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새만금 SOC에 투입될 국가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하고 새만금 기본계획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의외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도 하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나오고 있다. 단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본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추진한다는 기본전제가 성립될 때의 이야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만금 기반시설의 경제적 효과를 올리기 위한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기존 계획을 뛰어넘어 전북 경제에 실질적인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새만금 빅픽처’를 짜 달라고 국토부와 새만금개발청에 요구했다"강조했다.
언뜻 한 총리의 주문은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 총리의 지시는 "새만금 사업의 한계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과 분석, 평가가 진행되지 않은 채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구나 사실상 잼버리 사태가 빌미가 돼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따지고 대드는 전북도에 대한 보복성 예산 삭감이자 정치적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는 지적은 면하기 어렵다.
당장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내년 새만금 SOC사업 예산이 전북도 요구액의 78%가 삭감된 데 대해서 “민주당 지지세가 견고한 전북도민들부터 비난을 받을지언정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다른 지역에 선심을 써서 지지기반을 다지는 한편 국가 예산 낭비를 막고 과거 잘못된 새만금 장밋빛 청사진을 남발한 역대 정권과 다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총선에서 이득을 보고자 하는 꼼수전략”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비롯해서 새만금사업을 착수한 노태우 대통령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정부는 새만금 사업을 전북의 정치적 불만과 경제적 낙후를 극복해 준다는 정치적 목적과 수단으로 사용해 온 것은 기정사실이다.
한덕수 총리가 '빅 픽처'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빅 피쳐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담을 지에 대한 사전 검토도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지난 33년동안 새만금의 빅피쳐는 정권에 따라 수없이 자유자재로 그려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와서 윤석열 정부가 또다시 새만금의 빅피쳐를 그리겠다는 자체 역시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취해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지난 수십년간 선거 때마다 전북의 대표공약으로 새만금을 주물럭대면서 이용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 총리가 말한 ‘새만금 빅피쳐’에 선뜻 공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축재정을 이야기하면서 새만금SOC 예산은 78%가 싹둑 잘려 나가자 전북의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학살극’ ‘보복’이라는 표현으로 비판을 가했다.
반면 다른 지역 언론에서는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 부산 현안사업 대거 반영' '울산 내년 국가예산 사상 최대인 2조5268억 원 반영', '올해 정부안 2조2254억 원보다 13.5%(3014억 원) 늘어', '국고보조사업 1조8285억 원 국가시행사업 6983억 원' 등의 환영 일색 표현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만금에서 78%가 잘려 나간 예산이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지역으로 그대로 옮겨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마치 잼버리대회 파행의 책임이 전북에만 있고 전북도가 그동안 새만금SOC 예산을 11조 원이나 빼돌린 것처럼 허위 공세를 펼쳤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런 의심을 받는 것 자체가 당연하다.
시민환경단체에서는 줄곧 '새만금 사업의 한계'를 지적해왔다. 지금의 새만금 사업이 “무조건 목적 없이 땅부터 넓히고 보자는 낡은 토건 사업이 갖는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도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드나드는 해수 유통으로 물 관리를 하면서도 내부 개발계획은 여전히 담수호를 전제로 한 계획에서 바뀌지 않고 있다.
더구나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의 과제를 제대로 담지 못한 것은 미래를 향한다는 새만금에는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전면 재검토는 현재 △새만금 해수유통 확대 △갯벌 복원과 내 외측 수산업 회복 △매립 면적축소를 비롯한 선택과 집중 등으로 완성형 개발을 담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단계부터 필요하다고 환경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새만금 빅피처가 또 다른 '엉뚱한 그림' 될까 걱정
그동안 새만금사업을 꾸준히 지켜보고 진단과 평가, 대안을 제시해온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대표는 “이제 새만금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해수유통의 과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면서 “정부가 행여라도 빅피쳐를 그린다면서 또 엉뚱한 그림을 그리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기왕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이제라도 전라북도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새만금 간척사업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정부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따져 묻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특히 “지속가능한 새만금 사업으로 기본계획 변경 수립을 위해서 ‘지속가능한 새만금 사업 민관학협의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정현 대표는 그러면서 "일방적인 정부의 기본계획 변경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전북도민의 의견, 시민사회의 제안을 대안을 적극 검토해서 반영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속가능한 새만금 사업 민관학협의회 구성 전제돼야 신뢰
1999년 국무총리실은 당시 유종근 전북도지사의 제안으로 99년 4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새만금 간척사업 환경영향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고‘해양환경, 담수호 수질, 사업의 경제성 등 세 분과로 나눠 타당성을 검토한 바 있다.
비록 세 분과의 연계성을 확인하고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과정까지 이르지는 못했고 경제성 분과의 왜곡된 의견이 사업 추진의 근거로 사용되긴 했으나 갯벌의 가치, 목표 수질 달성의 어려움, 대안 개발 제시 등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때 민관 공동조사단 세 분과의 의견을 종합해 사업의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 했더라면 32년이 지나고도 '빈손'이고 환경 갈등만 지속되는 지금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 대표를 지낸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솔직히 걱정 반 기대 반"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새만금 기본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하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한승우 의원은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발계획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새만금은 대선 때나 총선 등 도민의 표를 얻기 위해 실현불가능하면서 거창한 그림만 그리는 방식이 되풀이돼 왔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기존의 기본계획들은 새만금 담수호를 전제로 한 기본계획"이라고 지적하고 "해수유통에 기반한 기본계획을 새로 마련하되 전북도민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그동안의 기본계획은 무조건 다 매립해놓고 나중에 개발하자는 그런 취지였는데 단계적 매립을 통한 개발계획 방안을 찾아야 하고 기존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새만금위원회가 있지만 정부가 이번 기회에 진정성을 가지고 새만금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겠다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새만금을 미래의 기회의 땅으로 변화시킬 마지막 기회
마지막으로 이정현 대표는 김관영 전라북도지사에게 이같이 권고한다.
"여론몰이에 의한 전북 몫 지키기, 예산 보복 규탄 등 감정적이고 즉자적인 대응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새만금 SOC를 흔드는 정치 공세’라는 방어적인 태도 역시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을 논의를 가로막는다"며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리더의 진정한 용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북도 차원에서라도 민관학 협의기구를 만들어서 새만금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의 경우처럼 새만금에 대한 아무런 권한과 예산도 없이 그저 '우는 아이 젖 달라는 식'으로 예산이 삭감되면 정부에 항의나 주장만 해서는 어떤 것도 얻지 못할 뿐더러 또다시 새만금은 지나온 33년의 시간에 더해 앞으로 십수년의 시간을 더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탓만 하면서 아무런 역할은 하지 않고 지난 수십년 새만금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어온 지역의 정치인, 정치 세력들도 이번을 기회로 바꿔져야 한다는 여론이 강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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