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내린 폭우로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물난리가 났어요. 아직도 주민들은 장맛비 소식에 마을회관에 모여 벌벌 떨고 있습니다."
25일 오전 전남 함평군 신광면 연천마을. 산사태 우려 지역인 이곳은 전날 내린 폭우로 마을 입구부터 곳곳이 무너진 담장들과 도로에 흘러내린 자갈, 진흙 등 토사물들이 널브러져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고추, 깨 등 밭은 중간마다 물에 잠겼고 작물들은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산비탈 바로 밑에 위치한 주택은 주변 땅을 파내 임시로 수로를 만들어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지만 많은 비로 인해 불어난 물을 감당하기는 버거워 보였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현주 마을이장(57) 은 폭우로 생채기를 입은 마을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씨는 "폭우로 산에서 밀려 내려온 바위 등 토사물을 치우기 위해 열흘 넘게 포크레인 작업을 하고 있다"며 "장정 여럿이 들지도 못하는 바위랑 돌들이 힘없이 휩쓸리는 것을 보면 물이 정말 무섭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을회관에는 산사태 우려 지역으로 대피령이 내려져 10여 명의 마을주민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한쪽에서는 뉴스와 휴대전화로 날씨를 보며 오늘 또다시 내려진 비 예보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주민 김춘심 할머니(74)는 "천둥번개와 함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두려움에 열흘이 넘게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잠도 여기서 자고 있다"며 "어제는 마을회관이 벼락까지 맞아 모든 전기가 끊기고 보일러도 고장났다"고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특히 우리 집이 산비탈 아래 자리 잡아 산사태가 나면 모든 것을 잃게 될까 봐 하루에도 수십 번 비 예보를 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주민들 평균 나이대가 70~80대를 넘어가는데 산사태라도 나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어떻게 도망가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간 내린 폭우로 마을 주민들의 농사도 물거품으로 돌아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이곳 함평에는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272㎜의 폭우가 내렸다. 특히 전날에는 시간당 67㎜의 기록적인 비가 쏟아지면서 450㏊의 농경지도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주민 조부자 할머니(72)는 "1000평 넘는 고추밭, 깨밭, 조밭이 모두 빗물에 잠겨 수확을 포기해야 할 판"이라며 "지금이면 작물들을 수확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하는데 하루 만에 일상이 망가졌다"고 하소연했다.
마을 주민들은 폭우를 막기 위해 계류지 댐 설치와 물길 확장공사가 절실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마을이장 이현주씨(57)는 "산에서 휩쓸려 내려오는 빗물이 너무 많아 순식간에 마을이 잠겨버리기 때문에 둘러싸인 산에 계류지 댐을 설치해 침수를 방지해야 한다"며 "오죽했으면 높은지대로 주택을 모두 옮기고 낮은지대에 개울 작업을 하려고 했겠냐"고 강조했다.
이어 "물길도 시간당 40㎜만 오면 견디지 못하고 넘쳐 저류 지역은 모두 잠겨버린다"며 "좁은 물길을 확장시켜 인근 저수지까지 물이 잘 빠지도록 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전남도와 함평군은 장마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자연재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현재 재해 취약시설 예찰활동을 강화하고 추가 호우를 대비해 연약지반 점검, 빗물받이 등 사전정비를 실시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기상이변, 호우 등 대피요령을 전파해 도민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전남 지역에 25일 최대 100㎜ 비가 예보됐고 오는 26일에는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5~60㎜의 소나기가 내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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