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3년 만에 자국을 방문한 일본 외무상에게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책임있게 처리하라고 강조했다. '과학적인 처리'를 언급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윤석열 대통령과는 다른 대응이다.
2일 중국 외교부는 친강(秦剛) 외교부장이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다며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친강 부장이 이 자리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인류의 건강과 안전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며 일본은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과는 온도차가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월 29일 일본 <교도통신>은 17일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만난 윤석열 대통령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보도 이후 한국 대통령실은 30일 오전 "일본산 수산물 수입 관련, 국민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다음날인 31일 대통령실은 또 다시 입장문을 통해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기간 중 일본 측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검증, 그 과정에 한국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분명히 했다"며 그제야 정확한 입장을 내놨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사안뿐만 아니라 미중 간 글로벌 경쟁에 따른 일본의 행태에도 경고하는 등 국익에 근거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해 일본군 '위안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안 등에서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가 나오면 이를 수습하느라 바빴던 한국 정부와는 다른 모양새다.
친강 부장은 사자성어 등을 활용해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라는 논어의 구절과 "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되지 말라"(爲虎作伥·위호작창)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하며 일본이 미국을 위한 '앞잡이'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반도체 산업을 잔혹하게 짓누르던 미국이 중국에 옛 술책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이라며 "봉쇄는 중국의 자립 의지를 더욱 자극할 뿐이다.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자 아시아의 일원인 일본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고 국제사회의 진정한 공감대를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친강 부장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대만 문제가 중국 이익의 핵심이며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반과 직결돼 있다"며 "중국은 일본 측에 중일 4대 정치문서의 원칙과 지금까지의 약속을 지키고, 대만 문제에 손을 대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주권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중일 간 4대 정치 문서는 △1972년 중일 공동선언 △1978년 중일우호조약 △1998년 평화와 발전을 위한 우호협력관계 구축 공동선언 △2008년 중일전략호혜관계의 전방위적 추진에 관한 공동선언 등으로 해당 문서에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하나의 중국' 원칙, 상호 주권 및 영토 존중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하야시 외무상은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어 양측 간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포함한 동중국해 정세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중국에 구금된 일본인의 석방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다른 입장을 내놨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날 회담 이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베이징에서 일본인이 구금된 것에 대해 항의했다. 조기 석방을 포함한 우리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보도했다.
다만 하야시 외무상은 중국 측 반응에 대해서는 "답변을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는데,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친강 외교부장은 중국 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일본 시민 사건과 관련해 중국이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해졌다.
양측 회담은 글로벌 및 지역, 양국 현안들을 아우르며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회담에서 "한·중·일 협력, 한반도 정세,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개혁 등 국제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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