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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골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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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골 서사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경북 영천지역 민간인학살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아작골 서사

한여름인데

이가 덜덜 떨렸어요

눈알이 빨개질 때까지

보고도 안 믿길 때

떡갈나무에 묶어둔

새벽이 박살났어요

군용 트럭 예닐곱

짐칸마다 빽빽이 끌려온 사람들

모른다 해도, 아니라고 해도

밭매고 삽질하던 흙손이라 해도

비극은 이미 장전되었으므로

올무에 걸린 산짐승처럼 발버둥치는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누군가의 형 동생

붉은 낙인찍힌 심장을 관통한 절망의 탄환들

아비규환아비규환 울부짖는 골짜기

본디 그 골짝 작은 절 있어 절골이라 불렀제, 눈밭에 멧토끼 쫓고 계곡에 가재 잡고 그랬제, 아이고 말도 마소, 피바람 덮친 그일 있고… 밤마다 귀신 나오고 도깨비불 홀린다고… 억수로 무서버서 그 산비알 얼씬도 못했제, 고마 마카다 작살났다고 아작골인 기라

이불 홑청 뒤집어쓰고 마른 눈물 삼켰던

코흘리개가 등 굽은 노파가 될 때까지

살아있는데도 죽은 줄 알고 살았던,

눈뜨는 매일매일 지옥이었죠

핏물 스민 나무는 겁 없이 자꾸 웃자라고

깊은 응달에 생매장된 푸른 누명들

산까마귀 파먹어버린 헐벗은 눈동자들

발굴된 진실 몇몇은 겨우 뼈를 추슬렀지만

목격자로서 증언은 낮달처럼 희미해져요

자호천 강줄기는 유서같이 굽이쳐 울고

아무렇지 않게 배롱꽃은 또 흐드러지고

청미래덩굴 가시는 청미래덩굴의 역사

산길 끊어진 아작골 해진 치마폭엔

새빨간 사과를 꿈꾸는 땡볕이

물어뜯는, 지독시리 질긴 여름의 서사

*아작골: 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 아작난 아작골 표지판. ⓒ손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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