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 이행을 두고 정부가 일본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의 협상안이 일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일 간 협의를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규정했다.
18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일본의 사죄 배상이 빠진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안을 즉시 폐기하고 원점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서한에서 이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마련에) 일본 기업의 참여는 불분명하게 남겨둔 채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대신 배상하도록 하는 해법안은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역사 문제를 돈 문제로 전락시키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일 양측이 이 사안을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윤석열 정부는 대일 과거사를 졸속 봉합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한미일, 한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동맹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있다"며 안보 문제가 그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항의서한 전달에 참석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사과도 어렵고 기금 출연도 어렵다고 하는데 10여년 전 미쓰비시는 우리와 교섭하며 사과문 초안까지 내놨었다"며 "시민단체도 이렇게 하는데 정부는 왜 안된다고만 하냐"라며 박진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12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국회의원과 공동 개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득을 본 한국 기업이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에 기여금을 내놓고 이를 일단 피해자에게 지급한 뒤 이후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하는 방식의 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피고인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도, 해당 사안에 대한 사과도 없는 정부 안을 두고 토론회 현장에서도 항의가 나왔고 일부 토론회 패널도 적절하지 않은 방안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후 해당 방안에 대한 시민사회와 피해자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으로부터 위자료 지급 확정 판결을 받은 양금덕 피해자는 17일 정부안을 규탄하는 광주 지역 60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해 "내일 죽더라도 한국에서 주는 더러운 돈은 받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내가 바라는 것은 일본의 사죄"라며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더라도 일본이 무릎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는 어떤 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한일 간 협상을 서두르면서도 피해자 측이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이전보다 더 강하게 제기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17일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은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 호응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면 (한일 국장 급) 협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일 양국은 16일 국장급 협의를 가졌는데,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호응조치로 소위 '사죄와 기여'에 대해 일본측에 강조했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려 방안 중 하나인 '대위변제'를 진행할 경우 일본 가해기업이 참여하는 통로가 있냐는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의 질문에 조 차관은 "그것도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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