성장과 질주를 도와줄 뿐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고 노동자와 인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과 맞서는 정권은 없었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만이 오롯이 남은 세상에서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노예 신세에서 혼자서라도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자본신에게 팝니다. 로또를 사고 주식 데이트레이딩을 하고 강원랜드를 수시로 드나듭니다. 헛된 꿈임을 알면서도 달리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가장 강력한 기반인 돈신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전세계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투쟁은 자본의 힘을 누르기에는 근력이 너무 없어 보입니다. 노동노예, 채무노예의 사슬을 벗는 해방의 삶을 쟁취하기에는 너무 무력해 보입니다.

근 3세기에 걸쳐 축적된 자본의 규모가 이제는 국민국가를 훌쩍 뛰어넘어 어마어마한 천문학의 숫자로 그야말로 전지구를 뒤덮는 괴물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용화폐는 이미 국가가 아니라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간 지 오래이고 전 인류를 태어날 때부터 채무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자본가들에게서 돈을 받는 언론과 대학 등은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와 극단의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를 화려하게 변형시켜 신기루처럼 끊임없이 노동자들에게 주입시킵니다.

디지털 자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넷플릭스 등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노동자들을 마취시키고 무력화시키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인민들을 디지털 경제에 중독시켜 디지털 노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디지털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 데이터 자산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공짜로 기부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들 디지털 자본가들을 부러워하고 존경의 눈으로 우러러봅니다. 또는 푼돈이라도 긁어모아 이들의 주식에 투자합니다.

기후재난과 인공지능의 시대, 이런 극단의 불평등과 노동노예의 현실에서 그러면 도대체 자유인으로서 노동자들의 해방된 삶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2022년 7월 유최안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대우조선해양 거제 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 중인 대형원유운반선 철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둔 채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투쟁을 벌였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연대는 불가능할까

2022년 6월 22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40)이 '스스로 만든 감옥' 농성 투쟁을 벌였습니다.

거제옥포조선소의 용접공인 그는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선박에 가로, 세로, 높이 1m의 철장을 만들어 시너통과 함께 그 안에 몸을 구겨 넣고는 철장을 용접해 버렸습니다. 0.3평 '철장 감옥' 안에 자신을 가둬버린 것입니다. 유최안이 철장 밖에 내건 작은 손팻말의 구호는 간명했습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유최안의 요구 조건은 그야말로 소박했습니다. 회사가 이전에 약속한 것만 이행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강렬하게 상징하는 퍼포먼스 투쟁이었습니다.

2016년 조선업계 불황으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 때,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직원들이 조선업의 고통을 분담하자며 임금을 10% 삭감했습니다. 시급 8,300원의 비정규직 노동자 유최안은 월급 대신 상여금 150%를 삭감했습니다. 1년 뒤 남은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키자고 해서 시급은 10,300원이 되었지만 상여금은 사라졌습니다. 조선소에서는 20년 전에도 시급이 1만 원이었습니다.

2021년부터 조선업계는 다시 호황을 맞이했습니다. 흑자를 기록한 회사는 고통을 분담했던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이자까지 계산해서 삭감했던 임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외면했습니다. 익숙한 분할지배 노동통제 전략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회사를 위해 고통분담을 같이 했지만 회사의 약속은 비정규직들에게는 휴지조각일 뿐이었습니다. 임금은 여전히 동결 상태였고 노동자들의 퇴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노동자는 부족한데 이전과 똑같은 작업량이 부과되면서 업무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산재사고도 급증했습니다.(박정연, '0.3평 철장에 자신을 가둔 노동자 "살 길을 열어달라": 유최안 부지회장 "돈 몇푼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2022. 7. 19.)

6월 2일 시작한 파업은 51일만인 7월 22일 끝났습니다. 회사와의 협상에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31일간의 감옥투쟁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우조선해양 1만 1천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측의 공격보다 정규직 노동자 4,800여 명의 '폭력'에 더 깊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 일부는 하청노동자들을 '하퀴벌레'(하청+바퀴벌레)라 부르며 욕설과 폭력을 수시로 자행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일부 공정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그만큼 연장 휴일근로를 할 수 없게 돼 자신들의 임금 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유였습니다.(박태우, 서혜미, '"하(청+바)퀴벌레" 정규직 모욕이 더 아팠다, 대우조선 트라우마', 프레시안, 2022. 7. 25.)

정규직 중간관리자로 구성된 '현장 직반장 책임자 연합회'나 '민주노동자협의회' 등은 농성 천막과 현수막을 커터칼로 찢거나 철거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얼린 생수병을 하청노동자들에게 던지기도 하고 여성 하청노동자를 질질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청노동자들 다수가 다쳤습니다.

이들은 비정규직의 파업이 절차를 거친 합법 파업이었음에도 "청장 방문이 아니라 경찰을 투입하라", "불법파업 즉각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내걸고 파업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손실 때문에 손해를 입어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면서도 정규직들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비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퇴를 하면 모두 유급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다소 길게 설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늘날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본보기 사례일 뿐입니다. 노동자들은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 생산직과 사무직, 여성과 남성 등 직종과 성별, 인종 등으로 갈갈이 찢겨져 있습니다.

연대와 단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습관처럼 구호를 외치고 있긴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남은 건 개인별로 첨예한 이해관계 뿐입니다.

연대를 잃어버린 노동자와 노동조합운동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악마화와 노조 해체, 무력화 공격은 이미 후보 시절부터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대응은 속수무책입니다. 연대투쟁은 말로만 그치고 공격당한 노동조합별로 고립된 개별 투쟁만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나 지역 주민과의 연대 투쟁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2022년 12월, 조직력이 그래도 강하다고 알려져 있던 화물연대 파업은 업무복귀 명령까지 꺼내든 정부에 대해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정부는 건설노조를 조직폭력배로 규정하고 '건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윤석열 경찰은 2022년 12월 8일부터 2023년 6월 25일까지 200일 동안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벌여 1,484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이 가운데 132명을 구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23년 5월 1일 건설노조 조합원 1명이 분신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자본의 하청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의 공격에 대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왜 이렇게 개별화되고 무력한 것인지 진단하고 성찰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입니다. 그런 진단과 성찰의 결론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연대 활동 강화, 시민사회와의 소통, 노동조합의 지역연대 강화 등을 처방으로 제시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입니다.(민주노총·비판사회학회·참여연대·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국산업노동학회, 윤석열정부 1년 노동·사회정책 평가 토론회, 끝없이 퇴행하는 윤석열정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3. 5. 9.)

쉽게 말해 쪽수를 늘려야 한다, 단결력을 높여야 한다, 우호세력을 확보해야 한다,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을 육성해야 한다 등등의 해결책은 모두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연대를 강화하고 우호세력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중요할 것입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왜 산별을 추진했을까

한국의 산업화는 서구 산업화 따라잡기에서 시작해 한국 나름의 독특한 압축 성장 방식을 창조해 자본주의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노동운동 또한 서구 노동운동 따라가기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나름의 독특하고도 강력한 투쟁의 노동운동 전형을 만들어 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서구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운동 경험은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배워야 할 검증된 선례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같은 동양문화권이면서 먼저 서구화를 달성해 제국주의 침략 전쟁까지 일으켰던 일본의 노동운동도 식민지 시절부터 한국 노동운동에는 가까운 타산지석이었습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아이를 업고 파업현장과 경찰서를 들락거렸던 가족투쟁 같은 투쟁방식도 일제 식민지 조선의 노동운동 경험과 함께 일본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참조한 바가 컸습니다.

산별 노동조합이 강력한 교섭력과 투쟁력을 갖는다는 사실은 서구 노동운동사에서 이미 입증된 바입니다. 6.25동란 후 한국노총이 기업별 노조 체제임에도 기업별 노조의 산별연맹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로 1995년 결성된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부터 줄곧 산별노조 건설을 부르짖어 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은 조합원의 90%가 산별 소속으로 전환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연대 틀은 무슨 만고불변의 고정된 진리같은 게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연대와 연합은 시대와 상황에 걸맞게 각 나라의 조건에 맞춰 변해야 하고 또 변해 왔습니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의 시대, 소용돌이의 대격변이 진행되고 있고 체제전환의 요구가 밑에서부터 꿈틀거리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연대 틀은 변해야 하고 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산별노조는 무슨 알라딘의 램프처럼 마법의 주문이 아닙니다. 만병통치약도 아닙니다.

한국의 산별노조 현실은 '무늬만 산별'일뿐 기업별 노조의 관행과 단체교섭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가 전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서구의 산별 노조 단체교섭과 투쟁과는 거리가 멉니다.(노동전문가 33인 지음,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매일노동뉴스, 2013.)

오히려 자본의 하청 언론들이 정규직 중심의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을 비정규직과 갈라쳐 기득권 노조, 귀족노조로 공격해도 딱히 적절한 대응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늘날 많은 국민들이 대기업노조를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외면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만 추구하는 노동귀족 이익집단으로, 민주노총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연대'의 프레임은 정부-자본에 대한 분노와 책임보다 오히려 대기업노조의 책임을 부각하는 역효과만 낳았을 뿐입니다.(조효래,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동학」, 『산업노동연구』 24권 1호, 2018.)

그리고 노동조합을 강하게 압박하고 탄압하면 할수록 대통령과 정부의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게 현실입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산별노조 운동의 기반으로서 지역연대 강화 전략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이름뿐인 지역연대'라는 솔직한 평가 그대로 노동조합의 지역연대 운동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건설노조와 플랜트 건설노조 등의 지역연대 투쟁 성공 사례 등도 다른 지역으로 그렇게 널리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 이병훈 외, 『산별노조운동의 지역연대 강화 전략』, 민주노총, 2014. 김현우 외,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개입 전략』,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6. 윤영삼·최성용, 「노동조합 지역조직의 실태와 활성화 방안」, 『인적자원관리연구』 21권 5호, 인적자원관리학회, 2014. 조효래, 「지역노동운동 활성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사례」, 『산업노동연구』 26권 3호, 산업노동학회, 2020.)

1920년대 후반 일제의 가혹한 노동탄압 속에서도 원산 지역의 전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조직해 막강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자랑했던 원산노련같은 조직활동과 투쟁은 엄두조차 못낸 것으로 보입니다.(한국노총, 『한국노동조합운동사』, 1979.)

실패한 한국의 산별노조운동

경로의존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산별 모색은 일종의 경로의존성이라는 관성과 습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25동란 이후 70여년 동안이나 산별 체제를 모색했는데도 여전히 기업별 노조 체제에 머물러 있다면 그런 산별노조운동은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 산별노조운동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목표입니다. 산별노조는 어쩌면 산별이 잘 안돼서 노동조합운동이 안된다는 순환론의 핑계거리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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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직 제조업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한국도 산업 자체가 제조업에서 점차 디지털경제와 서비스 산업화로 급변하고 있는 흐름을 피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낡은 문법의 산별운동을 금과옥조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21세기 기후재난과 불평등의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뒤로 돌아 과거의 신기루를 쳐다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산별노조를 해체하자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그동안 확보해 둔 근거지를 수성하기만 하는 닫힌 성 안에서의 투쟁은 식량과 무기가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대장정의 결단과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입니다.

1998년 정권교체와 함께 민주와 독재의 대립구도는 시대 변화에 걸맞지 않는 낡은 프레임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와 어용의 노동조합 대립구도 또한 낡은 프레임으로 변했습니다. 진보-보수의 프레임도 비슷비슷한 2개의 거대 여의도 엘리트 보수정당이 번갈아 정권을 차지할 수 있게끔 그들만의 '적대적 공생'을 키워줄 뿐입니다.

노동자들과 모든 인민들의 삶을 해방된 자유인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한국 노동운동의 활로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글은 한국ILO협회의 <국제노동> 255호[2023년 여름호]에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했음을 밝힙니다.)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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