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란봉투법의 유래와 그간의 추진 경위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국이 ‘노란봉투법’으로 여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자동차 파업과 관련, 법원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를 회사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에 3명의 자녀를 둔 한 시민이 아이들 학원비 등을 절약해 모은 4만7000원을 담은 노란봉투를 노동자에게 전달해달라며 한 언론사에 보내온데서 유래한다.
이같은 사실이 공개된 이후 많은 시민들이 노란봉투로 모금에 참여하는 등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2015년 4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다. 법안의 핵심내용은 회사가 파업을 한 노동자 개인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고, 20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 또 다시 노란봉투법이 발의돼 지난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공청회가 열렸고, 그 동안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4번의 심사를 거쳤다. 급기야 지난 15일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수정안을 통과시켰고, 17일에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을 앞두고 있다.
2.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된 법안 내용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합법 제2조와 제3조의 내용인데, 먼저 제3조부터 살펴본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행 법률 조항과 통과된 법안을 비교해봤다.
우선 현행 제3조는 회사가 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노조가 노동조합법에 의한(소위 ‘합법적’)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를 하여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회사가 노조나 노동자에게 민사법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노조가 노동조합법에 의하지 않은 교섭이나 행위(소위 ‘불법파업’)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그동안 어떻게 처리했을까. 노동조합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어 민사법상의 공동불법행위 조항이 적용됐다. 이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지는 배상책임은 부진정연대채무다.
회사가 본 손해가 100억원이고,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100명이라면,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전체 100억원을 갚아야하는 것이다. 만약 1인의 노동자가 10억을 갚는다면, 나머지 노동조합과 99명의 노동자가 90억원을 갚으면 된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노동조합이 일부를 변제하고, 노동자들이 남은 금액을 1/N로 나눠 앞으로 들어오는 임금에서 일부씩 차감하는 방식으로 갚아나간다. 그러다보니 평생 갚아야할 액수가 너무 많아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난 2002년 두산중공업과 2003년 한진중공업의 사태에서 2명의 노동자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또한 회사가 부진정연대책임의 법리를 악용해 노조원이 노조를 탈퇴하면 소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회유하기도 해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민사법상의 불법행위에 적용되는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가 손해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배상의 범위를 따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귀책사유와 기여도의 판단을 법원의 의무로 규정한 것이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노동자가 소극적으로 참여한 노동자보다 더 많은 배상을 하도록 한 것이다.
2015년에 처음 발의된 법안부터 최근의 법안에 계속 포함됐던, 회사가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최고액을 제한하는 내용은 이번 소위 통과 안에는 빠졌다. 일부 정당과 재계에서 회사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했었는데, 이를 불식시킨 것이다.
다음으로 제2조를 살펴보자.
이 조항이 주로 문제가 됐던 점은 원·하청 관계에서 하청회사의 노동조합이 원청회사와 노사협상을 할수 있는지 여부였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정의 규정에는 하청회사의 노조가 원청회사를 대상으로 노사협상을 청구할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그동안 법적 분쟁이 많이 있었다.
이와 관련한 법원의 일관된 입장은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는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등)는 것이다.
또한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도 CJ대한통운이 하청회사인 집배점 택배기사들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CJ대한통운 사례의 경우 CJ대한통운이 원청회사, 2000여개의 자회사가 하청회사가 해당한다. 자회사에 고용된 택배 노동자들이 CJ대한통운에 노사협상을 요구했는데,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사협상을 거부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청회사인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노사협상의 대상이라고 인정했다.
그동안의 법원의 법해석과 적용을 법률로 명문화한 것이 이번 소위 통과법안이다. 법원이 계속 판시했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회사를 노사협상의 상대방으로 인정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모든 원청회사가 하청회사 노조의 협상 대상이 될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법안에 반대한다. 그러나 모든 원청회사가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원청회사 중에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회사만 협상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어떤 하청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원청회사에 협상을 요구하려고 한단 말인가.
3. 노란봉투법안의 향후 처리 전망
노란봉투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사위원회, 본회의의 의결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없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법안 내용은 배상책임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구분하도록 했고, 법원의 판례를 사용자의 개념에 명문화한 것일 뿐이다. 일부 회사의 재산권침해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조항은 삭제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재계는 노란봉투법을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이번에 소위를 통과한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필요하면 대안을 마련해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시하면 된다. 노동조합법의 합리적 개정에 정부와 여당이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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