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검경수사권 조정법, 이른바 '검수완박법' 심의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으나 법안 가결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고 지난 23일 결정(☞관련 기사 : 헌법재판소 "검수완박법 무효 아냐")한 데 대해 보수 언론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9년의 미디어법 관련 헌재 결정 당시 해당 언론들의 태도와 극명한 대조를 낳고 있다.
24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대법원은 '거짓말도 무죄', 헌재는 '절차 어긴 검수완박 법도 유효'"라는 제목이다. 신문은 사설에서 "민주당은 지난해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그 과정을 국민들이 다 지켜봤다. 그런데도 그런 법이 무효가 아니라면 앞으로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어떤 불법과 편법, 꼼수를 저질러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진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또 "헌재는 이런 행위가 위법이라면서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전면 차단해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효라고 했다. 절차 위법을 인정하면서 그런 절차로 만든 법이 유효하다는 모순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번 결정에선 헌법재판관들의 정파성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며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은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다. 이 중 5명이 이른바 진보 성향이라는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14년 전,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 대해 내린 권한쟁의심판 결정에 대해 이 신문에 게재된 사설은 논조가 정반대였다. 당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것은 야당인 민주당 측이었고, 헌재는 '의결 절차에 일부 문제가 있으나 법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2009년 10월 30일자 <조선> 사설은 아래와 같다.
헌재가 표결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했으나 민주당이 국회에서 정상적인 법안 심의절차를 따랐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까닭이 없었다. 민주당은 법안이 상정된 지 1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심의조차 못하게 막다가 최종적으로 표결처리키로 여야 합의까지 하고서도 끝내 물리력을 동원해 의원들의 본회의장 입장을 막고 투표를 방해했다. 다수의 국회 독주도 견제돼야 하지만 소수가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그 난장판 때문에 법안 처리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 (2009.10.30. <조선일보> 사설 '헌법재판소 신문·방송법 가결 유효 결정')
2019년 검수완박법 처리 당시 소수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1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심의조차 못하게 막다가" 결국 '빠루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물리력을 동원해" 사개특위·법사위 법안 처리를 저지하려 한 상황이 겹쳐진다. "소수가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그 난장판 때문에 법안처리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는 구절도 인상깊다.
오늘자 <중앙일보> 사설은 <조선>보다 더 공격적이다. 제목은 "헌재가 입법 문제 지적한 검수완박법, 폐기가 맞다". <중앙>은 헌재 결정에 대해 "절차에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절충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하며 "위헌적 절차가 낳은 흉한 법은 사라지는 게 옳다"고 했다.
14년 전 미디어법 사태 당시 <중앙> 사설은 어떨까.
"법 개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여론 분열과 국력 손실을 감안하면 헌재의 결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더구나 권한침해와 법안 가결 선포에 대해 다소 상충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새로운 다툼의 불씨를 남긴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실제로 야당 일각에서는 헌재 결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논란을 유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권한침해를 인정했으니 법안 자체도 당연히 무효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일 뿐이다. 야당 의원들의 투표 방해로 유발된 비정상적 절차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2009.10.30. <중앙일보> 사설 '소모적 논쟁 접고 미디어산업 육성에 힘 모으자')
사안이 다르긴 하지만, 결정 불복이나 "아전인수" 해석으로 헌재·법원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 전체 사회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하면 "헌재 결정을 계기로 소모적인 논쟁을 접어야 한다"(2009.10.30. <중앙>)는 지적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아일보>는 24일자 사설에서 "헌재가 국회의 권한쟁의심판에서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한 사례는 2009년 미디어법 통과 과정 등 몇 차례가 있었지만 통과된 법률 자체를 무효로 한 사례는 없다. 이번에는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는 위장 탈당까지 인정하는 것으로 보여 무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크게 봐서 삼권분립에 입각해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라고 풀이했다. <조선>, <중앙>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다만 <동아>는 "헌재 결정이 검수완박법에 문제가 없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라며 "민주당은 헌재 결정의 전체 취지를 받아들여 필요한 법의 재개정을 위해 협조함이 마땅하다"고 압박했다.
2009년 10월 당시 <동아>는 "국회의 표결 절차가 적법하지 않게 된 데는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도 살펴야 한다"며 "여야 간 대립이 장기화하자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 표결 절차를 진행하려 했으나, 민주당이 물리적으로 막으면서 정상적인 표결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절차적 문제를 발생시킨 일차적인 책임은 민주당에 있는 것"이라고 했었다.
"헌재가 '국회 안에서 다수결로 이뤄진 표결에 대해서는 국회에 맡긴다'는 원칙을 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불복해 계속 발목을 잡는 행태는 여야를 떠나 자제해야 옳다" (2009.10.30. <동아일보> 사설 '미디어법의 국민 위한 효과 극대화해야)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는 원칙을 잃지 않았으나, 일관성이 다소 아쉽다.
현재 국회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헌재가 지적한 '위장 탈당' 등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전인수 격 해석을 하고 있는 것 역시 문제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만 국회 구성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우리의 고유 권한"이라며 "민형배 의원의 탈당은 본인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결정이고 법사위 안건조정위원 선정도 국회법57조에 따라 이뤄진 합법적 과정"이라고 했다. 민 의원을 포함한 안건조정위 구성이 "국회법 제57조2 및 58조, 헌법 제49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부정한 것이다.
지난 2016년 탄핵 사태에서 보듯, 극단적 갈등의 최후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헌재의 권위를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정당·언론이 앞장서서 허물려 해서는 안 된다. 헌재를 포함한 법원·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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