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 4명에게 20억 원의 파업 손해액을 연대배상하라는 2심 판결을 깨고, 노조원들의 노조 내 지위·역할과 파업·불법행위 가담 정도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제한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이 극렬 반발에 나섰다. "정치 판결", "정파성" 등 노골적 불만에 이어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에 대한 공격성 발언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판결을 만장일치로 내린 대법원 3부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도 포함돼 있고, 고용노동부도 이번 판결이 '민법의 대원칙을 훼손했다'는 국민의힘 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의 강력 반발에는 이번 판결이 노동자의 파업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재옥 "사실상 노조 손배 제한 판결…피해자인 기업이 손해 떠안아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대법원은 기업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에게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개별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이 판결은 공동불법행위 참가자는 연대 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대원칙에 맞지 않는 것으로 경영계가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윤 원내대표가 언급한 민법 조항은 760조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다.
윤 원내대표는 "(파업) 가담 정도를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경영진의 입장"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노조의 불법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는 "대법원이 '노란봉투법'을 판례로 뒷받침하며 국회 쟁점법안을 임의로 입법화하는 결과를 빚었다"며 "이는 법률적 판결이라기보단 정치적 판결이며 입법·사법 분리라는 헌법 원리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국회에서 여야 간 입법을 두고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면 법원은 관련 판결을 일정기간 유예하고 국회 논의 결과를 지켜보는 게 상식적"아라는 주장도 폈다. 이 사건은 지난 2010년 11월 발생한 사건으로, 올해로 만 13년을 맞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법원의 정파성은 사법 불신을 초래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기에 이번 판결에 입법부 차원에서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산업계에 악영향이 분명한 만큼, 정부·여당은 노란봉투법을 단호히 막아내겠다"고 했다.
그는 "전문가들은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기업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균형 있는 노사관계 구축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불법파업에 대한 조합원 개별 책임을 일일이 입증하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자인 기업이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불공정한 결과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 또한 노조는 불법파업을 더욱 경계하지 않고 투쟁 일변도의 강경노선을 거세게 밀고나가려 할 것"아라고 했다. '피해자인 기업'이라는 표현과 함께, 노조를 보는 여당의 시각이 드러난 점이 눈길을 끈다.
윤 원내대표는 또 "이번 사건 주심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을 비롯해 아무리 대법원 인적 구성이 이념적으로 편향됐다고 하나 이번에는 대법원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사실상 정치행위를 한 것이기에 큰 충격"이라며 "아무리 김명수 체제가 곧 끝난다지만, 아무리 해당 사건 주심이 '소쿠리 투표' 노정희라지만 법원이 이렇게나 편향적 판결을 내리고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 판결을 해서 되겠느냐"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이 몇몇 대법관 교체를 앞두고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을 한 것"이라고도 했다.
박대출 "민법 대원칙 비껴간 판결", 그러나 尹정부 노동부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야당이 발의한 법(노란봉투법)을 대법원이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어제는 대법원 정치의 날로 사법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박 의장은 "대법원이 국회까지 겸한 격"이라며 "법을 죽인 정치판결", "노동개혁을 방해하고 불법파업 조장하는 반역사적, 반경제적 판결"이라고 헀다.
박 의장도 윤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공동불법행위에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법의 대원칙을 비껴가며 비상식적인 판단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날 고용노동부는 이번 판결 관련 보도참고자료에서 "오늘 선고된 현대차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2017다46274)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노조법 제3조제2항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의 연대책임을 부인하는 내용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는 "해당 판결은 불법행위자들의 책임비율을 제한할 경우 '단체인 노동조합'보다 개별 조합원들의 책임 비율을 낮게 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으로,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민법 제760조에 따른 부진정연대책임의 특별한 예외를 인정해 불법행위자 개별적으로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노조법 개정안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전날 대법원 판례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연대책임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연대책임 범위 내에서 책임비율의 배분을 파업 가담 정도 등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불법행위의 발생경위나 진행 경과, 그 밖의 제반 사정을 종합해 불법행위자의 책임비율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앞선 대법원 판례(대법2009다2936)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즉 노동부의 입장은, 전날 대법원 판결이 민법 760조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이 원칙을 적용하는 데 있어 행위 참여자들 간의 책임 비율을 차등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기존 2009년 판례에 비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여당이 '대법원이 민법의 대원칙을 무시했다'고 보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이 이번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을 문제삼는 것도 사실관계에서 문제가 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3부가 내렸고, 3부는 이번 사건 주심 노정희 대법관을 포함해 안철상·이흥구·오석준 대법관 등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노·이 대법관은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 안 대법관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며 오 대법관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소부 판결은 4인의 만장일치로 내려지며, 여기서 이견이 발생할 경우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게 된다. 이번 판결은 3부 대법관 4인의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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