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독일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독일고등연구진흥원(DAAD)의 지원을 받아 독일 중서부에 있는 라인란트-팔츠주(州) 주도(州都)인 마인츠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주 의회와 주 정부를 찾아 주 의원 및 고위공무원과 인터뷰를 통해 평소 궁금해하던 사항들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과 검찰을 포함한 사법시스템의 개혁방안,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 도입을 통한 경찰시스템의 개혁방안,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방안, 주 정부시스템의 분석을 통한 지방분권의 강화방안, 다선의원의 문제 해결방안, 독일식 선거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방안 등을 통해 한국 정치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보고자 한다.(필자)
※ '독일을 통해 본 사법시스템 개혁방안' 1편 <견제 없는 검찰 권력,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보러 가기
4) 검사의 과도한 권한 문제 : 독일의 검사는 혼자 일하며, 사건의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 검사는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기소재량권(피의자를 기소하거나 기소하지 않을 권리), 공소취소권(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 등 과도하게 많은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소위 말하는 별건 수사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 밖에도 제 식구 감싸기와 같은 집단 이기주의에 따라 검사의 행위에 문제가 있더라도 검사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검사가 수사관과 함께 일하면서 소위 '영감님' 소리를 들어가며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견제 없이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이다.
반면에 독일의 각 검사에게는 항상 그를 위해서 함께하는 경찰 수사관이 따로 배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사건에 따라 관할지역의 해당 경찰 수사관이 사건을 수사하고 검사에게 보고한다. 검사는 그 보고서를 검토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경찰의 사건 수사가 부족할 때는 보강수사를 지시할 수 있다.
필자는 라인란트-팔츠주 법무부 고위공무원과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설명을 듣고 미리 계획했던 검사실 방문을 포기했다. 원래는 우리와 같은 검사실을 상상하면서 꼭 방문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고위공무원이 검사사무실에 가봐야 혼자 방에서 서류검토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굳이 방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5) 검찰의 중립성과 검찰총장의 임기 문제 : 독일에서 연방대통령(실제는 연방법무부장관)은 언제든지 연방검찰총장을 '일시적 은퇴상황'(연방공무원법 제54조)에 처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다고 검찰총장의 임기를 정해 놓았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편파수사를 하거나 정권의 시녀 노릇을 방지하고 공정한 수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도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문제이다. 임명직 권력이 잘못할 때는 바로 선출직 권력에 의해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연방검찰과 주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하며, 각각 상급 기관인 연방법무부와 주 법무부의 지시를 받는다. 연방검찰총장, 연방검사, 주 검찰총장 등 검사는 모두 종신직이다. 은퇴 나이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연방검찰총장과 연방검사는 연방법무부장관이 제안하고 연방상원의 동의를 받아 최종적으로 연방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주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각각의 주 법무부장관이 인사권을 갖는다.
여기서 우리와 다른 점은 검찰총장의 임명에 최고권력자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검찰기관이 권력기관이라고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간접증거다. 또 연방검찰총장의 인사에 연방상원의 동의를 받는다는 것은 주 정부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연방이나 주 법무부장관은 이들이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특별한 사유 없이 그들을 '일시적 은퇴상황'(Einstweiliger Ruhestand)에 처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검찰총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정무직 공무원(임명직) 대다수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검찰총장은 중립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보통 그대로 자리를 유지한다. 검찰 중립성과 관련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옥상옥에 해당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지방분권을 통한 권력기관의 분산이 훨씬 더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은 신성불가침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독일처럼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업무를 중지할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 이들은 임명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권한 남용의 우려가 있을 때는 선출직 정치인에 의해 바로 통제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6) 법조인 수의 부족 문제 : 독일의 법조인 수는 우리보다 3~7배나 많다
우리나라 판검사는 일이 많아 항상 격무에 시달린다고 한다. 매번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간다고도 한다. 판사는 제대로 된 판결문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원래 법관의 판결문은 그 사회의 정의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판사의 시간 부족은 큰 문제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왜 우리는 판사를 늘리지 않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왜 검사를 늘리지 않는 것일까?
아래 <표>에서 보듯이 한국의 법조인 수는 독일보다 월등히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판사는 2018년 기준 약 3214명인데 비해 독일은 2만 1340명으로 7배 가량 차이가 난다. 대법관의 숫자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에 불과한 데 반해, 독일은 44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인구수를 감안하더라도 독일에 비해 우리의 판사 수는 과도하게 적은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1명의 검찰총장 아래에 2292명의 검사가 위계적으로 늘어서 있고, 그래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독일에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검찰총장이 25명 있는 셈이고, 그 25명의 총장 아래 우리보다 3배 가까이 많은 5882명의 검사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11월 기준 독일 연방법무부 자료 참조) 결과적으로 25개의 독립된 검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연방 검찰과 주 검찰은 상호 지휘관계가 아니라 협조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특정 부서의 권한 독점이나 상호 간의 서열화 문제는 존재하지 않고, 또 서로 임명 주체가 다른 검찰조직에 대해 압력행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밖에 한국의 변호사 수는 약 2~3만 명으로 추정되는 데 반해, 독일은 5~8배 많은 약 16만 5000명(2021년 기준)이 등록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판사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변호사도 독일에 비해 훨씬 더 큰 독점적 지위와 그에 따른 기득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법조인 수가 적은 것은 판검사 및 변호사집단을 포함한 소위 지배계급의 기득권 문제이고, 동시에 중앙집권의 문제이다. 이러한 기득권과 권력의 중앙집중화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을 강화하여 지역정부(지방정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지역에도 입법, 행정, 사법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판검사와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을 포함하여 다른 기득권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승자독식 시스템을 대체하는 권한 분산의 정치, 경제, 사회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의 사법시스템이 완벽하고 이상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시스템에도 문제점이 있고 비판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에게 과도한 권한과 기득권을 부여하고 있는 우리의 사법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고자 독일의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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