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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최악의 참사…'버려진 건물'서 불 나 빈민 최소 74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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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최악의 참사…'버려진 건물'서 불 나 빈민 최소 74명 사망

무단 거주하던 이주민·노숙자 등 참변…정부, 아파르트헤이트 폐기 무렵 백인·기업 대거 떠나며 공동화된 지역 관리 않고 손 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방치된 건물에서 불이 나 무단 거주하던 빈민 최소 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 중심부에 버려진 건물이 수백 채에 달해 재발 방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 방송, <월스트리트널>(WSJ) 등을 보면 8월31일(현지시각) 새벽 1시께 요하네스버그의 5층 짜리 건물에서 불이 나 어린이 12명을 포함해 최소 74명이 숨지고 60명 이상이 다쳤다.

건물 1층에서 시작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요하네스버그시 소유지만 2019년 이후 방치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해당 건물에서 거주자들이 난방 및 요리 등을 위해 사용한 촛불이나 비전문적으로 끌어 온 전기 등이 화재를 일으켰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200명 이상이 거주하던 해당 건물은 일자리와 교통비 문제로 도심과 가까운 곳에 거주해야 하지만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이민자, 노숙자 등 빈곤층이 무단 점유해 사용하고 있었다.

한밤중 덮친 화재에 놀란 주민들은 창문 밖으로 깔개를 던져 타고 내려 오거나 심지어 맨몸으로 뛰어내리며 탈출을 시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불을 피해 창 밖으로 몸을 던진 이들 중 적어도 한 명의 10대 소녀가 숨졌다고 그의 친구를 인용해 전했다.

장기간 방치돼 화재 대비 시설을 기대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당초 거주 목적이 아니라 정부 사무실로 사용됐던 이 건물 곳곳에 도난 방지용 문이 설치 돼 있어 주민들이 다른 층으로 대피하는 것이 제한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1층의 잠겨 있는 도난 방지용 문 앞에서 복수의 주검이 발견되기도 했다.

탄자니아 출신 이민자로 이 건물에서 가족과 함께 3년 간 무단 거주한 무시 하미사는 이날 새벽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 즉시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BBC에 말했다.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졌지만 그는 살아 남았고 방에 남은 아내가 한 살 배기 아이를 창 밖으로 던진 것을 받아 냈다. 이후 아내도 깔개를 고정한 뒤 창 밖으로 던져 타고 내려 온 끝에 목숨을 건졌다.

하미사는 "다른 사람들도 뛰어 내렸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주검이 너무 많았다"며 울먹였다. 그는 자신 외에도 수많은 탄자니아 이민자들이 해당 건물에 거주했지만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건물은 요하네스버그 시내에 방치된 600채 이상의 건물 중 하나다. 1990년대 흑백분리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종료 무렵 백인 부유층과 기업이 시내를 떠났고 동시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 흑인들이 기회를 찾아 요하네스버그로 몰려 들며 주거난이 심화됐다.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 더 가난한 인근국으로부터의 이주도 끊이지 않았다.

수백 채의 건물이 비어 지역이 공동화되자 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해 세금이 건물값을 초과하는 사태까지 일어나자 건물주들은 세금을 미납하며 건물을 사실상 방치하기를 선택했다. 세금이 미납되자 시는 수도, 전기, 쓰레기 수거 등의 주요 서비스를 차단했고 이 지역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방치된 수백 채의 빈 건물과 주거난이 만나 빈 건물에 대한 무단 거주가 늘었다. 남아공에선 불법퇴거방지법(PIE)에 의해 지방 당국이나 소유자가 대체 거주지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무단 거주자일지라도 퇴거시킬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주거권 단체들을 인용해 정부가 공공 임대 대신 대부분의 남아공인들이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민간 임대 주택 건설에 중점을 둬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요하네스버그의 노숙자 규모는 1만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방치된 건물을 무단으로 점유해 불법 거주자들에게 임대료를 받는 범죄 조직까지 생겨났다. 이번에 불이 난 건물 거주자들 또한 이러한 조직에 착취를 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로이터> 통신은 요하네스버그가 속한 하우텡주 주거 부서 책임자 아이작 메일이 "대부분은 아니지만 이러한 건물 중 일부는 취약한 사람들에게 임대료를 갈취하는 범죄 조직의 손아귀에 있다"며 사망자 중 일부가 이들로부터 부당하게 임대료를 징수당했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과거 흑인 노동자들의 이 지역 출입을 통제하는 정부 부서가 들어서 있던 이 건물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폐기 뒤 1994년부터 여성과 어린이 긴급 쉼터로 사용됐지만 쉼터를 운영하던 비영리단체가 2019년 이전한 뒤 시가 이 지역의 위험한 환경을 구실로 건물 관리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그 뒤 한 무리의 남성들이 건물을 점거해 아직 거주 중이던 여성들에게 임대료를 요구했고 골판지 등으로 조악하게 공간을 분할해 더 많은 사람들을 채워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일당 140명이 2019년 10월 한 차례 체포됐지만 지난해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이 지역 노숙자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 요하네스버그 홈리스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메리 질레트 드 클레르크는 <뉴욕타임스>에 "더 많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라며 이번 화재는 "예고된 사태"였다고 비판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방문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번 사태는 "도심의 주거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자들이 이러한 건물을 점거하고 도심에 숙소가 필요한 취약한 이들과 가족들에게 임대료를 받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 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8월31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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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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