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도 결사체고 노동조합도 결사체다. 결사체는 헌법에서 '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를 보장받는다. 헌법 원리에서 노동조합은 변호사협회보다 더욱 두터운 보호를 받는다. 우리 헌법에는 변호사협회의 권리를 따로 보장하는 조항은 없다. 이와 달리 노동조합은 헌법 제33조를 통해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추가로 보장받는다.
하지만 빈자와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은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관철되는 민주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부자와 지배층이 '법을 이용한 지배'(the rule by law)를 관철시키는 사실상의 독재 체제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기초적인 잣대가 법 앞의 평등이다. 법이 부자와 강자에게 관대하고 빈자와 약자에게 가혹한 체제를 우리는 독재라 부른다.
가속화되는 노동자 권리의 훼손과 해체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하는 독재 체제의 현실적 사례로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깔아뭉개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독소 조항들이 있다. 헌법은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고상한 말로는) 단체를 이루어 교섭과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하지만, 헌법의 하위법인 노동조합법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collective rights)를 훼손하고 해체하려는 조항들로 가득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가 권력에 의한 노동기본권의 훼손과 해체가 국제연합(UN) 기준인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결사의 자유' 협약 87호와 '단체교섭권' 협약 98호를 2021년 4월 문재인 정권이 비준한 이후에 더욱 악화된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법이자 UN 기준인 ILO 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조약의 측면에서도 헌법이 노동기본권을 준수해야 할 법률적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작금의 제한된 노동기본권 마저도 더욱 억압하려 안달을 부리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지불된 대통령 내외의 영화 관람 관련 비용까지도 감추는 대한민국 정부다. 국고로 지급된 장관의 회식 내역도 밝히길 꺼리는 대한민국 정부다. 말레이시아에서 죽은 북한인 김정남에게 국정원이 꼬박꼬박 생활비를 지급했음에도 그런 내역의 공개를 금지하는 대한민국 정부다.
검찰총장 특활비 공개는 거부하면서 노조 재정은 공개?
재정 투명성에서 모범이 되기는 커녕 불량한 면모를 보여온 정부가 노조 재정의 공개 문제를 내세우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은 자신이 검찰총장 시절 사용한 특활비의 공개조차 거부해온 자다.
노조 재정은 두 가지 출처를 갖는다. 첫째 출처는 조합원의 회비다. 둘째 출처는 정부 보조금을 비롯한 외부의 지원금이다. 국가와 사용자로부터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노조라면 노조의 모든 재정은 의사결정 기구에서 민주적으로 선출한 회계감사에 의해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으며, 노조의 재정보고서는 대의원대회 등 각종 의사결정기구에 보고되어 승인을 받는다.
자치적 결사체인 노조가 국가와 사용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제정한 규약을 통해 재정보고를 하고 회계감사를 하는 것은 전 세계적 추세다.
독점재벌 연구소의 미국 타령
독점재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언론인 <매일경제>가 지난 19일 인터넷판에서 독점재벌의 결사체인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인용하여 “한국 노동조합법은 감사 인원을 법정화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자율에 맡기면서 회계사 지위와 선출 및 자격요건 등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와 전경련과 한국경제연구원에 묻고 싶다. “노조 재정을 노조 자율에 맡기지 않고 감사 인원을 법정화”하고 있는 법률을 가진 나라의 이름을 밝혀 달라. 이들은 미국을 내세울지 모르지만 미국에도 그런 법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과 한국은 노동문제에서 비교할 수 없는 나라다. 왜냐하면 미국은 UN이 가장 기초적인 국제노동기준이라 천명하고 있는 ILO 협약 87호와 98호에 대한 비준을 일관되게 거부해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문제에서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를 짓밟아온 나라가 미국이다.
현행 노조법, 노조의 행정관청 보고 의무 부과
ILO 협약 87호와 98호의 핵심은 국가가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실업자든 해고자든 무직자든 조합원 자격은 물론 노조 임원의 자격도 국가 법령이 아니라 노조가 자체 규약으로 정한다. 이념과 강령과 정책도 국가 법령이 아니라 노조 스스로 결정한다. 조합원 교육 내용은 물론 재정 문제도 국가 법령이 아니라 노조가 알아서 행한다는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가 두 협약이 강조하는 바다.
이러한 자유를 노동자단체인 노조에게 보장하기 싫어하는 미국 자본가들의 로비에 따라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두 협약에 대한 비준을 줄기차게 거부해왔다. 미국과 반대로 노동문제에서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기초인 ILO 협약 87호와 98호를 대한민국은 2021년 4월 비준하였다.
우리나라 노조법은 이미 정부가 요구할 경우 노조가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행정관청에 보고할 의무(제27조)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 대표자는 “노동조합의 모든 재원 및 용도, 주요한 기부자의 성명, 현재의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게 하고 그 내용과 감사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여야 한다”(제25조).
진짜 부패한 집단의 재정 공개는 언제?
나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법조계를 꼽는다. 변호사-검사-판사로 얽히고 설킨 부패 사슬의 척결 없이는 대한민국이 깨끗해 질 수 없다. 내가 아는 변호사와 목사의 부인은 법인 명의의 차량을 365일 24시간 몰고 다닌다. 반면, 노조 명의의 차량을 노조 위원장 부인이 365일 24시간 몰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이런 종류의 부패는 대단히 사소한 것이다. 개인적 부패를 넘어 법조계의 합법을 가장한 구조적 부패를 파헤치면 끝이 없다. 국민건강보험료에서 수십억 원을 해먹은 대통령 장모가 무죄 선고를 받거나 수십억 자산가면 국민건강보험료로 몇 만원만 낸 대통령 부인이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광경은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
변호사협회·교회·절의 재정 공개가 우선되어야
나는 개인적으로 노조 재정 공개를 반대하지 않는다. 위의 매일경제 기사에서 언급한 영국의 노동조합및노동관계법을 찾아보니 위원장 등 노조 임원의 급여까지 정부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법의 지배'를 지향한다면 법적 책임과 의무는 모두가 공평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부패를 넘어 구조적 부패에 물든 회원들이 한 둘이 아닌 대한변호사협회지만 그 재정에 대한 공개와 보고를 정부가 요구한 적은 없다. 대한민국 부정부패의 또다른 온상인 교회나 사찰 같은 종교 집단은 또 어떠 한가. 전광훈 목사가 있는 교회가 재개발조합으로부터 500억 원을 받게 생겼음에도 그 교회 재정의 공개와 보고를 대한민국 정부가 요구한 적은 없다.
대통령실 재정과 검찰총장 특활비부터 공개하라
대통령실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만큼 노조 재정도 투명하게 공개해보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특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만큼 노조 재정도 투명하게 공개해보자. 무엇보다 변호사협회와 교회와 절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만큼 노조 재정도 투명하게 공개해보자.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은 저절로 맑아지는 법이다. 정치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대통령실부터, 사법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법조계부터, 경제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전경련부터, 종교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서울 조계사부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보자. 그 연장선에서 노조 재정의 투명한 공개를 정부가 요구한다면 나는 적극 찬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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