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과반이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불평등의 핵심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절반 가까운 국민은 노동조합에도 윤석열 정부에도 문제해결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노회찬재단은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2023 불평등사회 국민인식조사 2차 결과 발표회를 열고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밝히며 우리 국민들이 △정부의 비정규직 오·남용과 차별 처우 방조 △노동조합 내의 정규직 이기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비정규직 규모 증대가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는 비율이 58.5%에 이르러 과반을 넘었다. 이는 해당 진단에 반대하는 의견(11.1%)의 5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국민은 비정규직 문제를 개인의 능력 또는 노력에 의한 문제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했다.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개인의 능력·노력 문제'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62%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찬성 의견(38%)의 1.6배였다.
문항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구체화하자, 국민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두드러졌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너무 많다'는 데에는 68.6%가 동의했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등 노동조건 격차가 심각하다'는 데에는 더 많은 76.0%가 동의했다.
결과 발표를 맡은 조돈문 초대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이러한 결과를 두고 "시민은 비정규직 규모 문제보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등 노동조건 격차를 더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응답자들은 이미 높은 비율로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해당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가진 '정보값'을 고려할 때 문제 인식률은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관측됐다. 현재 국내 노동시장에선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 혹은 절반 이하 수준으로 평가되는데,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응답자는 전체의 55.0%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31.4%는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13.7%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전체 국민의 45% 정도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지식·정보가 부족하여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셈이다.
다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일한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 처우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73.8%로 전체 응답자 4분의 3이 차별 처우 현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조 전 이사장은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확산하고 있지만,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관심과 지식, 정보가 매우 옅은 수준"이라고 평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는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42.1%)가 최대 의견으로 꼽혔다. 경기침체로 인한 기업의 재정난(32.5%) 등 기업의 간접 책임 의견까지 합하면 비정규직 문제가 '기업의 책임'이라는 전체 의견은 74.6%에 달했다.
다만 지난 2012년 <한국방송(KBS)> 여론조사와 비교했을 때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보호(당시 10.5%)가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6%포인트가량 증가해 17.0%에 달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는 상대적으로 점진적인 해법이 우선시됐다.
조 전 이사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두 가지 핵심적 정책과제는 비정규직 규모 감축과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 해소"이고, 이 중 '임금격차 해소' 의견이 51.5%로 최대 의견을 차지했다며 "시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처우를 해소하고 비정규직 임금 현실화를 통한 처우개선의 점진적 해법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조사결과를 분석했다.
한편 정부, 노동조합 등 비정규직 문제해결 주체들에 대한 국민신뢰는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5년 동안 비정규직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보는 의견은 74.4%에 달해 그렇지 않다는 의견(5.7%)에 비해 68.7%p 높았고, 같은 기간 동안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확대될 것으로 보는 의견도 68.3%로 그렇지 않다는 의견(7.4%)에 비해 60.9%p 높았다.
조 전 이사장은 "시민은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두 가지 핵심 과제인 비정규직 규모 감축과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하여, 윤 정부의 정책은 실패할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사에선 윤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긍정 평가가 11.1%에 불과했고,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부정 평가는 53.7%로 과반을 넘어갔다. 친 자본적 성격의 정부가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편만 든다고 평가하는 응답자 비율도 72.9%로 반대 의견(27.1%)의 2.7배에 달했다.
다만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도 15.4%에 불과했고, 그렇지 않다는 부정 평가는 45.9%로 세 배 수준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노조가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라는 의견 자체는 46.1%로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는데, 조 전 이사장은 이를 두고 국민들이 "정규직 노동자 중심 노동조합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현재 국민이 "윤석열 정부와 노동조합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을 묻고 있다"라 지적하면서도 "노동조합에 비해 윤석열 정부에 더 비판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재단이 공동 기획한 해당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해 지난달 3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의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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