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진은 다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한계령에서부터 시작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순례는 8일에 걸쳐 원주지방환경청까지 이어졌다. 한편, 원주지방환경청 앞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매일 점심시간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규탄하는 1인 시위가 지속되었고, SNS 공간에서는 사업을 반대를 인증하는 챌린지가 이뤄졌다.
시민들은 서울에서, 강원도에서, 각자의 일터와 생활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순례 마지막 날인 2월 2일, 원주지방환경청 앞에 각지에서 모인 100명 이상의 인원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백지화를 외쳤다. 왜 사람들은 한겨울 엄동설한 날씨에 도보 산행을 마다하지 않고, 홀로 1인 시위를 한 것일까.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둘러싼 무수한 의혹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제출과 검토가 지리멸렬하게 반복되었다.
2015년 12월 사업자 양양군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 설치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환경부 산하 원주지방환경청(이하 원주청)에 제출하였다. 원주청은 양양군이 제출한 초안의 미흡한 점을 통보하였고, 이에 양양군은 2016년 7월 환경영향평가서의 본안을 제출하였다. 이후 약 3개월 뒤인 2016년 11월, 원주청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검토 결과 양양군에 보완을 요구하였다. 첫 번째 보완 요구였다.
2016년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제출 당시부터 논란이 크게 일었다.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가 중요 자료의 누락, 조작 의혹이 있다고 밝혀진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서류에는 반영되지 않은 현지 조사 데이터,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 기록과 같이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규상 반려 요건에 해당하는 사항들이 발견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원주청은 반려가 아닌 보완을 요구했다. 원주청의 결정에 며칠 앞서 조경규 당시 환경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30년간 행정을 해본 입장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그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산양을 고려하겠다"라고 발언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당시 환경부의 입장이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었다.
양양군은 2년 6개월에 걸쳐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 2019년 5월 원주청에 제출하였다. 이에 원주청은 2019년 9월, 환경영향평가서 검토 결과 해당 사업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설악산의 자연환경, 생태경관, 생물다양성 등에 미치는 영향과 설악산국립공원계획 변경 부대조건 이행방안 등을 검토한 결과, 사업 시행 시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되고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설악산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 사업의 백지화를 반겼고, 설악산을 지켜냈다고 믿었다.
이러한 기대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혹감과 분노로 바뀌었다. 양양군이 원주청을 상대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에 대한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원주청의 부동의 결정에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존재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백지화가 명백해 보였던 케이블카 사업이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환경단체, 시민들이 사업자의 설득력 없는 몽니라고 반발하였으나, 행정심판위원회는 양양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같은 결정에는 행정심판위원회보다 위의 입김, 즉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개입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쏟아졌다. 결국 2021년 4월, 원주청은 부동의 결정을 번복하고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서의 재보완을 요구했다. 케이블카 사업의 재추진이자, 두 번째 보완 요구였다.
그런데 재보완서의 작성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원주청이 사업자인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 세부 이행조건을 대폭 완화해주는 확약서를 작성해준 것이다. 환경영향평가 관련 제도 어디에도 확약서에 대한 내용은 없다. 말하자면, 국립공원인 설악산의 자연을 지켜야 할 환경부가 환경 파괴가 예상되는 사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제도와 절차를 무시한 셈이다. 2019년 환경영향평가서 보완서에 대한 부동의 결정을 내렸던 때와는 전혀 동떨어진 태도였다.
2022년 12월, 양양군은 원주청에 확약서를 바탕으로 한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를 제출하였다. 현재 원주청이 이를 검토 중에 있으며, 언론을 통해 밝혀진 환경부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환경부는 제출된 재보완서에 대해 전문기관의 검토 후 3월 중 최종 의견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무유기에 정권 눈치 보는 환경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 과정의 가장 큰 문제를 꼽자면, 환경부의 직무태만을 넘어 직무유기에 가까운 업무 태도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은 설악산 중에서도 생태적 가치가 특히 높은 핵심지역에 해당하며, 멸종위기종 1급에 해당하는 산양의 주요 서식지에 걸쳐있다. 다른 어느 곳보다 엄중하게 사업의 적절성을 판단해야 함에도 환경부는 적극적으로 사업 계획을 반려하기보다는 보완 등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정권의 눈치를 살폈다. 심지어는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는 별도의 확약서를 작성하면서까지 사업자의 편의를 봐주었다.
현재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양양군이 원주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의 환경 파괴가 더욱 우려되는 상황으로 밝혀졌다.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의 해발고도가 내려가며 전체 사업면적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지형변화지수 또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공사를 위한 임시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방안이 재보완서에 포함되었다고 전해진다. 케이블카를 위한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더해진 것이다.
이에 대한 전문기관들의 의견은 명확하다. 사업자인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검토 결과 보전대책의 미흡, 부실한 조사 내용, 보완 전보다 훼손이 더 심화된 사업계획 등 현재의 재보완서로는 사업의 진행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음이 전해졌다. 이 외에 환경부 산하기관들의 재보완서 검토 결과에도 케이블카의 안정성,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등의 우려와 같이 부정적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같은 내용들은 2015년8월 국립공원위원회가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하면서 제시한 조건들과 맞닿아 있기에 상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현재의 사업계획은 백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렇듯 개선이 아닌 개악된 환경영향평가서로 보이지만, 사업의 전면 백지화가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무조건 추진하겠다고 공약할 만큼 사업에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환경부의 태도는 철저히 정권의 눈치 보기였기에, 곧 발표될 환경영향평가서 검토 결과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가 우리 사회에서 특히나 많은 우려를 사는 이유는 이 사업이 단순히 설악산 한 곳의 환경 파괴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점에 있다. 설악산은 국가가 지정한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환경적 보전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곳이다. 이런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조차 이렇게 엉터리로 추진된다면, 설악산보다 보전 가치가 낮다고 평가되는 곳들의 개발사업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날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그렇기에 전국 각지의 환경단체와 설악산을 지키려는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백지화를 외치는 것이다. 설악산을 지키는 것이, 닥쳐올 개발사업의 폐해를 막을 보루가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황된 공약에 설악산마저 무너지면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이 처음 논의된 때는 1982년이었다. 이후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줄곧 강원도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고, 사업에 대한 반대는 강원도의 발전을 막고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발언으로 곧잘 치환되었다. 그 이면에는 케이블카 사업을 선전물로 이용한 정치인들의 속셈이 있었다. 다수의 정치인들이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며 강원도의 발전을 약속했지만, 설악산 환경의 보전과 절차적으로 공정한 사업의 추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살펴보았듯, 현재 추진 중인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 설치사업'은 설악산의 환경을 파괴함이 자명하고, 그 절차에 있어서도 불법적인 내용이 명백한 사업이다.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된다 한들, 이렇게 얻어낸 사업 앞에서 우리는 떳떳할 수 있을까. 이제는 설악산의 가치를 제대로 지켜내며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