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며 수사기관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했다. 이 대표는 아울러 의혹의 중심 인물인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
이 대표는 17일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우리 당의 지난 전당대회와 관련해 불미스런 의혹 보도가 이어졌다"면서 "저희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 발언을 마친 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이 대표는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 것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당으로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는 말씀도 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을 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면서 "그래서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저희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할 것이고,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 재발방지책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면서 "민주공화정을 무한 책임질 공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마무리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3일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객관적 진실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서 객관적 진실을 왜곡 조작하는 검찰의 행태가 일상이기 때문에 저는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밝힌 바 있다. 이 사건의 성격을 '정치 탄압'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대표가 기존 기조를 뒤집고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힌 배경에는 정치 자금을 수수한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녹취록 보도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당 차원의 진상규명조사 기구를 꾸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5일과 16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내부 논의를 거쳐 적당한 기구를 정해 다음 주에는 진상규명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해당 기구에서 실무적인 논의를 할 것이고, 관련해 지도부에 보고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윤관석·이성만 의원 압수수색에 이어 관련 인물들을 차례로 소환 조사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지난 16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대전 동구 구의원을 지낸 강화평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자금 출처와 조달·전달 경위 등을 조사했다. 두 사람은 2021년 송영길 당 대표 경선캠프에서 윤관석 의원,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등과 함께 선거운동을 도왔다.
검찰은 당시 송영길 캠프 측 일부 인사들이 전 대표의 당선을 위해 총 9400만 원의 불법 자금을 당 내에 살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이 대표의 사과 등 입장 표명은 당 안팎의 여론을 수렴한 결과로 보인다. 앞서 당내에서는 계파를 불문하고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과 당 차원의 엄정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지난 14일 조응천·전재수 의원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세부적인 방향이나 강도는 다를지언정 비슷한 취지의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조응천 "이정근, 檢에 협조했을 것…송영길, 제 발로 들어와라")
이날도 비명계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이 MBC·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송 전 대표를 겨냥, "당대표를 역임한 분으로서 빨리 들어와서 해명하고 고백하고 또는 관계되는 사람들한테 진실을 말하도록 종용을 해야 한다"며 "남의 문제 보듯이 지금 외국에서 빙빙 도는 건 비겁한 태도"라고 했다.
이상민 의원은 또 민주당에서 최초에 '기획 수사'라는 식의 대응이 나온 데 대해 "정략적 의도가 있다? 설사 윤석열 정권 측에서 검찰을 국면전환용으로 동원했다 할지라도 돈봉투 주고받고 한 사실관계만은 부인할 수 없다면 그런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고백하고 책임을 지는 게 민주당이 해야 될 일"이라며 "정권의 국면전환용이다, 기획수사다, 이런 걸로 희석시킬 수 없다. 당에서 정치탄압이다라고 짚은 것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시 비명계 중진인 이원욱 의원도 이날 BBS 라디오에서 "아주 구체적인 증거, 녹취록이 나오면서 국민적 의혹이 굉장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문제는 굉장히 악재여서 민주당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완벽히 잃어버릴 수 있는 사건"이라고 위기감을 보였다. 이 의원 역시 당의 초기 대응에 대해 "(기획 수사라는) 그런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며 "이걸 가지고 기획 수사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주 잘못된 처사라고 보인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친명계 김두관 의원도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무리한 수사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며 "진상조사단을 꾸리거나 윤리위 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단호하고 당당하게 끊어내야 된다"고 이 대표에게 조언하면서 "송 전 대표도 빨리 귀국해서 해명을 하고 소명을 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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