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화주에게 부과했던 안전운임 준수 의무를 없애는 개편안을 발표하며 사실상 안전운임제 폐기 입장을 공식화한 가운데, 화물연대는 15일 "대기업 화주만을 위한 안전운임제 폐지 법안을 거부한다"고 반발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은 사실상 안전운임제를 폐지하는 내용"이라며 "새로운 법안은 화주 책임 면제, 처벌조항 완화 등 기존 안전운임제의 도입 취지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밑바닥 운임을 군말 없이 주는 대로 받아야 했던 과거와 화주의 무책임과 운송사의 횡포에 시달렸던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되었다"며 "화물노동자의 삶을 '저운임으로 인한 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역행시키는 정부 여당의 법안을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강조했다.
왜 '안전운임제 폐기'가 사실상 공식화 되었나
화물연대는 지난해 일몰되는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화물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의 역할을 한다. 낮은 운임으로 과로·과적 운행이 일상화된 화물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운임 이상을 받을 수 있게끔 국토교통부가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화주가 이 운임을 주지않으면 과태료를 내게끔 했다.
하지만 정부는 화물연대 총파업 기간 동안 대화와 교섭 대신 사상 최초로 두 번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법과 원칙'을 강경하게 고수했다. 더구나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도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해 무효화 됐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경대응이 계속되자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관련기사 : 화물연대 파업 철회…정부는 '3년 연장안' 백지화)
이에 당초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말했던 정부는 화주에 부과했던 안전운임 준수 의무를 없앤 안전운임제 개편안을 발표하며, 사실상 안전운임제 폐기를 공식화했다. 지난 6일 국민의힘과 국토교통부는 '공정한 시장질서 회복을 위한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며 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당정은 안전운임제의 명칭에서 '안전'을 빼고 표준운임제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새로 도입되는 표준운임제에는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운임 의무가 사라졌다. 최저임금의 역할을 했던 안전운임제의 핵심 기능이었던 화주 처벌조항이 빠진 것이다.
표준운임제에 따라 화주-운수사의 운송운임 계약에는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권고)이 제시된다. 반면 운수사-차주 간 운임계약에는 강제 조항을 유지한다. 즉, 운송사가 주로 대기업인 화주로부터 얼마에 화물 운송 계약을 하기로 했든 화물차 기사한테는 정부가 정해준 금액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화주(갑)-운송사(을)-운송노동자(병)로 이어지는 계약에서 갑의 의무를 없애고 을-병 의무만 남긴 셈이 되었다.
표준운임을 결정하는 구조도 화주에게 유리하게끔 변경된다. 기존 안전운임제를 결정하는 구조는 정부, 수출회사, 운송사, 화물연대 대표가 각각 4:3:3:3이었는데, 앞으로는 6:3:2:2로 변경된다. 운수사와 차주 몫은 기존 6명에서 4명으로 축소되고, 대신 공익위원이 2명 늘어난 구조다. 공익위원은 정부가 임명하기 때문에 정부의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친화주 성향을 보이는 윤석열 정부에 영향을 받는 공익위원이 표준운임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물연대는 "정부안은 물류비 인상을 근거로 안전운임제 폐지를 주장하는 화주 대기업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며 "정부여당이 발표한 법안은 화물노동자들에게 다시 과거로 회귀하라는 폭력적인 명령"이라고 밝혔다.
이어 "작년 두 차례의 총파업은 안전운임제 일몰을 앞두고 돌입할 수밖에 없는 총파업이었다"며 "두 번의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국회 법안 처리는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겹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화주만을 위한 안전운임제 폐지 법안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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