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군산시 미룡동 군산대학교 공과대학 2호관 뒤편
- 6기 인공동굴
1950년 9월 27일 전북 군산시 미면 마을
우리는 한밤중에
우리 아닌 우리에 들었다
동네 주민끼리 밤낮으로 의심은 높아지는데
어둠의 감시를 받는 아침은 더 푸르게 찾아왔다
몽둥이와 죽창 대검은
어느 일가의 손에서 찬란했으며
동네 주민 120여 명의 목숨은
어둠을 붉게 그었다
이 낡은 세계를 수천 번 읽는다
어둠의 감시를 받는 우리는
지옥의 악마들이 잃어버린 암호는
건장한 남자 여자 임산부 어린아이
이곳은 온갖 뿌리의 기도가 무성한 대지
죽음과 영생의 눈 밝은 별이 오르다 떨어지고
그들의 비행은 우리를 비행하게 했다
2023년 6기 인공동굴의 흰나비 떼들을 찾는
굴삭기와 망치와 철조망의 레퀴엠
녹슨 위에 녹턴이 흐른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생산한
홀로코스트 6기 동굴
명아주꽃 핀다
내 고향에서 나는 아직 어린아이
내 곁을 지나가는 모든 것은 그대로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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