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년 연하장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을 두고 "책임지지 않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못난 모습"이라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안보 불안"이라는 표현도 담겼는데, 이는 최근의 북한 무인기 사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낸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새해를 맞아 각계각층에 보낸 연하장을 30일 오후 SNS에 게시했다. 통상적인 연말연시 인사로 시작한 이 연하장은 그러나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치유되지 않은 이태원 참사의 아픔과, 책임지지 않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못난 모습들이 마음까지 춥게 한다"라는 대목으로 이어졌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 "경제는 어렵고, 민생은 고단하고, 안보는 불안하다. 서로 등을 기대고 온기를 나눠야 할 때"라며 "어렵고 힘들어도 서로 손을 맞잡을 때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치유와 회복의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는 새해 소망을 전하며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배려하며 연대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고 연하장을 마무리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현재 국회는 국정조사를 진행 중이며, 윤석열 대통령 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야당의 장관직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유가족과의 만남도 피하고 있다.
지난 26일 발생한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태는 수도권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겼고, 이후 윤 대통령은 "전쟁 준비", "핵이 있다고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선 안 된다"는 등 '확전 불사' 메시지를 낸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해 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통해 입장문을 발표한 것 외에는 현안 관련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아 왔다.
서해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 역시, 검찰의 서훈·박지원·서욱 등 전 정부 고위공직자 수사가 이어지는 데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에 책임지지 않는 못난 모습'이라는 이날 언급과는 맥락이 다소 다르다. 지난달 초 이른바 '풍산개 논란' 당시 장문의 입장문을 올려 해명한 것도 언론과 정치권의 문제 제기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그간 퇴임 후 도서 추천이나 지지자들과의 만남, 반려동물과 보낸 일상의 모습 등을 주로 SNS에 올려 왔다. 지난 26일 고(故) 조세희 선생 별세 때 "조 선생이 꿈꾼 세상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아있다. '분노할 힘마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셨던 선생의 말씀을 떠올린다"고 쓴 것 정도가 그나마 사회상에 대한 간접적 언급이었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계속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정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전날 박지원·서욱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수사는 일단락되는 수순이지만, 동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고, 대통령실은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이나 무인기 대응훈련 등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기도 하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관련 의혹, 이른바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 전 정권 핵심층을 겨냥한 수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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