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로 주민이 사망했는데 임시방편으로 덮어둔 방수포가 전부네요."
23일 오전 전남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탄치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임시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 2채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돌아다니는 주민들은 손을 꼽을 정도로 드물어 마을은 적막감만 흐르고 있었다.
한쪽에 위치한 산비탈면은 집중호우를 대비해 임시로 방수포를 덮어놨지만 나무와 풀들로 인해 곳곳이 찢어지고 벗겨지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 사이로는 곳곳이 붕괴된 주택이 눈에 띄었다. 화장실로 이용됐던 곳으로 보이는 건물은 벽이 무너져 내부가 모두 드러나 있는 상태였고 세면대와 변기, 욕조, 바닥 등 곳곳에는 흙탕물이 사방에 튀어 굳은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 2021년 7월 이틀 만에 355㎜에 이르는 집중호우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마을위 전원주택지 토목공사 현장 석축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마을주민 1명이 흘러내린 흙더미에 매몰돼 숨지고 주택(4동), 창고(3동) 등 8개 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경순 할머니(88)는 여전히 2년 전 그날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해일과 같은 물폭탄이 마을을 덮치면서 집과 가축, 사람들까지 쓸려가 폐허가 됐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 할머니는 "주민들은 지금도 비가 오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아직 두려움에 떠는 일부 주민들은 비가오는 날이되면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비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양시에서는 집중호우를 대비해 현장 점검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마을주민들은 여전히 줄안해 하고 있다.
특히 다음 주부터 시작될 장마 소식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의 마을이장(64)은 "기후이변으로 시간당 강수량이 집중되는데 이번 장마에 또다시 물폭탄이 쏟아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영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인명피해와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임시방편으로 덮어둔 방수포 이외에 견고한 제방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인근 마을 주민 김모씨는 "집중호우로 사람이 죽기까지 했는데 2년이 지났지만 임시방편으로 산비탈면에 방수포를 덮어놓은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산이 무너져 내린 주변 취약한 곳에 튼튼한 제방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수포를 덮은 이외 지역에서도 무너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이렇게 방치했다가는 또다시 폭우로 재작년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리고 지적했다.
탄치마을은 수해 피해를 입은 지 2년 가까이 됐지만 토지 보상과 복구 작업은 여전히 더딘 채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광양시는 탄지마을에 총 68억원(국비 34억원·시비 34억원)을 소요해 지난해 2월부터 오는 2024년 12월까지 재해위험지역 정비사업을 수립하고 복구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앞서 광양시는 지난 2021년 7월 사면 2차 붕괴 방지를 위해 응급복구를 완료하고 지난 2021년 10월 주민들에게 임시거주시설 2동 지원했다.
이후 지난해 2월부터 현장조사와 기본설계 검토와 공사편입토지 및 지정물 보상 계획 등을 수립해 공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토지 보상 절차에서 주민들과 의견차로 협의가 지연되고 있고, 정비사업도 공법 변경으로 실제 정비공사는 착공조차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광양시 관계자는 "주민들은 무너진 주택에 대한 피해 보상을 원하고, 광양시는 관련법에 근거해 보상 대상을 토지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보상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며 "공법 자체도 돌망태(GABION) 공법에서 콘크리트 패널 공법으로 변경돼 일정이 조금 연기됐지만, 7월 중부터는 공사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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