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 대리운전기사, 배달라이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위탁계약에 의해 노동을 하고 수수료와 같은 대가를 받는 '특고'(특수고용노동자)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독립 사업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직·간접적 업무 지시와 감독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다. 이들은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불합리함을 타파하고자 노조법 2, 3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계속되어왔다. 특히 지난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계기로 노조법 2, 3조 개정에 대한 필요성은 커졌지만, 여전히 국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핵심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노동자·노동쟁의 관련 2조와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된 3조 개정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정의를 확대해 간접고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까지 노조법 보호 대상에 포함하자는 것이 노조법 2조의 주요 내용이다. 3조는 노조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제한을 명시했다.
지난 15일 특고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전임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직접 증언하며 왜 노란봉투법이 필요한지를 설명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과 <프레시안>이 사회를 맡아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특고도 '노동자'"라고 말했다. 김주환 위원장은 "일 시켜서 돈을 받으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복잡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아울러 플랫폼 노동은 "플랫폼 노동이, 노동이 아닌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정훈 위원장 역시 "노조법 2, 3조 개정이 진짜 '플랫폼노동자보호법'"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오민규 실장은 "지방노동위원회나 판결들을 살펴보면 특고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추세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하며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에 '노동조건 수행업무 또는 노조 활동에 대해서 사실상의 영향력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좌담회 전문.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노조법 2, 3조 개정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플랫폼노동과 특고가 개정 움직임에서 좀 동 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결국 플랫폼 노동자와 특고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미 법 해석론상으로는 플랫폼 노동과 특고 노동자들이 일정하게 전선을 돌파해온 지점이 있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프레시안 :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계약을 체결했는지부터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전 위원장 : 저는 지인소개로 들어갔다. 학습지 교사 구인 광고가 알바몬이나 잡코리아같은 취업사이트에 계속 올라온다. 학습지 회사들은 교사 수급이 어려우니, 알바몬에 이력서를 올려놓은 사람들을 찾아서 연락을 한다. 보통 학습지 회사가 이 일을 할 만한 나이의 여성에게 연락을 하고, 노동자는 이를 통해 학습지 시장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교육을 받는다. 저의 경우는 9박 10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요새는 5일 안쪽으로 교육을 받고 위탁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교육 시에 위탁계약서에 수수료가 빠지고 무슨일을 하는지, 어떤 의무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계약이 해지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2017년부터는 공정위가 수수료 표가 위탁 계약서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공정 행위라고 해서 수수료 표를 포함해서 위탁 계약서에 사인한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 저는 대리운전일을 한 지 12년 정도 되었다. 업체를 찾아가서 면접 보고 계약서를 썼다. 약간의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점점 대리운전이 특고화 되면서 없어졌다. 부산에서 근로계약서 대신 업무위탁계약서를 쓴 일이 있는데, 이후 소송 때 '우리가 업무위탁계약서를 썼다고 할지라도 노동자'라는 입장을 내걸었다. 그 다음부터는 업무위탁계약서도 안 쓰고 업무도업계약서를 썼다. 사용자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애매한 형태를 추구한다.
최근 입직(入職)하는 경로는 카카오와 티맵같은 애플리케이션이다. 카카오 초장기에는 면접을 보고 교육도 받았다. 요새는 계약 체결 과정이 전부 어플을 통한다. 기존의 대리 운전 업체들도 대면 계약을 하지 않고 전화나 SNS 유선상 비대면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법인 대리나 카카오 프리미엄 서비스 같은 고급화된 개인비서에 준하는 대리운전도 있는데 그런 서비스는 여전히 면접을 보고 대면 계약을 맺는다. 흐름을 보자면 일반 대리운전은 비대면으로 입직이 손쉬운 반면,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하는 또다른 서비스는 아직 대면 면접과 계약 체계를 유지한다.
대리운전을 '투잡'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카오의 경우 전업으로 대리운전을 하는 비율이 60%를 넘는다. 또 평균 근속연수가 일반 노동자들보다 많게 5.8년 정도 나온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급해서 들어와서, 한 달만 하고 말자 하던게 5년, 10년 가는 경우가 있다. 다만 우리는 특고여서 암만 근속연수가 오래되어도 진급이 안 된다. 끝날 때까지 '김대리'다. (웃음)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 배달은 고용 형태가 다양하다. 맥도날드와 도미노 같은 프랜차이즈는 직고용을 한다. 동네 배달대행사는 라이더가 직접 방문해서 아이디를 만들고, 앱을 까는 과정이 필요하다.
통상 위탁계약서를 쓰는데, 실제 노동 형태는 노동자처럼 지휘 감독이 들어온다. 대표적 배달 업체인 배민과 요기요의 경우도 위탁계약서를 쓴다. 초기의 배민과 요기요는 라이더가 교육을 받아야지만 위탁계약서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어플을 통해 바로 계약을 할 수 있다. 회사와 노동자가 위탁계약서를 전자계약 형태로 주고 받는다. 이전에 배민과 요기요는 직접 라이더의 근태를 관리했다. 조퇴를 하면 벌금을 주기도 해서 우리가 문제제기를 했고, 그 뒤에 계약서를 고쳐썼다.
쿠팡이츠는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입직이 쉬운 방식으로 계약 체결을 진행했다. 또 쿠팡이츠의 경우 중간 자회사가 난립한다는 특징이 있다. 배달을 할 라이더 5명만 모으면 '벤더'라는 이름의 사장이 될 수 있는데, 본사인 쿠팡이츠는 벤더에게 배달료를 지급하고, 벤더는 라이더 모집과 관리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긴다. 벤더들이 노동자들을 등급 메기고, 그것에 따라 가격을 달리 주는데 그 등급표는 쿠팡이츠에서 준다. 사실상 쿠팡이츠가 벤더를 거쳐 라이더의 근태관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겠는데, 최근 배민과 쿠팡이츠는 마트 배달을 중심으로 직고용 실험을 하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형태는 유연하게 바꾸고 있다.
"특고도 기업의 정신을 교육받는다"
오민규 : 회사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했는데 어떤 것을 교육받나.
오수영 : 회사의 정신을 교육받는다. 각 회사가 '대교인', '구몬인', '재능인' 이념교육을 하고 과목들에 대한 기본 스킬을 가르쳐준다. 본사 혹은 지국장이 강사가 되어서 학습지 시스템, 각 과목의 학습 목표, 해당 과목을 교육해야 하는 이유 등을 가르친다. 전에는 9박 10일간 가둬 놓고 했다. 요새는 교사들이 자주 바뀌고 안정화가 안되니까 노동자가 교육을 이틀 정도 받은 후 회사에서 석달 동안 집중교육을 받으면 백 만원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이후 총국이라고 사업국 위에 있는 관리 조직에서 6개월 정도 통근하면서 추가 교육을 받는 체제다.
김주환 : 지금은 없어졌는데, 예전에 카카오는 대리운전기사를 상대로 서비스 질을 교육했다. 또 한 콜이라도 더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 업체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실무적인 일을 중심으로 교육했다. 지금은 교육을 거의 안 한다. 클레임 생기고 문제있는 사람들은 잘라 버린다.
박정훈 : 라이더 사정도 비슷하다. 요새는 교육이 따로 없다. 배민과 요기요가 초기에 했던 교육은 고객서비스 교육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2시간 안전의무교육이 생긴 후 대형플랫폼들은 안전 동영상을 만들었다. 배민 요기요는 반드시 들어야 하고, 쿠팡이츠는 나중에 들어도 된다. 동네 배달대행사들은 이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우리가 오히려 교육을 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오민규 : 노사 교섭이 만약에 벌어진다면, 업종별로 가장 중요한 교섭 대상 노동 조건은 무엇인지 소개해달라.
김주환 : 대리운전의 경우 노동 조건과 직접 연관되는 것은 수수료다. 배달과 정 반대로 손님이 요금을 주면 일부 수수료를 회사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대리운전기사가 갖는다. 예를 들어 20%를 수수료, 80%를 대리운전 수입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리운전보험이 있다. 보통 영업용 보험으로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보험 비용을 기사에게 부과하고 있다. 카카오의 경우는 카카오가 부담하고, 기존 다른 업체들은 기사가 부담한다. 20%의 수수료도 과도한데, 별도 비용까지 대리운전기사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회사가 사기를 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5만 원 짜리 보험인데 10만 원을 내라고 하는 식이다.
대리운전 요금, 수수료, 보험 등이 직접적인 소득과 관련이 있는 노동 조건이다. 대리운전을 기사에게 배차하는 배차 시스템도 노동 조건에 해당한다. 배차 시스템은 AI로 운영되는데 대리 콜이 왔을 때 기사가 거절을 많이 하면 패널티를 받고, 이는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 배차 시스템이 바뀌거나, 이걸 어떤 기사에게 막기만 해도 실업상태가 된다.
박정훈 : 동네 배달대행사의 경우 배달 수수료가 쟁점이 되겠다. 배달료가 오르더라도 중간에 수수료 등 떼어가는 금액이 많으면 손해라, 수수료 상한제처럼 총 배달료의 몇 퍼센트 이상 혹은 몇 백원 이상 못 떼게 막는 게 쟁점이다. 동네 배달대행사의 경우 모든 노동 조건은 사장 마음에 따라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다.
배민과 같은 플랫폼은 날씨, 시간대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실시간 요금제이기 때문에 시시각각 초마다 배달료가 다르다. 또한 대리운전과 마찬가지로 콜이 배정되는 배차시스템이 요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 조건에 해당한다. 노동조건에 해당하는 배달 요금과 배차시스템 모두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된다.
프레시안 : 대리운전과 배달 노동자는 알고리즘 지배를 받는다. 그 알고리즘이 공개가 되나.
박정훈 : 눈에 보이지 않는다. 추정만 할 뿐이다. AI를 이용한 배차이기 때문에 기사 개인의 배차 수락률이 가장 큰 쟁점이 된다. 만약 배차를 거절하면 일명 '똥콜'이 누구에게 배정되는 지가 문제가 된다. 패널티 제도도 문제다. 회사가 특정 라이더에게 10분, 15분간 콜을 안 주고 앱정지를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요샌 '프로모션'이라고 조금 더 돈을 주는 제도가 있는데 라이더의 수락률 등이 그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결국 임금에 직결된다. 그리고 이 노동 조건은 어플의 공지 한 번으로도 바뀔 수가 있다. 사측이 내건 공지사항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어플에 접속이 되지 않기 때문에 라이더는 어플의 변화에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없다.
김주환 : 전화 대리 콜 시스템도 이와 비슷하다. 대리운전기사가 '숙제'처럼 피크타임에 업체가 정한 콜수 혹은 목표금액을 채워야 하는 제도가 있다. 카카오나 티맵의 배차 알고리즘은 공개 되지 않는다.
오수영 : 학습지의 경우 노동자들이 꾸준히 주장해왔던 것은 노동기본권의 보장이다. 더불어서 기본 수수료 요구가 있었다. 수수료율은 최저 33%부터 55%까지 자신의 성과에 따라 결정된다. 시장이 활성화 됐을 때는 신규 회원이 꾸준히 유입됐기 때문에 수수료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요즘에는 회사들마다 수수료제도가 각각 바뀌고 있다. 학습지 회원이 계속 감소하는 중이라 수수료 체계를 변경해서 손해를 메운다. 회사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안정적으로 수수료가 보장되던 이전에 비해 매 달마다 실적에 따라 수수료율이 요동친다. 달마다 5%포인트 이상의 수수료율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전달에 비해 임금이 30만 원 이상 차이 나는 셈이 된다. 요즘 점차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수수료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으니까 교사들이 최저임금 수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보다 못한 임금을 받는 교사들도 많다.
다른 한 축에는 학습지 교사들의 재계약 문제가 있다. 학습지 교사들은 큰 문제가 없는 한 보통 재계약이 된다. 노조가 생기기 이전에는 계약서를 쓰지 않고 몇 년을 근속했으니까.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나니까 회사는 1년 짜리 계약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계약서를 꼭 쓰게 한다. 저는 괘씸해서 계약서 첫 장에 입직 날짜부터 매년 몇 번의 갱신계약 체결을 했는 지를 일부러 쓰기도 했다.
대교는 코로나 시기에 50%의 보장 수수료 체계를 도입했다. 좋은 내용이지. 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존에 있던 경조사비, 건강검진과 같은 소소한 사내 복지들을 다 없앴고 재계약 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아직 그 제도를 통해 계약 해지가 된 사례는 없지만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노조는 재계약 심사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더 불안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니까.
"돈을 버는 사람이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게 맞다"
프레시안 : 수수료가 달마다 요동치는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공개되어 있나.
오수영 : 그 달마다 얼마나 회원을 모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회원이 그만두게 되었는 지를 따져본다. 또 근태 상황도 포함될 수 있다.
김주환 : 학습지 교사의 경우 회사는 개별적으로 교사 개개인의 수수료율을 변동하면서 패널티를 주는데, 대리운전 노동자같은 경우는 학습지와 달리 수수료율 변동이 전체 적용되어서 개별 기사가 손해를 보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박정훈 : 플랫폼이 개별적으로 배달노동자에게 패널티를 준다. 프로모션과 같이 추가적인 요금은 모든 라이더들에게 똑같이 주는 게 아니라 다 다르게 주는데, 왜 다르게 주는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1시부터 2시까지 5건의 배달을 완성하면 1만 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5000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프레시안 : 플랫폼 노동의 경우 학습지 노동자처럼 패널티와 프로모션을 받는 기준을 알아야 하는데, 그 기준을 공개하지 않으니 노동 조건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박정훈 :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거다. 이 시간에 5000원을 주면 하는지 이런 식으로.
오민규 : 플랫폼 특수 고용의 핵심 쟁점은 노동자냐, 아니냐다. 그와 함께 사용자가 누구인지도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노동 조건을 교섭 해야 할 상대 사용자가 누구냐. 이 쟁점도 있을 것 같다.
박정훈 : 일단 동네 배달 대행사부터 살펴보면, 대행사 사장은 배달 노동자 40~50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교섭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장들을 교육하면서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이들에게 교섭 교육을 하면 교섭을 안 하려고 도망다니기도 한다. 라이더 측이 지방노동위원회에 가면 대행사 사장들은 노무사를 고용해 대응한다. 그러고는 아는 동생에게 회사를 넘겨 버리는 식으로 빠지기 일쑤다. 일명 '바지사장'을 세운 셈인데 우리가 그걸 증명할 길은 없어진다.
또 다른 경우로 개별 사장에게 교섭을 요청하니 지사장 위에 총판이 있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례도 있다. 어플을 운영하는 배달 대행 프로그램사 말고 부산, 경남 지역 총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노동자 측이 총판을 찾아가면 이제 거기서는 '실질적인 권한은 지사장이 갖고 있다'고 또 발을 뺀다.
굉장히 애매한 부분은 B2B 계약을 할 경우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부릉'과 같은 배달 프로그램사가 맥도날드와 배달 계약을 맺었다면, 라이더 노동자의 교섭 대상은 개별 배달대행지사가 아니라 배달 대행 프로그램사(부릉)가 된다. 이렇게 직군별로 쪼개지고 복잡한 상황이 있다. 그리고 동네 배달대행사와 교섭을 맺더라도, 교섭을 맺지않는 배달대행사의 사용자보다 불리한 상황을 맞는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지역 전체를 교섭하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배민이나 이런 대형 플랫폼들은 '우리가 교섭을 해준 거다'라는 시혜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교섭 중에 계속해서 알고리즘을 통해 노동 조건을 바꿔버린다. 예를 들어 앱 공지를 띄워서 수수료를 바꾸거나, 프로모션을 바꾸거나 하기 때문에 교섭 중에 노조가 주장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교섭 진행 중에 어플의 업데이트 패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민규 : 배민은 사용자가 아님에도 자신들이 사용자처럼 인정해서 단체 교섭을 했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법적으로 의무가 없는데도 해줬다는 태도인데, 사실 법적으로 따져보면 이를 해주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다른 플랫폼들도 다른 이슈들이 있는데 그걸 활용해서 이들을 교섭에 나오게 만들었다. 다들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불가피한 측면과 특수한 환경에 의해 교섭에 나온 케이스들이다. 그 과정에 노조의 투쟁이 있었다. 학습지 노동자의 경우는 사용자가 누군지 너무 확실한 상황이 되겠다.
오수영 : 특고에서 종속성을 따지면 학습지 교사가 가장 확실하다고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학습지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면서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불법 노조'라는 말이 사측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노조 탄압의 긴 세월이 있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있었던 재능교육지부의 농성투쟁을 통해서, 정말 버텨서 원상복귀를 했고 단협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일단락이 됐다.
그리고 2018년 6월에는 재능교육에서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판결이 나왔다. 문제는 다른 회사들의 태도였다. 재능교육의 판결은 재능교육에 대한 판결이지, 모든 학습지 교사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는 게 회사들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대교에서도 4년간의 소송을 끝내고 나서야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교섭 자리에 앉았다. 구몬 사측의 대답이 너무 웃기다. 재능선생님과 대교선생님과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위나 법원이 구몬선생님도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면 교섭 테이블에 나가는 것을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학습지 교사는 보통의 직장인만큼 회사에 충실히 일을 한다. 회사의 주장이 참 어처구니가 없었던 게 기억난다. 학습지 교사 평균 임금이 210만 원인데, 이 210만 원은 너무 적은 임금이어서 이 임금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학습지 교사들 절반 이상이 투잡을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지 회사에 종속적이지 않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평균 과목수가 150개가 넘어가고, 그 과목들을 다 관리하기 위해서는 꼬박 일을 해야 유지할 수 있다. 회원 관리, 채점, 상담, 교육까지 그 모든 업무를 한 회사에서 해야 하는데…. 그런데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니 답답하다.
김주환 : 노조가 현장 실태조사를 해보면 대리 기사의 95%는 '나는 노동자'라고 답한다. 우리는 지역에서 대리운전기사들을 모집하는 조그마한 콜센터처럼 운영하는 업체들과 교섭하지 않았고, 그 위 업체들을 구성하고 관리하는 총판 그리고 배차 시스템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사와 교섭 시도를 많이 해왔다. 이미 프로그램사가 지배력이 강한 상태에서 조그마한 콜센터들과 교섭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 노조는 최소한 총판과 교섭하는 것을 전략으로 세워왔다. 그리고 대리운전은 지역별로 운영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함께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같은 경우는 프로그램사이면서 업체이기 때문에 직접 교섭을 한다. 카카오도 처음엔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농성도 하고 단식도 하면서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다 대리기사 노조를 인정해주는 노조필증이 나오자 카카오는 애매하게 입장을 변경했다. 카카오는 대리기사들이 노동자인지는 모르겠으나,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라고 모호한 주장을 폈다. 자신들은 중개만 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우리는 놀면서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 일 시켜서 돈을 받으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복잡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사용자성을 넓게 이해하고 구체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노조법 2, 3조 개정이 진짜 '플랫폼노동자보호법'"
오민규 :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에 '노동조건 수행업무 또는 노조 활동에 대해서 사실상의 영향력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플랫폼노동희망찾기가 제안했다. 그 자들이 누군지 노조가 찾아나선 것이다. 지방노동위원회나 판결들을 살펴보면 특고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추세가 만들어졌다. 2018년 학습지 판결과 방송연기자의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그 판례에 입각해서 특고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기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이 있다. 노조법 2, 3조가 개정되면 대기업의 경우 하나의 원청사에 수많은 하청업체, 특고가 있는데 교섭질서가 복잡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김주환 : 플랫폼 기업을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에서도 그렇게 진행했다. 정규직 노조와 우리 노조가 함께 공동교섭단을 꾸렸는데, 교섭 내용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분리해서 교섭을 진행했다.
오수영 : 복잡할 건 없다. 예를 들어 대교에 정규직 노조와 학습지 노조가 분리돼 있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학습지 노조는 학습지 노조대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교섭단위를 분리하니 그에 따라 각자 요구들도 분류된다. 크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오민규 : 이미 플랫폼 특수고용의 경우는 실무 교섭은 분리해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교섭 질서가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사무직 직원하고 청소 노동자하고 교섭을 같이 할 수는 있겠지만, 노동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실무 교섭은 분리해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노사 자율에 맡겨둘 수 있다.
프레시안 :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법이 아닌 '플랫폼종사자보호법'으로 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주환 : 플랫폼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부정하고 우회하는 경로는 어떤 것도 효과적일 수 없다. 플랫폼종사자법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부정하기 위해서 제시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많았다. '노동자'가 아니라 '종사자'라는 표현을 쓰잖아. 이제는 '플랫폼 노동자'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쓰인다. 플랫폼 노동이, 노동이 아닌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플랫폼 노동도 노동의 한 영역이고 기존의 노동자 범위 안에서 인정을 해야 한다.
박정훈 : 노동법을 잘 고치면 된다. 별도의 법을 만들지 말고, 노조법 2, 3조 개정이 진짜 '플랫폼노동자보호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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