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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스러웠지만 의미를 찾은 잼버리…4년후 다시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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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스러웠지만 의미를 찾은 잼버리…4년후 다시 가고 싶어요"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15] 윤일호 전북 장승초등학교 선생님의 잼버리 체험기

야생(?)에서 살아 돌아온 잼버리 대장의 생환기

잼버리가 끝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막연하게 언론과 방송 이야기만 듣고 비난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준비나 운영에서 아주 소홀한 부분이 크지만 그 안에서 지냈던 대원과 대장 이야기는 일부러 듣지 않으려는 건지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대원들과 참가했던 대장으로 그때를 떠올리며 객관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쓴다.

“잼버리 갔다면서요? 살아있는 거예요? 날도 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아요?”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하는 도중 낯익은 번호의 전화벨이 수시로 울린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대원들과 재미나게 활동하고, 저녁에도 잘 자고 있어요.”

▲윤일호 전북 장승초 교사 ⓒ프레시안

언론이며 방송에서 하도 시끌시끌하니 겸사겸사 내 소식과 잼버리 소식도 살필 겸 아는 분들이 전화를 한다. 어쨌든 마음 내준 것이 고마워 이곳 분위기며 대원들 지내는 이야기로 반갑게 통화를 했다.

스카우트 없던 전북 산악지역 스카우트대장 맡아 새만금잼버리 참가

몇 해 전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역에 스카우트 지역대가 없어 세계 잼버리 참가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드넓은 오지랖으로 덜컥 진안고원 지역대를 맡았다.

뜻있는 일이지만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생긴 셈이고, 지역대를 함께 운영할 대장이 있어야 하니 부담 또한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스카우트 활동이 주로 주말에 이루어지니 더욱 부담이 컸다.

하지만 대원들과 활동하면서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하길 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세 해를 운영하며 이러저러한 일이 참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지역대를 지키며 대원 34명, 대장 3명이 이번 세계 잼버리에 참가하게 되었다.

8월 1일, 새만금으로 향할 때만 해도 대부분 12일을 밖에서 지내본 경험이 없기에 ‘정말 길겠구나’하는 걱정을 했지만 웬만한 야생(?)에 크게 불평 불만이 없는 나로서는 ‘어떻게든 지내겠지’하는 생각이 컸다.

한 학기 학교에서 빡세게 지낸 뒤라 방학 동안 뒹굴뒹굴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말이 12일이지 짧지 않은 기간이기에 대원들은 다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의 엄청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그럼에도 잼버리 기대감인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대원 9명, 대장 1명인 10명으로 이루어진 단위를 한 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반이 네 개 모여 하나의 유닛(40명)을 이룬다.

내가 참여한 진안고원지역대는 네 반 38명으로 두 사람 부족한 한 유닛이다. 더 정확하게 백제 허브 4서브 29유닛이다. 한 서브에 50유닛이니 약 2000명 가량 모여있는 셈이고 백제 허브에만 네 개의 서브가 있으니 8000명이 한 허브에 있는 거다. 또 전체 허브가 총 다섯 개이니 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높게 자란 풀과 비로 물 안 고인 자리 골라 텐트 치기

첫날 낮에 차를 타고 도착했을 무렵, 드넓은 새만금 뻘에 펼쳐진 형형색색 텐트의 어울림은 '멋있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밖에서 구경만 했다면 그런 장관이 따로 없었을 텐데. 하지만 도착해서 텐트를 치는 순간부터 정리 정돈을 마치는 몇 시간 동안 엄청난 무더위를 실감했다.

거친 호흡과 지치는 느낌 그리고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높게 자란 풀과 며칠 전에 내린 소나기 영향으로 아직도 물이 고여있기에 텐트 칠 곳을 살펴야 하니 대원들과 텐트 치는 일이 보통 이상이었다.

영내·외 활동을 제외하고 큰 몽골 텐트 아래서 대부분 활동해야 하지만 뜨거운 태양이 바로 뻘로 내리쬐고 그 빛이 그대로 반사되어 대낮의 텐트 안은 그야말로 들어갈 수 없는 한증막 수준이었다. 대원들은 이튿날부터 아침에 떠오르는 따가운 태양을 피해 몽골 텐트의 조각 그늘을 찾아 의자를 옮기기 바빴다. 결국 며칠 견디다 못해 부안 읍내에서 차광막을 사와 설치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우리나라 대원이었기에 이런 방식이 가능했겠지만 다른 나라 대원들은 어땠을까?

언론에서 날마다 보도했던 것처럼 냄새나고 지저분한 화장실, 간이 천막이 처진 불편하고 정돈되지 않은 샤워장, 설거지와 빨래 오·폐수, 음식물 등 무분별하고 원칙 없는 처리, 수거해가지 않아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재활용 처리장, 마치 우수한(?) 수돗물을 자랑이라도 하듯 전혀 주지 않았던 생수 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개영식 환영사 ⓒ중계화면 캡처

최악의 개영식, 새벽까지 싸이렌 소리

기쁨과 설렘의 자리인 개영식은 그야말로 최악의 자리였다.

대통령 방문으로 검문검색대가 설치되면서 들어가는 데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수만 명의 대원과 대장들을 모아 놓고 이어지는 여러 내빈의 축사는 예정했던 시간을 훨씬 넘겨서 까지 이어졌다.

결국 이런 결과로 수십 명의 온열 질환 환자가 생겼고 수시로 싸이렌이 울리는 비상 상황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리 대원들은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전개되니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둘째 날,

잼버리 개영식이 끝나고 대통령의 지시로 셋째 날부터 당장 가장 불편했던 지저분한 화장실과 샤워실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원한 생수와 얼음이 유닛마다 공급되었다.

하지만 대원들이 가장 불편했던 것은 유닛에 전기가 전혀 공급되지 않아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고등학생에게 무더위와 여러 불편함은 충분히 참을 수 있지만 휴대폰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다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 도저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가장 나쁜 상황이었다.

어떤 대원은 울먹거리며 배터리 충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집에 가겠다고 하기에 배터리를 빌려주며 겨우 달래어 중도 퇴소를 막을 수 있었다.

날마다 색다른 경험, 나름 즐기는 대원도 많아

겉으로 보이는 이런 악조건은 사실 대부분 대원과 대장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고작 영내 활동은 하루밖에 하지 못했고, 영외 활동만 며칠 했지만 이런 악조건이 잼버리 활동의 전부는 아니었다. 다른 나라 대원과 교류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는 대원, 날마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나름 즐기는 대원도 많았다.

전 세계 스카우트 청소년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과 문화, 정치적인 이념을 초월해 꿈과 우정 그리고 도전을 나누는 잼버리 취지에 맞게 어려운 악조건에서도 주어진 상황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그나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대원들은 다른 유닛을 방문해 항건과 가방, 패치를 교환하기도 하고 그늘막 아래에 자판을 펼친 것처럼 패치를 쭉 늘어놓고 다른 나라 대원 패치와 교환하기도 했다. 물론 다른 나라 대원들도 우리 텐트에 방문해 반갑게 인사하며 가져온 물건과 우리 물건을 교환하기도 했다.

또 곳곳에 현란한 불빛 아래 모인 수백 명의 대원들 속에서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며 신나는 교류를 진행했다. 이런 광경은 마치 대낮 더위에 지친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듯 수많은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기쁨과 열정의 시간을 선사했다.

"언론과 방송에서 너무 과장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일요일에 펼쳐진 문화 교류의 날에는 윷놀이, 공기, 딱지치기, 한복 입어보기, 소떡소떡 등 여러 체험 거리를 자체적으로 준비해 다른 나라 대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마당을 열었다. 다른 나라 대원들은 아주 흥미로운 시선으로 전통 놀이를 체험하거나 한복을 입어 보면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먹을거리로 소떡소떡 200개를 준비해 외국 대원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지시 체계가 전혀 없는 심각한 상황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새만금 잼버리를 제법 흥미롭게 참여하는 대원들은 "언론과 방송에서 너무 과장하는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밝힌다.

한 주가 지났을 무렵 새만금에 수십㎜의 비가 예보되었다. 비상 상황이었다. 유닛마다 삽으로 고랑을 파고 비상 상황을 대비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비는 오지 않아서 어려운 상황은 넘겼다.

거듭되는 비상 상황, 결국 퇴영 결정

하지만 곧이어 태풍 ‘카눈’이 다가왔다. 결국 퇴영이 결정되었다. 이제 조금 다른 나라 대원들과 친해지고 있었는데 한 주 만에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컸다. 또 겨우 영내 활동은 하루밖에 하지 못했다. 여러 활동과 많은 경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야 벌써 한다니.

8월 8일 화요일 새벽 5시.

대원과 대장들이 퇴영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텐트부터 걷어야 했다. 바삐 움직여야 하기에 아침 식사는 간단한 간식으로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어제 저녁에 가는 장소만 알게 되었을 뿐 어떤 차를 타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정말 지시 체계가 전혀 없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텐트를 걷고, 파레트도 한곳에 모았다. 남은 음식은 반납하고 짐이 많아 도저히 가져갈 수 없는 것은 한곳에 모아놓았다.

▲조기 퇴영을 준비하는 각국의 잼버리 대원들 ⓒ프레시안

새벽부터 퇴영하는 차량이 줄을 이었고 형형색색의 텐트가 걷히면서 조금씩 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대도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어떤 차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

어떤 차를 타야 하나? 땡볕에 기다리면서 기사님께 '태워달라' 사정

바리바리 싼 짐을 들고, 메고, 이고 4서브 옆 도로로 갔다. 대원과 대장들을 싣기 위한 차량이 줄을 이었다. 난리법석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어떤 차를 타야하는지 모르니 기사님께 태워달라고 사정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차량 배정도 되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카우트 정신의 기본이 바로 ‘준비’인데. 서브캠프에 사정을 말했지만 우리가 탈 수 있는 차량은 없었다. 결국 한 시간 넘게 대원들은 땡볕에서 기다려야 했고, 대장들은 차량을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어이없는 상황으로 어찌어찌 차량을 구했고, 차에 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대원과 대장들이 길에서 어떤 차를 타는지도 모른 채 땡볕에서 기다리는 상황이 참 난감 그 자체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교회 수양관이다. 우리가 왜 경기도 가평까지 가야 하는 지 모른다. 본래 계획대로 라면 비상 상황 시 조직위에서 대피 장소를 전북 도내 여러 곳에 분산 수용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섯 시간 차를 타고 드디어 경기도 가평군 교회 수양관에 도착했다. 행안부, 가평군 관계자, 경찰, 보건소, 소방서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소통하고 준비했더라면 새만금잼버리장도 괜찮았을 것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기에 이렇게 소통하고 준비했더라면 새만금 잼버리장도 괜찮았을 텐데 왜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을까. 어느 곳도 책임이 없다고만 할 뿐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

오랜만에 텐트를 벗어나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준비하지 않고 누군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이 얼마 만인가.

또한 이튿날부터 가평의 유명 관광 명소를 둘러보고,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았지만 수양관에 있는 내내 사실 마음은 편치 못했다.

대원들도 새만금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차라리 잼버리 대원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던 시간이 그립다고 했다.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했던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볼썽사나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우리 대원들은 배우고 깨치며 새로운 경험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을 그 험한 새만금에 다시 가고 싶다니.

4년 후 폴란드에서는 제대로 즐길 것 같아

드디어 마지막 금요일, 오전에 짐 정리를 하고 차에 짐과 몸을 실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한다. 대원들이 기다리는 케이팝 콘서트와 퇴영식을 해야 한다.

훌륭한 케이팝 콘서트는 대원들에게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조기 퇴영으로 다른 대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 대원들의 아쉬움도 컸다.

얼마나 아쉬움이 깊었는지 고1인 J와 Y는 “군대 입대를 한 해 늦추고라도 4년 후에 폴란드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얼굴이 새까맣게 탔네.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예,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아주 재밌었어요.”

보는 사람마다 2주간 기른 수염과 새카맣게 탄 내 얼굴을 보며 위로의 인사를 건넨다. 물론 나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 대답했다.

지극히 교육적인 자리에 전혀 준비하지 않은 무책임한 어른들 덕(?)에 고생이 아주 많았지만 그래도 대원과 대장들은 그 힘든 속에서 의미를 찾은 것이다.

J와 Y 말고도 대원들 가운데 여러 명이 4년 후 열리는 폴란드 세계 잼버리에 대원이든, IST(International Service Team-자원봉사자로 스카우트에 참여한 대원과 대장을 돕는 사람)든 꼭 참가하고 싶단다.

무더위에 지칠 때 죽도록 집에 가고 싶다던 ○○이는 “아! 막상 집에 가려니 아쉬워요”라고 한다.

물론 나도 힘든 마음은 금세 어디로 가고, 다음에는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 다시 한번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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