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들이 없으면 요즘은 농사를 포기해야 할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중개업자와 농민들 사이에 살인까지 벌어졌겠습니까."
13일 오전 전남 무안군 운남면의 한 양파밭. 양파 수확에 막바지 시기에 달해 작업이 한창이어야 할 이곳은 인적없이 양파만 가지런히 놓인 채 썰렁한 기운만 맴돌고 있었다.
양파들 사이로는 벌써부터 잡초들이 하나둘 자라나기 시작했고 바깥쪽에 놓인 양파들은 뜨거운 햇볕에 말라 비틀어지고 있었다.
4㏊(약 1만2000평)의 규모로 양파농사를 짓는 고원호씨(59)는 수확을 못하고 있는 양파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고씨는 "양파를 망에 담아 지역 농협으로 이송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오늘도 근로자들을 구하지 못해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며 "작업을 위해서는 50명 정도가 필요한데 며칠 전부터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 단속에 나와 근로자들이 모두 도망가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날 무안군 망운면에는 정장을 입은 한 공무원이 서류가방을 들고 밭일을 노동자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몇 분 동안 자리를 지키며 감시하던 공무원은 노동자들에게 다가가 신분증 등을 확인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났다.
한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노동자 A씨는 "출입국 단속공무원이 불법체류 외국인을 채용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지금 지역 내에서 중개소, 농가들끼리 서로 외국인만 보였다하면 신고해 크고 작은 시비가 붙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다른지역에서 살인까지 벌어졌겠냐"고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 농번기가 시작되면서 각 지역 농민으로부터 인력 수급 고충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집중단속은 오히려 농민들의 인력난과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협, 인력중개업체 등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는 지난해보다 10% 이상 올랐다. 농가가 인력업체에 지급하는 하루 일당은 남자 14만~17만원, 여자 13만~15만원선이다. 힘을 많이 쓰는 작업 특성상 젊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추가로 1~2만원을 더 주기도 한다.
부족한 인력난은 농가들끼리 다른 일터의 일꾼을 빼앗기 위해 웃돈을 주고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 인력을 공급하는 한 인력업체 사장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일을 배정받고 일터로 출발하는 와중에도 1만원이라도 더 인건비를 준다는 곳이 나타나면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현장으로 발길을 돌려 버리기 일쑤"라며 "어떤 농가는 20만원을 넘게 부르면서까지 노동자들을 보내달라고 한다. 이런 일로 농가들과 언성 높이며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인력 확보' 전쟁으로 중개업자와 농민사이에서 생긴 갈등은 살인까지 번지는 일도 발생했다.
실제 전남 해남군에서는 지난 5월14일 불법체류자 외국인 노동자 인력을 더 달라며 한 마을에서 중개업자와 농민이 다툼을 벌이다 중개업자가 농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해당 지역에서 인건비를 더 준다는 곳에 인력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중개업자와 농민 사이의 다툼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집중단속으로 농민들은 농번기 불법 체류자 단속에 나선 정부를 비판하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무부는 현재 '불법체류 외국인 합동단속'을 경찰청·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해양경찰청과 함께 진행 중이다. 올해를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 추진 첫해로 정한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 및 추방조치를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김천중 양파생산자협회 전남지부장은 "농번기에 근로자를 잡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농업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단기 체류 기한을 늘려 공급을 확대하는 대책이나 밭 작물도 기계 등으로 자동화 재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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