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고촌, 지울 수 없는 기억
천왕봉에서 노고단
만복대로 정령치 넘으면
백두대간 첫 마을, 고촌
엊그제 빨치산 습격으로
구례에서 남원 가던
연대장 죽었다고
하이바에 낙엽 꽂은 군인들이
눈 뒤집혀
큰산 아랫마을들을
쑤시고 다니며 구덩이 파놓고
시신항아리 묻고 다닌다는
풍문 떠돌았는데
1948년 11월 19일
그날 새벽, 고촌에 왔다는
백가白家 놈이
완장 찬 끄나풀 앞세워
회의한답시고
집집마다 샅샅이 뒤져
지서 앞 공터로 젊은 남자들
하나, 하나둘씩 끌어내어
용산리 골짜기에서
인과없이 막 갈긴 총탄에
손 뒤로 묶인 채
항변은커녕 유언도 없이
큰산 아래 산다는 죄로
젊다는 이유로 살처분되었고
어둠 속에서 숨소리마저 삼키며
가마니에 말아 지고 온
시신들 이마에는
선명한 총탄 자국
죽은 자들은
원혼이 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아버지가 살아온 날들보다
더 긴 세월, 기어이 살아내어
원혼들 명단 만들어
국회로 국방부로 청와대로
탄원서 보냈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낡아버린 비문
정령치 복원하여
백두대간 마루금 잇듯이
정령치 아랫마을
고촌 사람들이
눈에 새기고 귀에 박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목숨 사그러지지만
다시 쓰는
1948.11.19. 고촌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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