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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는... 아직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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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는... 아직 살아 있다

[기후위기와 산악열차] ②

이 땅에 사는 침엽수 중에서 유일한 특산종인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처럼 남부 산악지대에만 자생하고 있으며, 세계 자연보전 연맹(IUCN)에서 지정한 멸종 위기 식물이다.

구상나무라는 이름은 밤송이처럼 온몸을 가시로 뒤덮은 성게의 제주 사투리인 ‘쿠살’에서 유래한다. 구상나무 잎이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려나는 모습이 성게를 닮아 보인다고 해서 ‘쿠살낭’이라 부리던 것이 발음이 변하여 ‘구상나무’가 되었다.

구상나무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중에서 11만 년 전에서 1만 9천 년 전인 마지막 빙하기 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대륙빙하가 만들어진 아시아 북부와 달리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지역은 얼음에 갇혀있지 않으면서 침엽수가 번성하게 된다. 그러다 홀로세의 따뜻해지는 기후와 함께 활엽수가 들어오고 침엽수는 점차 북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북쪽으로 밀려나지 못한 구상나무는 고산지대에 남겨지게 된다. 이렇듯 고산지대에 남아 살아있는 종을 빙하기 유존종이라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빙하기 유존종은 구상나무를 비롯해 암매, 눈잣나무 등 몇 개체가 있다.

▲ 반야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보이는 구상나무의 죽음.(2021년) ⓒ이창수

2020년은 어니스트 윌슨에 의해 구상나무가 1920년 세계의 학계에 신종으로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국립생태원에서 ‘기후변화와 구상나무 특별전’이 열렸었다. 보통 특별전이라 하면 특별한 물건을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여는 전시회이다.

그러나 언론에 조명된 내용은 구상나무의 죽음과 기후변화에 대한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구상나무는 죽어간다. 한라산의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면서 그 심각성을 알 수 있고, 지리산 반야봉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21년 국립공원 연구원은 지원한 시민과학자들과 구간을 나누어 지리산의 등산로에서 만나는 구상나무에 대하여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무의 크기를 재고, 건강한지, 상처는 없는지, 한 해 동안 얼마나 몸이 커지는지 등을 조사하였다. 지리산의 구상나무 조사구간은 성삼재에서 반야봉, 거림에서 세석, 뱀사골에서 화개재, 백무동에서 장터목, 중산리에서 장터목, 그리고 새재에서 중봉까지 6구간이다.

내가 자원한 반야봉 구간의 구상나무도 죽어가고 있었다. 강아지처럼, 고양이처럼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은 고통을 온몸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 몸부림으로, 눈빛으로 우리는 동물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식물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이 죽음의 행렬에서 도망갈 수가 없다. 그냥 견딜 뿐이다. 견디다 견디다 잎을 떨구고 가지 끝에서부터 서서히 물기를 잃어가고 영양분 공급이 끊기면서 하나씩 하나씩 하얗게 탈색되어 간다. 그렇게 죽은 나무가 수백이고 그렇게 죽어가는 나무 수백이 반야봉에 펼쳐져 있다. 하얗게 타들어 가면서 죽어가는 생명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한 기록뿐이다. 그리고.... 지리산의 구상나무는 아직 살아있다.

구상나무가 하얗게 말라가는 지리산 정령치 아래 고기리서부터 산악열차를 설치하려는 정치인, 개발업자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기술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친환경이라 부르며 지리산에 나무를 베어내고, 야생동물의 터전을 위협하며 산악열차를 설치하려 한다. 전기를 에너지로 사용하는 산악열차라며 친환경이라 말한다. 전기로 에너지를 사용하면 친환경일까? 그럼 그 전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전기는 화석연료를 태워서 만든 발전소에서 나온다. 화석연료를 태워 생산한 전기를 사용해서 차량 무게만 54톤이나 나가는 산악열차를 올리는 것이 친환경인지 묻고 싶다. 열차를 만들고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열차를 사람들이 타든 안타든 하루 40여 차례 정도 오르내리게 하려면 전기는 얼마나 들지, 그 전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화석연료는 얼마나 될까?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다. 만들어지는 과정도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구례주민들은 1963년 1만 가구가 10원씩 회비를 자진해서 모은 돈 10만 원과 1966년 20원씩 모은 20만 원을 활동기금으로 국립공원을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켜낸 지리산과 국립공원의 가치를 몇몇 정치인들의 계산으로 더럽힐 수는 없다.

기온과 습도, 바람 등의 차이로 나타나는 공간적으로 작은 규모로 발생하는 ‘미기후’ 터가 있다. 그 작은 차이로 살아남는 생명들이 있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실감이 되는 이 때에 지리산, 아니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이 파헤쳐지고 베어지지 않고 이 땅에 미기후 터전이 되어 구상나무도, 하늘다람쥐도, 담비도, 반달곰도, 산양도 살아남기를. 그래서 지리산을 때려 부수고 깨뜨려 헐어서 만든 산악열차길이 아닌 오소리가 열심히 종종거리며 만든 지리산 오솔길을 걷고 싶다.

지리산에 오랜만에 눈이 왔다. 하얀 눈이 폭신폭신하게 구상나무에 쌓일 것이다. 그 쌓인 눈으로 구상나무가 목마르지 않은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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