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가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될 예정인 가운데, 해당 이장 행위는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67개 여성·인권단체들은 30일 박 전 시장의 묘역 이장 소식에 관한 성명문을 발표하고 "성폭력 문제제기 이후 훼손된 (박 전 시장) '명예'의 복구를 민주진보의 이름으로 실행하려는 것"이라며 "무의미한 행보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중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들은 특히 그간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지지자 및 유족 측으로부터 "끊임없는 2차 피해"에 시달려왔다고 지적하며 "박 전 시장 사건은 우리 사회에 소위 진보진영의 성인지 인식과 실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필요성을 던졌다. 사건 발생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그 필요성에 얼마나 응답했는가 돌아보고 점검할 때"라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민주열사 묘역 안장 기준은 무엇인가"라며 묘역 이장의 정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내달 1일 박 전 시장의 묘가 이장될 예정인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묘역은 전태열 열사, 노회찬 전 의원 등 민주·노동 운동가 150여 명의 묘가 안장돼 있는 곳으로 국내 대표적인 민주열사묘역으로 꼽힌다. 성폭력 가해라는 과오가 있는 박 전 시장이 민주열사 묘역에 안치 된다면 "민주화운동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성평등은 의제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모란공원 묘역은 사설묘지로, 공원 측이 별도의 안장 기준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다. 모란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3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4월 1일 박 전 시장의 묘역이 모란공원으로 이장될 예정인 것은 맞다"면서도 "구체적인 (안장) 기준, (승인) 사유 등은 (사무소 직원들은) 알 수 없다"고만 답했다. 본지 요청에도 이장 관련 담당자는 연결되지 않았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3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박 전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이 이미 공고하기 때문에, 묘역 이장이 된다고 해서 그가 민주화 운동의 열사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민주열사 묘역으로 꼽혀온 모란공원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이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박 전 시장의 생전 소속 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31일 현재까지 박 전 시장 묘역 이장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다만 정의당 측에선 묘역 이장에 대한 "유감" 입장이 나왔다.
김창인 청년정의당 대표는 30일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게시 글에서 "모란공원 민주열사 추모비에는 '만인을 위한 꿈을 하늘 아닌 땅에서 이루고자 한 청춘들 누웠나니'라는 문구가 있다"라며 "박원순 시장 묘소의 모란공원 이장은, 아직도 2차 가해로 고통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인'에서 예외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박 전 시장은 앞서 지난 2020년 본인의 성추행·희롱 등 의혹이 불거진 직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피해자가 제기한 성폭력 소송은 별도 판결 없이 종결된 상황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통해 박 전 시장에게 제기된 일부 의혹에 대해 '성희롱'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시정조치권고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강 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해당 소송의 쟁점이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행한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가'였던 만큼,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에 대한 법적 판단이 사실상 이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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