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전차에 이어 미사일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러시아가 또 다시 핵 무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3일(이하 현지 시각)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사거리 150km인 '지상발사 소직경 폭탄'(GLSDB)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이 미사일을 확보할 경우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다.
이날 미 국방부는 약 2조7000억 원 상당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미사일의 구체적인 인도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첫 인도까지는 9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SAMP/T 방공시스템'(MAMBA)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프랑스 국방부가 전했다. 이는 장거리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프랑스 국방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러시아의 미사일과 항공기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미사일과 유럽의 방공망 지원 소식이 나오자 러시아는 핵 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치며 서구 국가들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4일(현지시각) 러시아 언론인인 나다나 프리드릭손과 텔레그램을 통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나 러시아 국내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떠한 제한도 부과하지 않고 위협의 성격에 따라 모든 종류의 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있다"고 답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에 대해 충분히 정의했다"며 "핵 억지력을 포함한 우리의 교리 문서에 따르면 장담하건데 (우리의 대답은) 엄격하고 빠르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핵 사용이 단순히 위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은 이후인 2020년 6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연방의 핵 억제 정책 기본 원칙'이라는 문서에 서명했는데, 여기에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 공격을 당해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등의 사용 조건을 열거하며 핵무기 활용 가능성을 열어둔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번 전쟁으로 촉발된 '서구 대 비 서구'의 구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중국 국영 방산업체들이 무기 기술 및 부품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들이 항법 장비와 전파방해 기술, 전투기 부품 등을 러시아 국영 방산업체에 판매했다는 것이 러시아 세관 자료에서 확인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영리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에서 입수한 자료를 분석했는데, 지난해 4~10월 러시아 세관 자료에 이러한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 판매 규모는 거래별로 10억~수십 억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사실상 서구 대 비서구의 대리전 형식을 띄게 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종식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구체적인 종전안을 제안했으나 양측 모두 이를 거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스위스의 독일어권 매체인 <노이에취리허차이퉁>(NZZ)은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러시아를 비밀리에 방문해 중재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의 안에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20%를 러시아에 내어주고 전쟁을 끝내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문은 우크라이나의 경우 영토를 러시아에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러시아의 경우 장기적으로 가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으며, 그에 따라 미국이 러시아에 전차와 미사일을 제공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 측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미국 NSC와 CIA 등은 보도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했고, 러시아의 대통령실은 크렘린궁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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