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동조합에 대해 국고 보조금 지원을 사실상 중단한다고 밝혔다. 무리한 노조 압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노동단체 지원 사업 개편 방안'을 확정해 다음 달 사업공고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보조금 지원을 신청하는 노동단체에 대해 노동조합법 제14조에 따른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제출하지 않는 노동단체는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노동단체 지원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고보조금 사업"이라며 "회계가 투명한 단체에서 수행해야 책임 있게 운영돼 재정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노조법 제14조와 제27조에 근거해 노조에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은 노조는 지원사업 선정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회계장부 비치여부 보고 대상 노조 327곳 가운데 정부 요구에 맞게 자료를 제출한 노조는 120곳(36.7%) 뿐이었다. 나머지 207곳(63.3%)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표지'만 냈다고 노동부는 밝혔다.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국가보조금 지원 중단을 거론하면서 요구하는 회계가 국가보조금 회계가 아닌 조합비로 운영되는 '일반회계' 장부라는 데 있다.
노조 회계는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일반회계와 국가 지원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국고보조금 회계로 나뉜다.
국고보조금 회계는 정부 시스템에 따라 이미 정부의 관리 감독 대상이다. 노조는 기획재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즉 'e나라도움'을 통해서 영수증과 증빙 자료를 첨부한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을 제출해오고 있다.
조합비로 운영되는 일반회계도 열람 절차를 밟으면 조합비를 낸 조합원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고보조금 회계가 아닌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일반회계 내지 자료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조합원이 열람할 수 있도록 비치해놓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게 일반회계 '표지'는 제출할 수 있지만 '내지'까지는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일반회계의 내용을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노조가 행정관청의 요구로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더라도 재정 장부·서류를 반드시 제출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놨다. 즉, 정부가 노조에 일반회계 '내지'까지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법조사처로부터 받은 답변자료를 근거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제14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노조법 제27조는 노동조합으로하여금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에서 정부의 요구 대상에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도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우 위원의 설명이다.
다만, 정부가 아닌 조합비를 낸 조합원에게는 회계 장부를 공개해야 한다고 입법조사처는 해석했다. 입법조사처는 "조합비의 운영을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것은 조합민주주의에 부합한다"며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공개할 때와 행정관청을 대상으로 보고할 때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의 범위가 같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MZ세대 노동조합을 양대노총과 구분 짓고 기존 노조가 부패했다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가운데, 노동부는 올해 예산 44억 중 절반인 22억 원을 신규 참여 기관에 배정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대 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지원금의 90% 이상 차지했던 사업에 근로자협의체, MZ노조 등 새로운 노동단체가 참여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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