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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룡골과 회암골, 준비된 자만 들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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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룡골과 회암골, 준비된 자만 들어서라!

[2023년 4월 오지의풍경학교, 영월 <꿈꾸는 유배지 늡다리>에서 제1강]

자연, 대수난 시대입니다. 지구의 신음은 점점 깊어가고 그곳에 안겨 사는 인간의 불안과 상실감은 커져만 갑니다. 연초 “한번 파괴된 자연이 원상회복하는 데는 3백만 년이 걸린다”(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023.1.)는 연구보고나, 생전에 “우리는 최소한 100년 내에는 우주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민지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라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예언은 자연과 지구의 소중함, 대대적인 자연 파괴에 대한 엄중한 메시지입니다.

자연의 본 모습이 더욱 그리울 때, 오지의풍경학교를 엽니다. 우리 땅에 이런 때 묻지 않은 비경이 있었나? 무인지경의 거대한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고요하지만 힘찬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그 곁에 기대어 사는 오지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봅니다. 자연의 엄청난 치유력을 체험하고, 호시탐탐 밀려드는 자연의 상처들을 안타까워하며, 그 보호와 보존을 모색하는 성찰의 길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항상 실내·차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늡다리 찾아가는 길. 무인지경의 거대한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고요하지만 힘찬 자연의 기운을 느낀다.Ⓒ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이승태 선생님입니다. 캠핑과 등산,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작가며 특히 오지 탐사에 밝습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으로, 그동안 산악전문지 <사람과산> 기자를 거쳐 편집장을 지냈고, 그 시절 우리나라 산줄기 답사를 위한 등산지도 가이드북인 <1대간9정맥 종주지도집>과 <한국100명산 등산지도집>, 국립공원 탐방안내서인 <북한산국립공원> <지리산> <설악산>을 제작했습니다. 또 <북한산 둘레길 걷기여행> <캠핑 주말여행 코스북>(공저) <수원 근대 인문기행> <닥터 미식기행 1, 2>를 펴냈으며, 최근 <제주오름 트레킹 가이드>(중앙books)란 역저도 내셨습니다. 현재 오름학교 교장선생님도 맡고 계십니다.

오지의풍경학교를 열며,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물질세계의 모든 것은 사라져 갑니다. 햇빛과 바람, 눈비에 의해 낡고, 닳고, 무뎌지며, 매일 조금씩 퇴락해 갑니다. 그러나 뭇 생명체의 집합인 자연계는 인간의 과욕과 오만, 무관심에 의해 대부분이 사라져 갑니다. 옛 시대를 산 그 누구보다 현대인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점입니다. 현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니까요.

우리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얻고, 또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경험을 공유합니다. ‘발전’과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옛것을 밀어버리고 세운 아파트에서 호롱불과 아궁이, 아랫목 콩나물시루에서 물 떨어지던 소리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 중 하나가 ‘오지 풍경’입니다.

오지의풍경학교는 ‘우리나라에 아직 이런 데도 있었나?’ 싶은 청정 자연 속 풍광을 찾아 떠납니다. 노루와 들새가 가던 길을 지나 화전민이 살던 터전, 아득한 전설이 지금도 전해오는 여우 나는 산골을 둘러보려 합니다.

이승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오지의풍경학교 제1강, 2023년 4월 28(금)-30(일), 2박3일로 열리는 꿈같은 오지여행 <꿈꾸는 유배지 늡다리>에 대해 들어봅니다.

운치 있고 근사하고 즐거운 2박3일

오지의풍경학교 첫 여행지로 강원도 영월의 첩첩산중 무인지경인 영월 늡다리로 잡았습니다. 그 골짝의 유일한 오두막에서 산새, 풀꽃 벗 삼아 김필봉씨가 홀로 살아갑니다. 그의 집은 대여섯 번 가본 적이 있는데, 한번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지인 몇과 찾았던 그곳에서 우리는 운치 있고 근사하고 즐거운 2박3일을 보냈습니다. 그때 보았던 늡다리의 아늑함과 찾아드는 길의 맑고 아름다운 계곡과 거칠면서 아름답던 산세가 잊히지 않습니다.

▲신록으로 환한 내리계곡. 사뿐사뿐 걸음도 가벼워지는 풍광이다.Ⓒ이승태

문명을 벗어나 늡다리 가는 길

지동리 내리계곡 입구엔 자연휴식년제를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과 함께 출입을 금하는 각종 장치들이 즐비합니다. 김필봉씨의 오두막이 있는 늡다리로 가는 이에 한해서 암묵적으로 출입이 허락되는 곳입니다.

백두대간의 선달산(1236m)과 옥돌봉(1242m) 등에 뿌리를 둔 내리계곡은 봄날이라도 제법 수량이 많은 편입니다. 생동하는 봄빛이 뒤덮은 골짝은 세상에 없는 신록으로 가득하죠. 급하지 않게, 큰 높낮이 없이 순하게 이어지는 늡다리 찾아가는 길은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사행천을 이룬 내리계곡이라 끊임없이 굽이를 틀어 그 속내를 쉬 보여주는 법이 없습니다.

한 명이 지날 수 있는 좁다란 오솔길이 무인지경의 거대하고 고요한 대자연 속으로 끊어질 듯 이어집니다. 그러는 사이 낙엽송숲과 ‘미남바위’ ‘돌고개’ ‘살짝고개’ 같은 이름의 장소를 지납니다. 중간쯤 되는 지점에 커다란 돌배나무 한 그루가 이정표마냥 서 있습니다. 그곳은 계곡물도 넓고 완만히 흘러 자갈밭 한 곳에서 쉬어가기 좋습니다. 산 깊은 계곡을 따라 그렇게 두 시간쯤 걷다 보면 어느새 늡다리에 도착합니다. ‘늡다리’는 김필봉씨의 오두막이 있는 이곳의 옛 지명입니다. 수십 년 전에는 몇 가구가 화전민처럼 살았다는데, 사람들이 떠나고 오래 방치되어 덩굴이 뒤덮었던 곳을 김필봉씨가 찾아 터전을 일구고 집을 지었습니다.

늡다리엔 김필봉씨가 직접 지은 건물 네 채가 가파른 산비탈 아래,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서 있습니다. 네 채의 건물은 모두 흙과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자재 하나하나를 모두 사람이 지고 날라야 하는 심심산골이다 보니 작은 건물이라도 지으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죠. 그래도 전기가 들어오고, 유선 전화도 있습니다. 전기는 몇 달에 걸쳐 태양열 집열판을 지고 올라와 설치한 덕분이고, 전화는 산 너머의 마을에서부터 선을 끌어다 연결한 것입니다.

우리가 찾을 때쯤엔 마당 축대 아래서 삼지구엽초와 홀아비꽃대가 예쁜 꽃을 피우고, 매발톱꽃도 꽃망울을 터뜨리려 할 겁니다. 입구엔 산작약이, 그 주변으로 현호색, 꽃마리, 봄맞이꽃, 나도개감채, 금낭화에 지천으로 늘린 애기똥풀까지 온통 꽃잔치가 펼쳐지고 있을 늡다리의 봄이 저도 기대됩니다.

“여기 와서 제일 잘한 것이 태양열 집열판을 완성한 거야. 저거 다 만들고 나니 그렇게 편하네. 세탁기도 돌리고, 전기밥솥도 사용하고, 전기도 쓰고 싶은 만큼 써.”

그 여름, 마당 한쪽의 밭에 세운 원두막 지붕의 집열판을 가리키며 김필봉씨가 자랑스레 했던 말입니다. 이동식 LED등을 켜 훤해진 마당에서 아궁이에 가마솥 뚜껑을 걸어놓고 참나무 장작불에 삼겹살을 굽던 그 밤, 두메산골 좁다랗게 열린 밤하늘에 달도 두둥실 떴습니다.

▲참꽃마리Ⓒ이승태

▲개감수Ⓒ이승태

▲회리바람꽃Ⓒ이승태

▲돌단풍 분홍꽃Ⓒ이승태

▲현호색Ⓒ이승태

▲노랑매미꽃Ⓒ이승태

▲애기괭이밥Ⓒ이승태

칠룡동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늡다리 건너편의, 가파르게 까마득히 솟아 벼랑처럼 느껴지는 산 깊은 골짝에 사라져버린 마을이 있습니다. ‘칠룡동’과 ‘회암골’로 불리던 곳입니다. 늡다리를 출발해 상류로 30분쯤 오르면 건너편에서 골짜기 하나가 합수하는 게 보입니다. 그쯤의 양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사이로 쇠줄이 매져 있죠.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짚라인처럼 개울을 건너는 시설입니다. 일대 개울은 보기엔 얕은 듯해도 엉덩이까지 빠지는 게 기본이라서요.

옥빛을 이룬 내리계곡을 공중으로 건너는 것은 스릴 만점입니다. 장비 없이 어설프게 도하를 시도했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구간이죠. 건너간 곳은 골짜기 상류에 옛날 칠룡동 마을이 있어서 칠룡골이라 불리는 지계곡입니다. 백두대간 선달산에서 곧장 북쪽으로 발달한 골짜기죠. 계곡 옆으로 희미한 옛길을 더듬어 김필봉씨가 길을 만들어두었습니다. 길 이름은 ‘돌쇠와 꽃님이’입니다. 야생의 계곡을 수도 없이 넘나드는, 선 굵고 거친 감이 있는 칠룡골은 돌쇠 이미지를 닮았고, 꽃이 많고 비교적 길이 좋은 회암골은 꽃님이 느낌이 강해서랍니다.

시원한 물소리가 청량감을 더하는 칠룡골은 원시계곡 그 자체입니다. “콸콸콸~”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에서 그 어디보다 힘찬 자연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계곡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자리한 각양의 바위마다 이끼가 가득 꼈고, 희미한 길 흔적이 신비감이 느껴지는 칠룡골 안으로 뻗어있습니다.

어디는 길이 어떻고, 어디쯤에서 계곡을 건너고, 어쩌고저쩌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야생의 계곡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위험 구간에 줄이 매져 있고, 희미한 길이 눈에 보이지만 글로 설명해내기가 참 난해한 곳입니다. 거기가 거기고, 모두가 거시기하죠. 그러나 칠룡동에 이르기까지 2킬로미터 남짓의 칠룡골은 우리 땅에 이런 때 묻지 않은 비경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름답고 멋지고 시퍼렇게 펄떡이는 보물 같은 골짜기입니다. 이끼 낀 돌을 밟고 아슬아슬하게 계곡을 건너는 곳이 부지기수고, 때로는 등산화를 벗어 목에 걸고 기어이 물에 들어가야 해결되는 구간도 나타납니다. 애기괭이눈, 갈퀴현호색, 회리바람꽃, 나도개감수, 족도리풀 같은 귀한 우리 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곡을 따라 흐드러지고요.

▲늡다리는 황홀하지만 편안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위험한 곳에 밧줄이 매어져 있다.Ⓒ이승태

칠룡동 중간에 만나는 칠룡폭포는 일곱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아래의 깊은 소가 간담을 서늘케 합니다. 칠룡폭포 언저리엔 칠룡동 주민들이 사용하던 옛길 흔적이 뚜렷합니다. 우마차가 다녔을 법한 길이죠. 늡다리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라 여겼는데, 칠룡동에 비하면 늡다리는 주막이라도 있었을 번화가쯤 되는 느낌입니다. 칠룡폭포 바로 위에는 수십 명은 넉넉히 들어갈 만한 숨은 바위굴도 보입니다.

칠룡폭포를 지나면서 계곡의 야성미는 눈에 띄게 사그라져 건너기도 쉽습니다. 계곡 위로 쓰러져 자연스레 통나무다리가 된 곳을 지나자 곧 칠룡동에 닿습니다. 오른쪽에서 지계곡이 합수되는 곳에 자리한 칠룡동에는 아직 산신당이 남아 있죠. 눈에 잘 띄게 삐쭉 솟은 6미터쯤의 자연석 앞에 막돌을 쌓아 만든 단이 있고, 그 위에 30센티미터쯤 되는 빗돌이 보입니다. 빗돌 앞면에 ‘七龍山 端宗大王神位 檀紀 四二九0年’이라 음각해 놓았는데, 재밌는 게 429는 한자로, 마지막 0은 아라비아숫자로 새겨두었습니다. 단기 4290년이라면 서기로 1957년에 해당하는데요, 한때 30가구가 넘게 살았다는 게 김필봉씨의 설명입니다. 그들도 1968년 시행된 ‘화전정리법’으로 쫓겨난 게 아닐까 싶군요.

산신당 바로 앞에 구들을 갖춘 움막터가 보입니다. 심마니들이 쓰는 것이랍니다. 김필봉 씨는 이들을 ‘잡마니’라 부릅니다. 일말의 철학이나 양심도 없이 온갖 풀이란 풀은 다 캐가서 그렇답니다. 그리고 온 산에 야영지를 만들고 얼마간 살면서 챙겨온 세간과 발생한 쓰레기며 움막을 지을 때 썼던 비닐 같은 것을 그 자리에 묻거나 방치하고 가버린다네요. 대구에서 생산된 ‘금복주’ 빈 소주병도 눈길을 끕니다. 70년대산(産)이니 골동품 수준의 병입니다.

▲칠룡동 산신당의 ‘칠룡산 단종대왕’ 비석. 단종은 칠룡동 주민들의 해결사였을 것이다.Ⓒ이승태

심마니들이 걷던 길 따라

산신당이 있는 칠룡동에서 지능선 하나를 넘어간 건너편 골짜기가 회암골입니다. 칠룡동을 출발해 골짜기로 들어선 양쪽으로 좁은 비탈에 집터가 꽤 보입니다. 저들은 무슨 사연으로 유배지 같은 이 오지 산골에 들어왔으며, 어떤 삶을 꾸려갔을까요? 지긋지긋하고 고단하고 궁핍한 산골살이였을까요? 마을 입구 산신당의 ‘칠룡산 단종대왕’에게 의탁하며, 비슷한 처지의 이웃과 서로 의지하며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누렸을 듯도 합니다. 이 골짝 위 볕 좋은 능선에 무덤이 꽤 보이는데, 칠룡동 사람이었겠다 싶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에 귀 막고 살다가 죽어서도 산새소리, 바람소리 벗 삼으려 여기에 묻혔나 봅니다. 온 세상을 마실 나가듯 떠돌고 있는 나는 지금 저들에 비해 더 행복한가 궁금해집니다.

능선에 이정표 같은 박달나무를 지나 회암골로 접어듭니다. 칡이나 다래, 머루, 으름 같은 덩굴식물들이 뒤덮은 골짜기를 이리저리 헤치며 한 시간 반쯤 내려가서 회암동 터에 이릅니다. 이곳도 칠룡동과 사정은 비슷한 듯, 돌담이 곳곳에 보입니다. 이곳 마을 입구에도 산신당 터가 있는데, 축대만 남았습니다. 집터에서는 반쯤 묻힌 크라운 건빵 봉지도 보입니다. 측면에 미로 찾기 그림도 그려져 있는 봉지입니다. 아득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회암동 터에서 남서쪽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회암령입니다. ‘회암(回岩)’과 회암령은 신라의 의상대사가 이웃의 부석사를 지을 때 그 터에 있던 너럭바위가 이곳으로 날아와서 붙은 이름입니다. 회암동 터에서 날머리까지는 길이 좋고 평탄합니다. 발치엔 큰괭이밥, 졸방제비꽃, 노랑매미꽃, 황새냉이, 연복초 등이 꽃망울을 터뜨려 길은 더욱 환합니다.

다시 만난 내리계곡, 물살이 약하고 얕은 곳을 골라 맨발로 건너는데, 등골이 오싹할 만큼 찹니다. 발이 시려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정작 시린 것은 저놈의 신록입니다. 어쩌라고 저리도 마음에 시린걸까요!

▲칠룡골은 물빛도 이끼도 모두 생생하다. 그 풍광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이승태

2023년 4월 28(금)-30(일)일, 오지의풍경학교 제1강 <꿈꾸는 유배지 늡다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4월 28일(금요일)>

07:30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에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7시 2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오지의풍경학교> 버스(000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축소·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강 여는 모임에 이어,

10:30 영월 마트에서 장보기(영월농협하나로마트)

12:00 점심식사(장릉보리밥집)

13:20 영월 내리계곡 입구 도착, 계곡트레킹 시작

15:30 늡다리 도착, 숙소 배치 후 휴식

17:00 저녁식사 준비

18:00 저녁식사 후 휴식

<4월 29일(토요일)>

08:00 아침식사 준비

09:00 아침식사

10:20 칠룡골 트레킹 출발

12:30 트레킹 도중 점심식사

15:30 늡다리 도착, 휴식(원하시는 분은 가벼운 산나물 채취)

17:00 저녁식사 준비

18:00 저녁식사 후 휴식

<4월 30일(일요일)>

08:00 아침식사 준비

09:00 아침식사

10:30 정리 후 늡다리 출발

11:30 내리계곡 입구

12:00 영월에서 점심식사(장릉보리밥집)

13:00 영월 출발

16:30 서울 도착(예정)

▲<꿈꾸는 유배지 늡다리> 답사 개념도Ⓒ오지의풍경학교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오지의풍경학교 기사(4월)를 확인 바랍니다. 오지의풍경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을 즐기려는 동호회원들의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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