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30살 여성 이주노동자 속행 씨는 영하 18도의 한파가 몰아치던 12월 20일의 새벽,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속행 씨의 죽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이들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속행 씨의 동료 노동자들이 한파의 날씨에도 거리에 나선 이유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과 민주노총은 18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2022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를 열고 "속행의 죽음 이후 2년, 이주노동자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이주노동자를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영하 15도를 육박하는 강추위에 모인 5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올 겨울에도 임시 가건물 기숙사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컨테이너, 샌드위치 패널 등 임시 가건물이 여전히 숙소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는 제조업과 농어촌 일손이 부족하다며 각종 인력공급 정책을 늘어놓기만 하지만, 정작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다"며 "더 이상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노동허가제 도입과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촉구했다.
속행 씨의 죽음의 배경에도 고용허가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의 사업장이동·재고용·이탈 신고 등의 권한을 주는 제도다.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운명이 고용주 손에 달린 셈다. 때문에 이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열악한 숙소와 비정상적인 근무여건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이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속행 씨의 죽음 이후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에 사는 이주노동자에 한해 사업장 변경을 허용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업장의 환경이 비슷한 농어촌 지역에선 현실성이 떨어진다. 혹여 사업장 변경 신청으로 고용주 눈 밖에 났다가 고용허가 연장이 불가능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섹 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은 "오늘은 유엔에서 이주노동자와 가족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날이지만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누리지 못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이지 기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거주 이동의 자유도 직업선택의 자유 같은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며 "이 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박탈당하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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