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 영화 및 방송 프로그램 작가들이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미국 주요 방송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재방송을 예고했다. 작가들은 방송 산업 구조가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위주로 바뀐 데다 작문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AI)까지 등장하며 작가들이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작가조합(WGA)이 2일(현지시각)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이날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미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 NBC유니버설 앞에서 수백 명의 조합원이 모여 "연필을 내려 놓자", "계약 없이는 콘텐츠도 없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주요 제작사 앞에서도 벌어졌다.
조합원 규모가 1만1500명에 달하는 작가조합이 총파업을 벌인 것은 2007~2008년 100일 간의 파업 이후 처음이다. 조합은 기존 협약 만료를 앞두고 노동 조건과 AI 규제 등을 놓고 영화·TV제작자연맹(AMPTP) 산하 회원사 넷플릭스·아마존·애플·디즈니·NBC유니버설·파라마운트·소니 등과 6주간 교섭을 벌였지만 1일 최종 결렬되며 파업에 돌입했다.
작가들이 파업을 벌임에 따라 대본 비중이 큰 토크쇼를 비롯해 주요 방송 프로그램들의 신규 회차 방송이 줄줄이 중지될 예정이다. 미 CNN 방송은 NBC의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 및 '더 투나잇 쇼', ABC의 '지미 키멀 라이브', CBS의 '더 레이트 쇼' 등에서 새 에피소드가 방영되지 않고 기존 방영분이 재방송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사전제작 및 해외 콘텐츠를 다수 보유한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들에겐 당분간 파업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15년 만의 총파업은 스트리밍 서비스 위주로 방송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조합 쪽은 전통적인 텔레비전 방송 시리즈는 시즌당 적어도 20회 이상으로 구성돼 비교적 안정적인 연간 수입을 보장했던 반면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프로그램은 시즌당 8~12회로 짧아 작가들이 생계에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합 쪽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최근 몇 년 간 작가 수입의 중간값이 23%나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은 이에 더해 기존 텔레비전 방송 체계에선 프로그램이 다른 방송국이나 디브이디(DVD)로 재판매될 때 작가들이 일정 금액을 정산 받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들은 고정 금액만을 지급해 실질적인 수입 감소를 낳았다고도 설명했다.
조합은 또 스트리밍 콘텐츠 생산에 폭넓게 자리 잡은 소위 '미니룸' 관행 탓에 작가들의 일자리가 더 불안정해졌다고 주장했다. 미니룸 관행은 프로그램 방영이 확정되기 전 통상 제작에 필요한 작가 수의 절반 가량만 모집해 자료를 수집하고 대략적 대본을 제시하는 작업으로 최근 몇 년 간 미국 방송가에 급속히 퍼졌다.
작가들은 미니룸 방식으로 일할 경우 더 적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고 해당 방식의 고용 기간이 8~10주에 불과하며 심지어 방영이 확정되더라도 미니룸 작가들의 고용 승계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조합 쪽은 미니룸에 신인 작가들이 참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해당 관행이 퍼지며 작가들이 전통적인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배우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한 가운데 작가들은 대본 작업에 AI를 활용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조합 쪽은 제작자들이 AI를 활용해 신규 대본을 작성하거나 작가들이 작업한 대본을 AI를 통해 수정하거나 각색해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제작자연맹 쪽은 "기술 진보에 대한 연례 회의를 갖자"며 조합 쪽 제안을 거부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부상과 AI의 등장이 맞물려 조합 지도자들은 "직업으로서의 글쓰기가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봉쇄가 끝나며 스트리밍 서비스 및 영상 제작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작가들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 수 감소를 경험했고 디즈니는 올해 7000명 규모 감원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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