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진료실 안팎에서 아픈 분들을 만나고 있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입니다.
지난 글에서 집에서 기계 호흡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해드렸었지요. 활동지원사가 없는 밤에 귀가 어두운 어머님이 호흡기 경고음을 못 들어 몇 번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었던 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분의 성함은 이노감님으로 민들레에서는 이분을 '민들레 호킹박사'라고 부릅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만, 과학과 기술에 관심이 많고, 침대 천장에 큰 스크린을 설치하여, 안경에 부착된 마우스로 인터넷 사용도 자유자재로 하십니다. 발명에도 관심이 많아 앰부백을 이용한 이동식 기계호흡기 제작을 생각하기도 하셨지요.
"제 인생의 꿈이 KTX를 타고 서울이나 부산에서 열리는 과학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에요."
제가 쓴 글을 계기로 민들레 작업치료사 이경민 선생님과 송직근 전무님이 이분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자이 주식회사의 ‘과학기술을 이용한 고령친화 사회 변화를 위한 리빙랩’에 참여하기로 하고, 여러 전문가들과 접촉을 시작하였습니다. 카이스트 출신 박사님도 만나고, 강원도에서 장애인 보건의료센터, 보건소 담당자와 협업을 하고 계신 문광태 작업치료사 선생님도 만나 지혜를 구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인 위급상황 대처를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우선 119 홈페이지에 이분의 의학적 정보를 입력해드리고 위급 상황시 호흡기 연결부위를 가장 먼저 확인해달라고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다음으로 잘 들리지 않는 경고음 문제는 청각장애인용 호출벨을 이용하여 풀었습니다. 청각장애인용 호출벨은 호출시 불빛이 번쩍번쩍 빛이 나고 큰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와 불빛은 어머님도 감지가 가능하였는데 난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지마비인 '민들레 호킹박사'님이 호출벨을 누를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것이죠. 이 난관을 해결하는데 나서 준 분이 계십니다. 바로 ‘민들레 맥가이버‘ 김현식님입니다. 이분도 지체장애가 있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대상자이시지만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들레 호킹박사'를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수차례 왔다 갔다하시며 벨을 누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주셨습니다.
결국 벽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얼굴을 움직여 호출벨을 누르고 감지하는데 성공하였고, ‘민들레 호킹박사‘님은 죽음이 두려워 떨어야 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감격해하셨습니다. 이제는 어머님이 호출기 경고음을 듣지 못하는 일은 없겠지요.
두번째는 스마트홈 시스템 만들기입니다. 스마트 스피커를 이용하여 음성 인식만으로 방의 불을 켜거나 끌수 있게 되었고, 선풍기도 작동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전화도 자유자재로 걸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신기한 기술이 있네유. 간단한 것도 스스로 못해서 불 켜고 끄고 이런 것 내가 없으면 못하는 줄 알았는디.. 근디 혹시 이불도 덮어주고 걷어주고 그렇게도 되나유?"
신기한 기술을 보신 어머님 말씀에 모두가 웃었습니다.
세번째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바깥 세상 탐험입니다. ZOOM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활동지원사가 대리로 물건을 사야할 때 ‘민들레 호킹 박사‘님이 화상에 나온 물건들을 확인하고 직접 고를 수 있게 된 것이죠. 비가 오는 날에는 비오는 풍경도 볼 수 있고, 꽃이 피는 것,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것 또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웃에 누가 사는지 어디에 수퍼가 있고, 과일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동네 풍경도 보실 수 있겠지요. 얼마 전에는 대전보건대 작업치료학과 학생들의 도움으로 민들레 의원과 검진센터, 사무실의 모습을 둘러보고 직원들, 이웃들과 인사나눌 수 있도록 랜선투어도 해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나 대신 움직이는 아바타가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진짜 내 삶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장애인 분들에게도 이런 기술이 쓰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냥 글 하나를 썼을 뿐인데, '민들레 호킹 박사'님을 위해 많은 분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서 주셨고, 그 결과가 한 분에게 큰 희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본인의 일처럼 나서주신 '민들레 맥가이버' 김현식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같이 담아 드립니다. 비록 '맥가이버 형님'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별명을 사양하셨지만요.
얼마전 있었던 에자이 리빙랩 성과공유회에서 김현식님이 남기신 말입니다.
"제가 아는 경전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요. 사랑은 헤아림에서 시작되고, 세심함으로 성장한다고 생각되어요. 그리고 결국은 동행으로 이어져야 하지요. 그러니 처음에는 마주보고 서로를 헤아리며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행동으로 옮기지면 좋겠습니다."
김현식님에게 꿈이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마을 공방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기술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민들레 의료사협에서 같이 고민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노감님의 KTX 여행도 같이 꿈꾸어 보려고 합니다.
또 이러한 기술을 이용해 이노감님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찾아나설 것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 (관련기사 바로가기 : 한국에자이, 포용적 치매와 고령화 친화 사회로의 변화를 위한 ‘HIA’ 성과공유회 진행)
- 기꺼이 실명과 사진 공개를 허락해주신 이노감님과 김현식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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