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법적 의무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제시하도록 하는 결의안이 유엔(UN) 총회에서 채택됐다. 2019년 남태평양 섬나라 학생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의안은 기후 변화가 취약국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해 향후 기후 정의 실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의 의무에 대한 ICJ 권고적 의견 요청" 결의안은 ICJ에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기후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명확히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결의안은 또 기후와 환경에 심각한 해를 끼친 국가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 특히 지리적 환경과 개발 수준으로 인해 기후 변화에 취약한 섬나라 등에 져야 할 "법적 책임"에 대해서도 ICJ에 자문했다. 결의안은 같은 항목에서 ICJ에 기후 및 환경에 해를 끼친 국가가 현재 및 미래 세대에 져야 할 법적 결과에 대한 의견도 요청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총회 연설에서 "기후 정의는 도덕적으로 필수불가결할 뿐 아니라 효과적 기후행동의 전제"라고 강조했다.
결의안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크게 입고 있는 취약국에 주목함에 따라 이들 국가들이 요구해 온 기후 정의 실현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로이터> 통신은 방글라데시 외무장관이 결의안 통과가 취약국에 대한 보상 약속과 실제 지원 사이 격차를 줄일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결의안은 2019년 남태평양에 위치한 솔로몬 제도에 기반을 둔 학생단체 '기후 변화에 맞서는 태평양 섬나라 학생들(PISFCC)'이 처음 제안한 뒤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 정부가 주도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수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신시아 후니우히 PISFCC 회장은 "세계가 태평양 청소년들에게 귀를 기울여 행동해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태평양 지역 주민은 "전세계 배출량에 매우 적게 기여"했음에도 사이클론·해수면 상승 등 "기후 위기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며 "이번 유엔 결의안은 기후 정의를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라가는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이스마엘 칼사카우 바누아투 총리도 "역사적 결의안" 통과를 반기며 "우리는 오늘 기후 정의를 위한 커다란 승리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ICJ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전세계적으로 2000건 이상이 진행 중인 기후 관련 소송에 주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기후 변화 관련 법 강의를 맡고 있는 마이클 제라드 교수는 "ICJ 결정은 급증하는 기후 변화 사건에 직면하고 있는 전세계 법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ICJ의 판단은 향후 국가 간 혹은 개별 국가 내 기후 관련 조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미국은 이번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관련해 바이든 정부 고위 관료가 "우리는 국제 사법 절차가 아닌 외교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전세계적 노력을 진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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