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약탈 '마적떼'를 뽑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헌법은 명확히 선거로 뽑힌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가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고 단지 4개월 지났을 때부터입니다. 퇴진을 주장하는 국민들이 헌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건 분명히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2018년부터 이른바 태극기부대도 문재인 퇴진을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고액 연봉의 일자리는 무려 3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국가 주요 정책과 사업, 자산을 요리하면서 어마어마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일종의 수지맞는 '괴물 장사치'로도 얼마든지 변신 가능합니다.
대통령 선거 '캠프'란 온갖 정치공학 기법을 동원해서 선거에서 이기면 끼리끼리 고액 단기 알바 일자리와 이권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일종의 공직과 이권 약탈 마적떼와 같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의도 정치꾼들이 연구소니 포럼이니 형님 아우 하면서 인맥을 쌓고 오직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궁리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문재인 정권도 공직 약탈 캠프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새마을중앙회는 2018년 농민운동 출신의 정성헌 회장이 취임하면서 밑바닥에서부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21세기 생태문명 대전환의 '새로운 마을공동체'(새마을) 운동 단체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전해철 행안부 장관을 동원해서 새마을중앙회 이사들을 겁박, 강제로 정성헌 회장의 재출마를 봉쇄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국힘당 전신인 한나라당 출신의 뇌물 전과자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새마을중앙회를 민관 협치의 풀뿌리 기후행동 조직으로 탈바꿈시켜 뿌리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그렇게 문재인에 의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주권을 찬탈당하는 주권자들?
지난 3월 9일 20대 대선 선거권자는 약 4420만 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3410만 명이 투표했고 그 가운데 약 1640만 명이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습니다. 전체 유권자 중 1/3이 조금 넘습니다. 6월의 제8회 지방선거에서는 약 4430만 명의 선거권자 가운데 절반인 2260만 명만 투표장에 나갔습니다.
대선에서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은 주권자 수가 무려 1000만 명 이상이나 됩니다. 지방선거에서는 2000만 명을 넘었습니다. 권력과 관련해서 주권자인 한국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선거권밖에 없습니다.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무권력 주권자는 주권자가 아닙니다. 무권력 주권자가 1000만, 2000만이 넘는 국가를 평등한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권력'이란 말은 헌법에 딱 1번만 나옵니다.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나머지는 모두 '권한', '권리' 등입니다. 대통령도 지방자치단체장도 국회의원, 시군의원도 권력자가 아닙니다. 권력자인 국민이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 등의 주권자 권력을 잠시 위임했을 따름입니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4년~5년 동안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단기 알바 공무원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들 단기 알바 공무원들이 선거 다음날부터 사실상 권력자로 순식간에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권력 찬탈 현상이 늘 반복해서 일어나는 게 한국의 정치 현실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 때 당시 남한정부였던 미군정은 조선 인민은 자치능력이 없다는 확고한 견해를 바탕으로 민주정이 아닌 대의정 체제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포장은 민주정인데 내용은 대의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재건'(제헌헌법 전문의 규정)한 것이었는데, 미국은 신생 근대 국민국가를 새로 만들어 선물해 준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헌법의 내용과 형식 불일치, 주권자와 권력자의 이같은 불일치와 모순 현실이 우리 국민들의 자치능력을 늘 각성시켜 찬탈당한 권력을 잠시나마 되찾아 온 역사가 한국 정치의 역사였습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주권자의 힘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촛불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까지 당했습니다. 자치능력으로만 보면 한국 국민들은 세계 어떤 나라 못지않은 놀라운 활력과 역동성을 선보여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권력자인가 머슴인가?
당연히 머슴이자 권력자라는 이중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이 민주정이자 대의정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머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정치경제 체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독재자나 왕도 오직 국민을 위해 슬기로운 정치를 펼친다면 성군이나 위대한 독재자로 칭송받을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민주정을 우매한 시민들의 정치체제라고 비판하면서 선호한 철인정치가 다름아닌 슬기로운 독재정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돈은 집중과 집적이 되면 그 힘이 주는 편리함과 쾌락은 금방 사람들의 눈귀코입살갗을 멀게 합니다. 사람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는 대부분 탐욕과 어리석음에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5천만 개의 주권을 모두 모아 한 사람에게 주면 그 순간 한 사람은 권력에 눈이 먼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돌변합니다. 주권자는 당연히 무권력의 머슴 또는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민주정은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일치하는 독특한 이중 정체성의 정치 체제입니다. 민주정은 재벌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못그리거나 가리지 않고 국민 모두가 n분의 1의 주권을 평등하게 나누어 갖고 있으면서 그 주권을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행사해 국가의 모든 주요 결정을 주권자 스스로 내립니다. 그리스 아테나이에서는 심지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치 지도자가 있으면 도편추방제로 투표를 해서 국외로 추방해버리기도 했습니다.
흔히 이른바 강단 정치학자들이 민주정을 인구가 수천만 수억명인 오늘날의 거대 국민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민주정을 직접 민주주의, 대의정을 선거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라고 희한한 용어까지 만들면서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대의정을 민주주의이라고 강변하는 이들이야말로 사슴을 말이라고 주장하며 국민을 속여 떡고물이나 챙겨먹는 악질 사기꾼들입니다. 정말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대의정은 엘리트 귀족정으로서 민주정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정치체제입니다. 국민 수가 많으면 연방주의 원리에 따라 민주정을 실행하면 됩니다. 스위스연방도 그렇고 일종의 국가 연합체인 미합중국도 원래 국가(state)였던 많은 주에서 이미 직접 민주정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민주정을 민주주의라고 이데올로기 차원으로까지 격상시킨 국가는 한, 중, 일 등 한자문화권 국가밖에 없습니다. 19세기 말 데모크라시를 번역할 당시 한중일 지식인들은 왕정에 대한 비판과 주권재민의 사상을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인민정, 민주정이라는 말 대신 민주주의라는 말을 채택했던 것입니다.
기후지옥의 가속 페달을 밟는 대한민국 국민들?
지난 11월 3일 윤석열 정부의 산자부는 새로운 재생에너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효율성이니 주민 수용성이니 길게 중언부언했지만 쉽게 요약하면 3가지입니다. 원전 확대, 태양광 전면 중단, 대규모 풍력발전 개발이 그것입니다. 정치와 정책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이런 정치와 저런 정치, 이런 정책과 저런 정책이 있을 따름입니다. 좋은 정치와 유익한 정책, 나쁜 정치와 더 나쁜 정책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어떤 견해와 주장을 갖기 이전에는 매우 유연한 사고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견해와 세계관을 정립하게 되면 다른 견해와 세계관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견해와 세계관에 맞추는 일종의 환원주의 사고가 지배하게 됩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명백한 과학 사실을 들이 밀어도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오히려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을 더 강화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호르몬 분비 작용으로 보는 호르몬 환원주의, 유전자로 보는 유전자 환원주의 등등 과학 이론까지도 그렇습니다.
대의정의 정당들은 거의 매일 서로 상대방 정당 때문에 국민이 불행해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비난을 쏟아냅니다.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는 '너 환원주의' 정치는 권력을 놓고 사생결단의 투쟁을 벌이는 정당정치의 속성입니다. 한국의 두 거대 정당은 늘 투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적대적 공생 관계로 주권자 민주정치를 실종시키고 국민의 관심을 주권자가 아닌 자신들에게로 모으는 극장정치의 쇼를 벌이고 있을 뿐입니다.
'문재앙'이라는 끔찍한 표현을 쓰며 모든 것을 문재인 탓으로 돌리는 것도, 모든 것을 윤석열 탓으로 돌리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극장 드라마에 주권자는 그저 행인 1, 행인 2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후위기 사태는 점점 더 크고 강력한 핵폭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 아니 모든 생명체 전체의 생사를 결정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요인으로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후 환원주의를 더 소리높여 외쳐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 적응과 극복 정책이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늘리고 기후지옥으로 가는 가속 페달만 밟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대선 당시 공약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말로만 탄소중립 운운 몇 마디 시늉으로 거론해 놓았을 뿐입니다. 유권자들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윤석열을 대한민국호의 기관사로 선택했고, 함께 탑승했습니다.
도대체 주권자인 우리는 기후지옥 열차를 정차시키기 위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요.
누구의 책임인가?
'모든 게 윤석열 탓'이라는 윤석열 환원주의는 열차를 정차시키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단지 방향타를 쥐고 있을 뿐,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지구행성과 대한민국호의 제동장치는 모든 개개인의 좌석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주권자 다수가 브레이크를 잡을 때 비로소 열차를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은 팔할(80%)이 문재인입니다. 저는 단 한 구절의 성찰과 반성도 없이 자화자찬 일색인 문재인의 퇴임사를 읽으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버렸습니다.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문재인 정부도 개발과 성장주의의 선글라스를 쓴 채 기후지옥으로 가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저는 지금은 '윤석열 퇴진'을 요구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엘리트 대의정 체제 자체를 퇴진시켜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자고 더 많은 주권자를 설득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의정 체제는 이미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6공화국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가 전혀 아닙니다. 대한민국호의 기후지옥행 고속 질주를 책임져야 할 사람은 윤석열이 아니라 윤석열을 뽑은 국민들 자신입니다. 주권자 국민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임명했고 당연히 국민이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은 극장의 쇼정치에서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브레이크를 밟기 위해, 실패한 대의정 체제를 전환시키기 위해 주권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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