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던 무상법현 스님의 글이 올라왔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라 열심히 읽고 느낌이 있어 스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일 칼럼에 스님 글을 조금 훔쳐 가려니 양해하시라고 했더니, “좋다.”고 하면서 자신의 글이 남의 글의 원천이 된다니 고맙다고 한다. 우리말과 한자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감자꽃이야기〉
하얀꽃 핀건 하얀 감자 / 캐보나 마나 하얀 감자 / 자지꽃 핀건 자지 감자 /캐보나 마나 자지 감자
권태응(1918~1951)의 동시 감자꽃. 조선인의 자주의식을 위해 지은 시. 뿌리와 꽃이 닮았다는 표현을 통해 창씨개명으로 조선의식을 지우려는 일제에 저항했다. 흰 꽃 흰 감자, 자줏꽃 자주색 감자는 살펴본 이만 알 수 있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전생이야기나 인과응보이야기 <중략> 내가 좀 살았던 절 옆에 있던 자지동천(紫芝洞泉)은 지자체에서 자주동천으로 바꿨더라. 감자이야기는 어려서 읽은 기억으로 썼다. 충주에 <감자꽃> 시비(詩碑)가 있다. 시비(詩碑)를 많이 세워야 하는데 시비(是非)다툼이 많아서 걱정이다. 비빌(빌) 언덕이 없으면 아름답게 가꿀 빗(빗)도 없기 마련일까?(무상법현 스님의 글에서 인용함)
위의 글은 참으로 우리말의 중의성(두 가지 의미를 지님)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시에서 그냥 ‘자짓빛(짙은 남빛을 띤 붉은 빛 =>규범표기는 자줏빛)’이라고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음가(音價)가 남성의 성기와 같아서 그런지 슬그머니 ‘자주색(紫朱色 : 짙은 남빛과 붉은 빛이 섞인 색깔)’로 바뀌었다. 위의 스님이 살던 절 옆에 있던 자지동천(紫芝洞泉)도 자주동천으로 바꿨다고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영지의 효능이 좋아 자지색(紫芝色)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다. 지초(芝草)의 효능으로 인해 ‘지(芝영지를 포함함)’라는 글자를 많이 써 왔다. 사람들이 고상해지면서 성기와 관련된 용어는 다른 말로 고치는 경향이 생겨났다.
언어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맞지만 지나치게 한자화하는데 따른 부작용도 있고, 지나치게 한글화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위의 경우는 단어를 새롭게 만드는 정도의 의미 변화가 있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말을 그대로 한자화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만 있는 한자를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신돌석’ 장군을 한자로 써야 하는데 중국어에는 돌이라는 글자가 적당하지 않아서 ‘돌 석(石)’ 자에 ‘ㄹ’ 받침을 나타내는 ‘을(乙)’ 자를 밑에 넣어 ‘돌석(乭石)’이라 썼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논이나 밭의 구분이 없이 밭(田)이라고 표기하는데, 우리는 논과 밭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그래서 논 ‘답(畓 : 밭 위에 물을 부은 모습)’를 만들었다. 필자는 이것을 국조한자어(國造漢字語)라 하여 이런 것들만 정리하여 논문으로 쓴 적이 있다. 임꺽정(林巪正)의 ‘걱(巪)’자는 ‘거(巨)’ 자에 한글 ‘기역(ㄱ)’ 받침을 쓴 것이라 한국인 아니면 알 수 없는 글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는 셀 수 없이 많다. 나무 이름도 우리식으로 표기한 것이 많고, 마을 이름도 우리말을 살려서 만든 글자로 표기한 것도 많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우리 말을 중국식 한자어로 표기하는 것이 많다 보니 의외의 사고가 많이 난다. 즉 마을 이름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다른 뜻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못골(연못이 있는 마을)이었는데, 목골(木谷)로 불리는 곳이 있다. 연못이 나무로 바뀐 대표적인 사례다.
전라도에 광천(光川)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의 한글 이름은 ‘빛내리’였다. 듣기 좋고, 발음 좋고, 의미상으로 더욱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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