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돈봉투 논란으로 촉발된 더불어민주당 내 혁신 논쟁이 대의원제 찬반 논쟁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권리당원 세(勢)가 강한 친명(親이재명)계 측이 돈봉투 사건의 타개책으로 '대의원제 폐지'를 대대적으로 내세우자, 이 대표도 "당내 민주주의 확보"를 거론하며 이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이재명계 측에서는 대의원제가 폐지될 경우 권리당원 입김이 강해져 이 대표의 당권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2일 오후 당 원외지역위원장 60여 명과 간담회를 열고 "정치 영역에서 공정성이라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며 "당내 민주주의 확보, 정치개혁, 정치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원외지역위원장들의 요구로 마련됐다. 김현정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장은 "당 혁신 주체는 원내 의원만이 아니다. 전국 253개 지역위원장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라며 "국민과 당원의 상식적인 눈높이에서 결정하고 혁신해야 한다. 낡은 기득권 이미지로는 총선 승리 못 한다"고 지적했다.
원외위원장들은 이 대표와 2시간여 걸친 논의를 한 끝에 "표의 등가성을 해치는 대의원제 폐지하라"는 건의를 당에 공식적으로 하기로 했다고 '간담회 결과'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이들은 "(이같은) 쇄신 건의가 관철될 수 있도록 민주당 소속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이 대표와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대의원제 폐지 요구는 원내·외를 가리지 않고 당내 강경파, 친명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형배 의원은 같은날 오후 조상호 법률위 부위원장과 김현정 원외위원장협의회장, 남영희·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박진영 전 상근부대변인 등 원외 친명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주당 혁신행동'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새로 설치될 혁신기구가 당원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고 당원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의원제 폐지, 개혁의 길로 가야 한다"며 "당 대표도 1표이면 대의원도 1표, 당원도 1표인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국민의힘도 일찍이 폐지한 대의원제를 왜 민주당은 폐지하지 못하나. 혹시 국회의원의 기득권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라며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의 근본적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은 대의원제 폐지"라고 말하는 등 꾸준하게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현재 민주당 대의원의 1표의 가치는 권리당원 60표에 해당한다. 친명계 측에선 이처럼 대의원 영향력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전당대회에서 돈봉투를 통한 대의원 매수 행위가 이뤄진 것이라며 대의원제 폐지를 혁신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대의원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당원 청원도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당 지도부의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청원 내용은 "돈봉투 사건의 시발점은 국민의힘도 폐지한 대의원제도에 있다고 본다"며 "당원들의 끊임 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폐지하지 않은 대의원제도는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비이재명계에서는 대의원제 폐지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대의원 제도는 당원이 호남에 편중돼 있는 민주당 특성상 영남의 의견 비율을 보정하기 위해 탄생한 것으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취임 직후인 지난달 30일 한국방송(KBS) <뉴스9> 인터뷰에서 대의원제 폐지에 대해 "권리당원 수가 적은 TK(대구·경북)나 PK(부산·경남)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대의원제는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의원제의 폐해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 폐해만으로 대의원제를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와 대결을 펼친 박용진 의원은 지난 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소 잃고 외양간도 때려 부수는 잘못된 방향"이라면서 "돈 받은 사람이 문제라면 국회의원 지분 없애거나 지역위원장을 없애야지 왜 애먼 대의원 제도를 없애려고 하느냐. 이거는 오히려 민심과 더 멀어지는 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발했다.
이원욱 의원도 지난달 25일 같은 방송에서 "대의원 제도를 바꿔보자는 것은 터무니없는 진단"이라며 "이런 국면을 통해서 이른바 팬덤 정치를 강화하자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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