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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고 깨진' 월성원전 저장조, 방사능 누수 위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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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고 깨진' 월성원전 저장조, 방사능 누수 위험 없을까?

[함께 사는 길] 40년 만에 공개된 사용후핵연료 보관소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일반 주택과 빌라가 어우러진 곳이다. 고층 건물이 없어서 좋다. 건물들은 저마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슬래브 옥상으로 만들어졌다. 이제는 옥상에 지붕을 덧대어 하늘을 볼 수 없는 집이 더 많아졌다. 옥상에 바른 에폭시가 더 이상 빗물의 누수를 막을 수 없어서 볼품없는 지붕을 덧씌운 것이다. 우리 빌라도 서른 살이 안 된 나이에 지붕을 개량했다.

건물 옥상에 바른 녹색 에폭시는 보통 3년 주기로 덧칠해야 방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햇빛에 열화되어 들뜨고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폭시를 40년째 보수하지 않고 사용하는 건물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일반 가정집이 아니라 핵발전소에 40년 된 에폭시 건물이 있었다.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문제의 범인이다.

갈라지고 깨진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이하 저장수조)는 핵발전소의 원자로 옆에 붙어 있다.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물을 끓인 후 꺼내면 '사용후핵연료'가 되어 곧바로 저장수조에 들어간다. 나이 든 사람들은 연탄을 떠올리면 된다. 연탄을 다 쓰고 아궁이에서 꺼내면 벌겋게 열을 내뿜고 있어서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가 그 모양이다. 스치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 강력한 방사능과 열을 내뿜기 때문에 원자로에서 곧바로 거대한 저장수조에 넣어서 보관한다.

사각형의 저장수소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위험한 사용후핵연료를 수십 년 보관하기 때문에 두께 60cm 이상의 육중한 구조물로 설계되어 있다. 문제는 방수다. 저장수조의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새어 나오면 큰일이다. 콘크리트는 물에 취약하기 때문에 방수 설비를 별도로 해야 한다.

월성원전 1, 2, 3, 4호기는 저장수조의 안쪽 벽에 에폭시를 발라서 방수를 했다. 가장 오래된 월성1호기는 40년이 됐고, 저장수조는 여전히 사용후핵연료로 가득하다. 과연 에폭시는 방수 성능을 잘 유지하고 있을까? 지난 9월 MBC 뉴스가 보도한 영상을 보면 저장수조의 에폭시가 갈라지고 깨어져 있다. 심지어 저장수조에 녹물이 비치는 곳도 보였다. 온 국민이 뉴스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3년 주기로 보수하는 에폭시를 핵발전소에 40년간 보수 없이 사용했으니 깨지고 갈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반 건물의 옥상은 햇빛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주 보수를 하지만, 핵발전소 저장수조는 지하 구조물이기 때문에 에폭시를 보수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반문한다. 건물 옥상과 비교하면, 저장수조의 에폭시는 햇빛보다 수백만 배 더 강력한 방사선에 24시간 노출되어 있고, 저장수조의 에폭시는 수천 톤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월성원전 저장수조의 에폭시 영상이 '날것'으로 세상에 알려지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에폭시를 주기적으로 보수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핵산업계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지난 40년 동안 저장수조의 벽면에 바른 에폭시만 관리했다. 뉴스에서 보도한 바닥 면의 에폭시는 보수를 전혀 하지 않아서 갈리고 깨져 있었다. 사용후핵연료가 저장수조에 늘 쌓여 있어서 바닥 면 에폭시는 보수가 불가능했다.

그러면 다른 핵발전소는 어떻게 방수를 했을까? 월성원전을 제외한 국내의 모든 핵발전소는 저장수조의 콘크리트 안쪽에 스테인리스 철판을 덧붙여 방수를 하고 있다.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보관하는 저장수조에 에폭시를 발라서 방수를 한다는 개념 자체가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월성원전 설계에 참여했던 원자력안전과미래 이정윤 대표에 따르면, 월성원전 건설할 때 비용 절감을 위해서 스테인리스 대신 에폭시를 발랐다고 한다. 참으로 허탈한 일이다.

문제는 에폭시만이 아니었다. 월성1호기 저장수조 외벽의 기단부에서 오염수가 흘러나오는 영상도 뉴스에 보도됐다. 기단부의 콘크리트가 갈라진 틈으로 방사능 오염수가 몽글몽글 용출하고 있었다. 저장수조 내부의 에폭시가 갈라지고 깨졌으니 누수는 당연한 일이다. 몽글몽글 용출하는 영상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수는 더 발생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 9월 20일 공개한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내부 영상과 사진. 벽체의 갈라진 틈으로 오염수가 계속 새어나오거나 저장조 바닥에 방수용으로 발라 놓은 에폭시가 부풀어 오르고 여기저기 갈라져 있다. 

월성원전 부지의 방사능 오염

핵산업계는 오염수 용출 영상을 보도한 뉴스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용출 부위의 균열을 보수했기 때문에 누수는 없다는 반론이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 민간조사단의 2차 보고서(2022.5.4.)에 따르면, 용출 부위의 균열은 "시공 당시 타설 콘크리트를 양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균열로 판단되어 해당 부위의 코어링을 통해 심부 균열을 확인"했고, "기존의 균열 보수는 부분적 효과만 발생하여 내부 균열을 통해 누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누수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즉, 눈에 보이는 표면만 시멘트를 덧발라 보수해서는 결코 누수를 막을 수 없다.

저장수조의 누수는 주변 토양과 지하수의 방사능 오염 외에 다른 문제도 야기한다. 바로 저장수조 콘크리트 구조물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누수가 진행되면 콘크리트 안의 철근이 부식되어 구조물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저장수조의 하중이 수천 톤에 달하고, 경주지역이 지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이는 큰 문제다. 앞서 인용한 민간조사단 2차 보고서는 "벽체 내부 균열로 철근이 장기간 수분에 노출되어 부식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경주환경운동연합 우편함에 익명의 서류뭉치가 꽂혀 있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작성한 것으로 제목은 "월성원전 부지 내 지하수 삼중수소 관리현황 및 조치계획"이다.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월성원전 부지 곳곳에 설치된 지하수 관측공에서 측정된 삼중수소의 수치가 매우 높았다. 심지어 리터당 2만8200베크렐(Bq/L)이 측정된 관측공도 있었다. 일반적인 지하수의 삼중수소 농도는 리터당 1베크렐 이하로 나와야 정상이다. 지하수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있었고, 당연히 어딘가에서 오염수가 지속적으로 누설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주지역 사회를 비롯해 언론 방송에서 연일 월성원전 부지의 삼중수소 오염수 문제를 다루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1년 3월 30일 뒤늦게 '월성원전 삼중수소 민간조사단'을 발족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민간조사단의 조사에서 월성1호기 저장수조의 균열과 누수가 확인됐다. 만일, 2020년 11월 익명의 제보가 없었다면, 민간조사단의 조사도 없었고,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수력원자력도 월성원전의 저장수조들이 위험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들이다.

위험한 저장수조 어쩌나

지난 10월 7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월성1호기 저장수조에 대해 "근본적인 방법은 물을 다 빼고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는 겁니다"라면서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겨 2025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옮기겠다고 답변했다.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2025년이면 늦다. 월성1호기는 2019년 12월 24일 폐쇄했으나, 저장수조만 비정상으로 운영 중이다. 지금 당장, 올해부터 월성1호기 사용후핵연료 이송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월성 2, 3, 4호기 문제가 남아있다. 월성1호기 저장수조는 남쪽 외벽을 지하 9m까지 굴착하여 균열과 누수를 확인한 사례에 해당한다. 월성 2, 3, 4호기는 굴착을 안 했기 때문에 누수를 직접 확인하기 어렵지만, 저장수조 내부의 에폭시 균열은 민간조사단의 수중카메라 조사로 확인됐다. 월성 2, 3, 4호기도 다른 원전처럼 저장수조에 스테인리스를 덧대는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지난 9월 27일 경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용후핵연료를 맥스터로 이송하고 저장수조를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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