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배상 판결에 대해 판사들이 '반일 종족주의'에 빠져있으며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난했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가 통일부가 주관하는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외교부는 이날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면담을 예정하고 있다.
28일 통일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관 협업을 통한 통일미래 준비를 위해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신설을 추진해 왔으며, 최근 인선을 완료하고 금일(28일) 관련 규정을 발령한다"며 김영호 교수를 위원장으로 인선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 교수는 지난 2019년 7월 17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 북 콘서트에 참석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 이 판결을 내린 판사들에 대해 강한 비난을 쏟아 낸 바 있다.
당시 이 장면을 보도한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김 교수는 "대법원 판사들이 내린 판결문을 보시게 되면 전부 다 반일 종족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며 "정상적인 교육을, 법률교육을 받은 법관들이,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법관들이 썼다고 볼 수 없는 판결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강제동원의 피고이자 가해자인 일본이 아닌, 배상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비난한 김 교수가 위원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해당 위원회의 주요 목표로 통일부가 내세운 것이 '국민적 공감대 확산'이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지난 1월 27일 대통령 업무보고 당시 이 위원회에 대해 "각계 권위있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통일미래 준비를 위한 민‧관 협업 플랫폼"이라고 규정하며 "통일미래 정책개발 및 국내외 공감대 확산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현재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 간 협상을 이어가고 있고, 피고 기업이 아닌 한국과 일본의 다른 기업들이 참여하는 배상 방식을 두고도 일부 피해자가 완강히 거부하는 등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외교부는 소송을 진행했던 원고 측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면담을 갖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강제동원 사안에 대해 이같은 사고를 가진 인사가 통일부 산하의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됐다고 밝히는 것 자체가 일본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통일부가 강제동원 사안과 관련해 직접적인 업무를 맡은 주관부처는 아니기 때문에 해당 발언과 위원장 업무 수행은 크게 관련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 역시 이러한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가 북 콘서트 행사에서 강제동원 사안과 관련해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을 인지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전문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인선한 것"이라고 답했다. 해당 위원회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번영을 위한 중장기 구상으로 「新(신) 통일미래구상」"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김 교수의 강제동원 발언은 위원장 인선과 별개로 봐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통일부가 스스로 언급했듯 해당 위원회가 국내외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론화 사업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통일부 역시 정부의 일원이라는 점, 통일 문제와 한일 관계 및 양국 사안을 분리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보다 효과적인 위원회 활동을 위해 신중한 인선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1년 1월부터 1년간 대통령실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으며 2012년 8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당시 외교통상부 인권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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