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승소했을 경우 배상금의 20%를 지원단체에 지급한다는 약정을 소송 대리인 및 지원단체와 맺은 것과 관련, 해당 단체 측은 소송 기간 동안 원고는 어떠한 금전도 부담하지 않았으며 약정금액은 모두 공익적인 목적으로 쓰일 것임을 약속한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조선일보>가 이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들에서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을 경우,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11년 전에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데 대한 반박자료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이들은 양금덕 등 원고 5명이 지난 2012년 10월 23일 소송 대리인 및 소송 지원단체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2009년 창립)과 이러한 약정을 맺었다고 말했다.
시민모임이 공개한 약정서에는 "위임인들은 위 사건과 관련하여 손해배상금, 위자료, 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교부한다"고 돼 있었다.
이들은 "'약정서'에 적시된 그대로, 약정금은 법률 대리인의 수임료가 아니다. 같은 취지에서 이 약정금은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나 '답례'가 아니며, 취지가 '공익'이고 사용처도 '공익'"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모임과 원고가 체결한 약정서 3항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위임인들로부터 지급 받은 돈을 위 1항에서 정한 대로 사용하여야 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인 사용 내용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원고가 해당 금액의 사용처에 대한 감시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은 "소송 원고들은 10년 가까운 일본에서의 소송도 마찬가지였지만, 국내에서 소송이 제기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푼의 돈도 부담한 사실이 없다"며 소송대리인과 지원단체는 소송에 대한 수임료 없이 활동을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때로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이 싸움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숨은 조력과 우리 사회의 선량한 힘이 보태졌기 때문"이라며 "변호사단체는 변호사단체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보태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모임은 "이 사건 소송 원고들은 조력들이 모아져 어떠한 형태의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권리회복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 약정서 역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약정서는 원고들의 동의하에 향후 누군가의 조력이 없이는 권리회복에 나설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권 피해자를 위해,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 등 또 다른 공익적 활동을 위해 디딤돌 역할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이 약정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모임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을 계기로 정의기억연대(구 정대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후원금 관리 및 윤 대표의 횡령 의혹을 제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민단체의 행동이 '부도덕'하다며 단체 활동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런데 지난 4월 1심에서 윤미향 의원에게 적용된 8개 혐의 중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제외한 대부분 혐의가 무죄가 나왔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송 지원단체가 승소 이후 받게 될 배상금의 20%를 시민단체에 공익적 목적으로 기부하겠다는 것이 이들 활동의 정당성을 훼손시킬 만큼 부도덕한 행위인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약정을 통해 진행했던 것은 단순히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 법적 행위인 '소송'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이 소송의 경우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 및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한 사건이기도 하다.
승리 가능성도 높지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소송을 경제적 대가 없이 선뜻 맡을 수 있는 변호사가 한국에 얼마나 존재할지 모르겠으나, 해당 소송대리인과 시민단체는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소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2년 시작한 이 소송은 2018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원고들은 여전히 배상금을 수령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20년이 넘는 소송 기간 동안 원고들은 소송과 관련한 경제적 부담을 하지 않았다. 이 말은 소송대리인과 시민단체가 원고들로부터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랬던 이들이 배상금 20%를 받기 위해 이 기간 동안 한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소송을 진행했을까? <조선일보>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계산을 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신문은 "일부 피해자 유족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해 판결금을 2억 원 안팎 수령한 가운데, 해당 단체가 이 약정을 근거로 금액 지급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했다.
소송대리인과 시민단체가 공익적 목적이 아닌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2억 원의 20%를 가져가려고 20년 동안 소송을 이어왔다고 가정하고 이들의 손에 떨어지는 금액을 계산해보면 원고 1명 당 1년에 200만 원, 한 달에 약 17만 원이다. 약정을 한 원고가 총 5명이니 전체 금액은 1년에 1000만 원, 한 달에 약 83만 원이다. 소송대리인과 시민단체가 1명이 아니기 때문에 인원수대로 나누면 이 금액은 더 적어질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2021년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변호사는 평균소득이 높은 직업 50개 중 하나로 분류돼 있으며 평균연봉은 8063만 원이다. 이들에게 경제적 이득이 중요했다면 진작에 강제동원 피해자들 소송을 관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됐을 것이다.
시민모임 역시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만약, 혹여라도 경제적 이득에 먼저 눈이 가 있었다고 하면 이 일은 처음부터 간여할 일이 아니었다"며 "지금까지 소송 뿐 아니라, 소송 외에 일본 원정 활동, 그 외 다양한 활동에 쏟은 많은 시민들의 노력과 땀, 시간은 감히 금전으로 환산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모임은 "이러한 형태의 약정은 처음이 아니며, 그동안 일본에서 제기된 소송에서도 원고와 대리인 간에도 같은 취지의 약정이 있었다. 국내 사례로 보더라도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인권침해를 입은 조작 간첩단 사건이나 사회적 참사 사건 등의 공익소송에서 일반적으로 있어 왔던 일이며, 이러한 공익기금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권구제 사업이나 공익 활동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던 원고들이 무료로 소송을 진행해서 배상금을 받으면 그 일부를 소송을 진행했던 대리인 및 지원단체에 지급해 피해자 본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것이 이 약정의 핵심이다.
해당 금액은 위법사항 없이 원래 약정대로 공익적 목적으로 집행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시민단체에 일정 자금이 유입됐다고 해서 그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보는 것 또한 근거 없는 '생트집'에 불과하다. 이런다고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해주는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이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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