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어져오던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 공개가 고용노동부의 자료 공개 거부로 17년 만에 처음으로 무산됐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지난 2006년부터 한 해동안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을 '살인기업'으로 선정해 발표해왔다.
민주노총·노동건강연대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은 2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가 살인기업명 공개를 거부해 지난해 산업재해로 가장 많은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최악의 살인기업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사회를 맡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저희가 17년째 기업의 명단을 발표해왔지만 기업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시상식은 2023년이 처음"이라며 "노동부가 정권이 바뀌면서 기업을 비호하는, 기업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노동부가 되었다"고 개탄했다.
공동캠페인단은 2006년부터 하루에 5~6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현실을 알리고, 기업의 책임·처벌 강화를 위해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발표해오고 있다.
'살인기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추락‧끼임 등으로 매일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은 '노동자 과실에 의한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위험의 구조를 만들고 방치해서 발생하는 '기업의 구조적인 살인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공동캠페인단은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 이유 '법인의 명예훼손'... "기업 비호하겠다는 건가"
고용노동부가 강은미 의원실에 자료 제출거부 사유로 제시한 공문을 살펴보면, 노동부는 "'중대재해발생현황', 중대재해 사각지대 현황'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개인정보 침해, 법인의 명예훼손 문제 등이 제기됐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그간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이 산재사망 다발 기업 명단을 발표한 것은 그것을 통해 산재를 예방하기 위함"이라며 "산재 사망이 많은 기업을 공표하여 대중에게 지탄을 받게 하면 기업 이미지를 걱정하는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부가 공개를 거부한 이유로 제시한 '법인의 명예훼손'에 대해 "산재사망 다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당연히 해당 기업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함"이라며 "하지만 이는 산재사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라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고,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명을 공개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기업을 비호하겠다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는 기업의 명예와 기업 경영책임자의 방어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바란다"고 했다.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에는 윤석열 대통령
캠페인단은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에 윤석열 대통령을 선정했다. 그 이유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공세로 기업과 정부 차원의 중대재해 예방 대책은 형해화 되었고 노동자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며 "또한 과로사를 조장하는 노동시간 개악을 추진하는 등 노동자 건강권에 악영향 주었기에 특별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고 노동자를 살인한 기업의 이름조차 시민들이 알 수 없다"며 "살인기업을 비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자 죽음의 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선정식에는 산재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현장에 나와 발언을 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에 끼여 숨진 故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아들 용균이를 사회적 타살로 잃은지 4년이 훌쩍 지났다"며 "기업이 더 이상 노동자를 죽여가며 일 시키지 말라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고 시행된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죽음이 줄어들지 않는 기막힌 현실"이라고 말했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 노동을 하다 과로사한 故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도 "며칠 전 입관을 기다리던 아들의 얼굴을 꿈속에서 마주하고 잠을 더 잘 수가 없었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 아들이 살았을 때 이런 고통을 알았었더라면, 그때 그만두게 했었더라면 이런 후회와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박 씨는 "아들의 죽음에 회사로부터 한마디 사과를 받지 못했고 어떠한 피해 보상이나 작업환경 개선 약속을 받은 게 없다"며 "장시간 노동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아들의 나약함으로, 그런 나약한 아들을 둔 부모의 책임으로 남지 않게 노동자가 과로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노동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들은 특별상 상장을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실로 행진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이를 막아서며 대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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