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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소농의 가치를 되살리는 미국의 '신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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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소농의 가치를 되살리는 미국의 '신소농'

[기고] 기후위기와 미국 소농 ②

인디언 원주민에게서 배우는 기후농업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농업은 기후변화 대응의 지혜를 원주민들에게서 구해야 할 것 같다. 애초에 개척자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준 이들이 바로 원주민들이다. 개척시대 당시 원주민들을 죽이고 내쫓는 무지 대신 미대륙에서 5000년을 혹독한 기후 조건을 극복하며 생존해온 그들의 농업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상생의 지혜를 구했더라면 오늘날 미국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원주민들의 지혜를 재해석하고 현대 농업에 적용하여 기후변화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아리조나 주의 원주민 커뮤니티는 조상들이 사막기후 속에서 작물을 재배하던 전통을 계승해 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아리조나 대학은 이들의 지혜를 현대의 태양광 기술과 접목해 가뭄과 고온에 최적화된 농법을 연구하고 있다.

오클라호마의 원주민 부족은 종자은행을 통해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는 작물들의 종자를 보존하고 나누는 소중한 일을 해내고 있다.

필자가 사는 켄터키 주의 소농들은 어떻게 기후위기를 대비하고 있을까?

말과 버번 위스키로 유명한 켄터키 농업은 제조업, 석탄업, 물류유통업과 함께 켄터키 대표 산업이다. 켄터키 농업도 미국의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켄터키 농장의 무려 2/3가(거의 소규모 가족농) 매매나 합병을 통해 사라졌다. 그 결과 켄터키 농장들의 평균 크기는 두배 이상으로 늘었고 2012년~2017년 5년간 켄터키는 미국의 어떤 주보다 더 많은 농지를 주택과 상업용 건물 개발에 잃었다. 필자가 사는 주택단지도 한 때 말 농장이었고 주변의 농장 땅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점차 주택단지나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것을 일상에서 목격하고 있다.

켄터키 주립대학 (Kentucky State University)은 켄터키 유일의 흑인대학(Historically Black Colleges & Universities: HBCU)이자 토지부여대학(land grant university)으로 과학적 농업의 지식과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소규모 가족농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특히 유명하다. 한 번에 $5000씩 두 번에 걸쳐 신청가능한 소농그랜트(Small-Scale Farmers Grant)는 농사자금에 쪼들리는 많은 소농들에게 아주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필자도 두 차례 SSFG 수혜자이다. KSU는 여러가지 농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Third Thursday Thing'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현장교육 프로그램으로 가난한 소농, 여성농, 소수민족농 등이 그 대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많은 주제들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돼 있다.

기후위기 시대 소농의 가치를 다시 되살리는 미국의 '신소농'

앞서 언급한 켄터키 농민연맹 (Community Farm Alliance)은 소농들의 권익을 대표하여 관련 정책에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인다. 농식품 산업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적극적 활동을 벌인다. 지난해와 올해 켄터키 동부지역에 홍수피해가 났을 때 농민들과 커뮤니티를 위한 구조와 회복 활동의 최선봉에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로는 특히 흑인농민들을 위한 지원사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 사회와 농업의 구조적 불평등으로 가난한 소농, 특히 마이노리티 농민들에게 기후변화의 영향이 더 혹독함을 감안할 때 CFA와 같은 로컬 비영리 농민단체들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USDA 통계에 따르면 미국농민의 95%가 백인이다. 미국 농부의 평균연령은 58세이며 점차 늙어가고 있고 농장 규모는 평균 441에이커에 달한다. 켄터키에서 로컬푸드 다문화 운동을 하는 필자의 주위에는 큰 농장을 소유한 은발의 백인 남성보다는 20~30대의 젊은 농부, 여성농부, 흑인농부, 난민과 이민자 농부들이 더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농업의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고 소농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 농부들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을 미국의 진소농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신소농이라 부르고 싶다.

독자들에게 켄터키 진소농들의 다양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으나 지면의 제약상 대표로 흑인농부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미국의 흑인인구 비율은 2021년 기준 12.6%이다. 그런데 미국의 흑인농부 비율은 1.3% 정도이다. 오랜 인종차별의 자국이며 생생히 살아있는 아픔이다.

미국 흑인농부의 비율을 인구비율에 맞게 끌어올리는 것이 미션이라고 말하는 켄터키 농부이자 커뮤니티 활동가가 있다. 본 반즈씨는 30대의 흑인남성으로 켄터키 농민연맹(CFA)의 직원이면서 켄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인 루이빌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이기도 하다. 300평의 땅에 채소를 재배하고 가축도 키운다. 수확물은 로컬 파머스마켓에서 팔기도 한다. 그는 도시농업과 흑인농부들을 주제로 하는 팟캐스트 진행자이기도 하다.

흑인농부들 중에는 반즈 씨 같이 사회운동을 하는 젊은 소농들이 많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흑인농민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대항하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차별과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세상에 드러나기를 꺼리는 흑인 농부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통계상의 수치보다 실제 미국 흑인 농민 수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켄터키 흑인농민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역사적인 움직임도 일고 있다. 켄터키 흑인농부들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반즈 씨는 답한다.

"우리 중에는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일반사무직도 있죠. 우리는 땅을 존중하고 흙을 만지며 신성한 노동을 하는 농업 생산자이자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들입니다. 세상에 먹거리 이상의 중요한 가치들을 제공하는 사람들입니다."

연결, 상생, 치유

필자는 2017년부터 약 4년간 켄터키 소농의 삶을 경험했다. 농업과 푸드가 가장 멋진 소통과 사회개혁의 도구가 된다는 믿음을 현실에서 그려내 보고 싶었고 로컬푸드 문화다양성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그렇게 용감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0.5에이커의 땅을 빌려 한국 농작물을 재배하고 한국음식을 켄터키의 멋과 맛을 더해 켄터키 K-푸드로 만드는 다문화 로컬푸드 사업 프로젝트였다. 언어장벽과 구조적 차별 등의 이유로 소수민족이 미국의 로컬푸드 시스템에 생산자로 참여하기란 녹녹치 않음을 잘 알기에 직접 좋은 예를 만들어 그 길을 먼저 가 보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멋진 미션이었지만 현실은 가시밭길이었다. 농사경험도 자금도 제로인 사람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번 사업은 아니었으나 소중한 배움과 삶의 경험을 얻었다. 농부의 가슴이 되어 눈물도 흘려보았고 기쁨의 미소도 지어보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깨달음은 '함께'의 가치였다. 진정한 소농이 생존하고 번성해야 지역사회가 살고 그래야 지구가 산다. 지구별의 치유를 위해서는 우리 각자 내면의 치유를 바탕으로 한 연결과 상생이 답이다. 너와 나로 분리된 마음과 너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경쟁구조에서는 연결도 상생도 치유도 불가능하다.

2017년 USDA 자료에 의하면 미국 농지의 40% 정도가 앞으로 20년 이내에 소유권 이전이 일어난다. 농부들은 늙어가고 그 자식들은 농촌을 떠나고 있다. 문제는 미국 농지가 농부가 아닌 빌 게이츠 같은 개인이나 거대기업 그리고 외국자본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농지는 줄어들고 농부는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필자는 6년 전 같은 도시에 사는 아프리카 난민농부들과 지역의 농장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연결해 준 적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그 농장에서 열심히 아프리카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개인의 노력을 넘어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농지를 보전하고 소농들을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사를 사랑하는 초보농부, 도시농부, 여성농부, 원주민 농부, 흑인농부, 난민농부, 이민자 농부. 이들이 미국의 진소농이며 신소농이다. 조상들의 지혜와 현대 농업기술을 접목하고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생태계를 회복하고 작물을 다양화하고 지역사회를 재생하고 도농간, 문화간, 국가간 연대를 통해 건강한 글로컬 푸드 시스템을 만들어 상생을 도모한다면 기후변화의 거센 파도를 우리 모두 함께 잘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자타불이. 자리이타. 우리는 하나다. 하나일 때 우리는 치유된다. 

* 안정현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를 거쳐 켄터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캔터키에서 농사를 지으며 25년째 살고 있다. 농업과 먹거리를 통한 사회적, 문화적 네트워크와 소통을 위해 일하고 있다. 현재 '배나치'(배움·나눔·치유)라는 여행사를 설립, 농산어촌 삶의 도농간, 문화간, 국가간 연결을 통한 창의적인 삶의 체험과 상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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