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량의 상한과 임금의 하한선을 정해달라."
일을 하지만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 배달 라이더, 웹툰 작가, 대리운전기사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이들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들이 최소 생계를 위해 플랫폼 노동에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를 정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13일 '최저임금 사각지대 플랫폼노동 구하기 프로젝트' 기자회견을 열어 플랫폼 노동의 실질 임금 수준을 밝히고 현 상태로는 최저 생계 유지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각각의 건(과업) 또는 작업량에 따라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대가)를 보장"하도록 관련 제도를 손봐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플랫폼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를 살펴보면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종사자는 약 80만 명이었다. 이 규모는 전년 대비 20% 상승한 것이다. 플랫폼종사자 수는 매년 상당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021년 진행한 연구용역인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실태를 통해 살펴본 최저임금 적용방안'에 따르면플랫폼노동자 214명을 대상으로 실수입을 산정한 결과, 전체 평균은 125만2000원이었다.
직종별로 보면 택배노동자는 198만2000원, 가사서비스노동자는 17만6000원, 음식배달노동자는 160만4000원, 대리운전기사는 39만9000원으로 확인됐다. 이를 노동시간으로 나눠 환산하면 2022년 최저시급인 9160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배달료의 아무런 기준이 없어서, 사장님이 정하는 대로 정하니까"
기자회견에서는 이 가운데 일부 플랫폼 노동자들이 참석해 해당 업종의 급여 체계를 설명했다.
플랫폼에 만화를 연재하는 웹툰 작가들은 고료 지급 기준이 불투명해 실질적으로 임금인 고료의 하한선이 없다고 밝혔다.
웹툰작가노조 하신아 위원장 설명에 따르면 통상 웹툰 한 편에 보통 70컷의 그림이 들어간다. 이보다 적게 그려서는 안 된다. 65컷 아래로 그림이 내려가면 바로 플랫폼 회사로부터 계약 위반이라는 연락이 들어온다. 반대로 70컷 이상으로는 그림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문제가 없다. 다만 고료가 더 올라가지 않는다.
하 위원장은 "컷수가 많아도 추가수당을 주지 않는다"며 "연재 횟수에 따라 고료를 지급받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계약 체계는 불공정하다며 하 위원장은 급여 하한선 책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 위원장은 "2013년에 회차당 20만 원을 받으면서 일했다"며 자신의 사례를 설명했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에게 각각 10만 원씩을 나눠줬고 채색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에게 8만 원을 나눠 줬다. 한 달 하 위원장이 손에 쥔 금액은 24만 원이었다.
하 위원장은 "플랫폼 특성상 예를 들어 10컷 이상을 추가로 그리는 데 야근수당처럼 적정 임금을 보장해달라고 할 수 없다"며 "노동량의 상한을 정하고 임금의 하한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달노동자 역시 같은 하소연을 했다. 어떻게 배달요금이 책정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수입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늦은 밤 배달을 해도 야근·휴일 수당 등이 적용되지 않아 최저임금 수준의 실질임금을 받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플랫폼은 기본 배달료를 낮추면서, 거리별 할층체계로 바꾸고 있다"며 "주문이 많은 피크타임을 지나면 배달료가 바닥을 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배달료 산정 기준이 없어서라는 게 구 위원장의 설명이었다. 기준이 없으니 가게 '사장님'이 정하는 돈이 배달료가 된다. 라이더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출혈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 위원장은 "'사장님'이 정하는 대로 배달료가 책정되니 바닥을 향한 경쟁이 어디까지 갈 지 아무도 모른다"며 "배달 노동자 보수의 최저 기준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위원장은 한편 '배달료가 오르면서 라이더들이 돈 많이 번다'는 세간의 시선을 두고 "배달라이더의 총수입을 보고 하는 말"이라며 "주휴수당도 없고 야근·휴일 수당도 없기 때문에 실질 수입은 그에 크게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도 "전업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저녁 7시부터 첫차 뜰 때까지도 하는데, 플랫폼 이용료를 빼고나면 월 200만 원 전후를 번다"며 "최저임금을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하는게 맞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플랫폼 기업, 노동자 데이터 실시간 수집하기 때문에 적정단가 도출할 수 있어"
플랫폼노동자에게 최저임금 법·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현행 법 조항과 판례들은 이미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근로기준법 제47조 및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이 그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 47조에는 "사용자는 도급이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제도로 사용하는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해당 근로자의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따라 일정액의 임금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최저임금 5조 3항에는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플랫폼노동에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 표준 단위를 개발하거나, 최저임금과 유사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은 일몰된 '안전운임제'다.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화물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의 역할을 했다. 낮은 운임으로 과로·과적 운행이 일상화된 화물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운임 이상을 받을 수 있게끔 국토교통부가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화주가 이 운임을 주지않으면 과태료를 내게끔 했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적정단가를 도출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며 "뉴욕에서는 어플 택시 기사와 배달 라이더를 대상으로 한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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