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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우리는 ‘내리사랑’에 ‘안갚음’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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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우리는 ‘내리사랑’에 ‘안갚음’을 하고 있는가

우리말에 ‘내리사랑’이라는 단어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이를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사랑함. 또는 그런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익히 알고 있기도 하고 ‘내리사랑은 있지만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도 알고 있다.

60년을 살아오면서 이러한 말들을 생각하면서도 부모님께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늘 불효자라는 죄책감만 든다.

10년 전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님을 모시고 살던 어느 날, ‘내리사랑’이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버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다.

“예전에는 이웃집에 누가 살고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로 이웃들 간에 가까이 지냈죠. 명절이면 당연히 자식들이 부모님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고 조상의 묘에 성묘도 드리는데 어떤 집은 자식이 오지 않는 집이 있었대요. 이를 알게 된 이웃집 아저씨가 “김 영감, 명절인데 그 집 자식들은 안왔어?”라고 묻자 한편 창피하기도 했지만 자식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에 김 영감은 “손주들 일이 있어서 못왔대. 내리사랑이라잖아?”라며 자식들을 두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는 단어는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님들이 사용하시는 단어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부터인가 부모님께서 사용해야 하는 ‘내리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식이 먼저 사용하고 있네요. 본인은 자식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자신의 오늘이 있도록 키워주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부모님에게는 인터넷 쇼핑이나 택배로 맛있는 음식을 보내드릴 수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쯤은 부모님과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면 좋은데 안부 전화만 하죠.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내리사랑이라잖아”.

우리는 자식이 병원에 입원하면 폭이 50㎝ 정도 밖에 안되는 보조 침대에서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쪽 잠을 자면서 아이가 뒤척이기만 해도 깨서 불편한 곳이 없는지 확인하지만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면 간병인에게 맡겨 놓고 아는 사람 병문안 가듯이 인사만 삐죽하고 병원을 나옵니다. 부모님께서 얼마라도 재산을 물려주시면 거부하지 않고 받아 놓고 막상 부모님께서 편찮으셔서 병원비나 수술비가 많이 나온다고 하면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이 자식입니다. 저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아버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빙그레 웃으셨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님은 낙상으로 인해 병원생활을 시작하셨고 벌써 만 9년을 넘기셨다. 파킨슨병으로 인해 기도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식사를 하시면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서 폐렴을 일으켜서 배에 삽관을 해서 음식물을 공급하고, 기도에도 삽관을 해서 산소호흡기로 연결해 말씀을 하셔도 성대를 울릴 수 없어 알아들을 수 없으시다.

아무 음식도 잡수실 수도, 어디를 모시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오늘은 어버이날, 아버님 병원에 카네이션을 들고 간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잠깐 들렀다 오겠지만….

자식의 마음은 부모님께서 오래 오래 곁에 계셔주시기를 원한다. 그게 언제까지일까? 생각해보니 내가 죽을 때까지 부모님께서 살아계셔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싶다.

효도는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실은 내 마음이 편하자고,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크게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언제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실지 모르고, 홀연히 우리 곁은 떠나실지 모르는 어머니와 아버지…. 뒤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오늘 당장이라도 맛있는 음식 대접해드리고 함께 바람이라도 쐬러 다녀오는 건 어떨까 싶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안갚음’이 되지 않을까?

김규철 대전세종충청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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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 김규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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