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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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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의 하늘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경기 가평 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노루목의 하늘

노루목의 하늘김남권

아버지의 하늘은 두 개였다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낳고 기른 땅 황해도에서

철원을 거쳐 가평에 다다르기까지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4후퇴 때 남하하여 대금산 자락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아남았지만,

부역 혐의자라는 낙인을 찍은

서른두 명과 함께 인민군에게, 경찰에게,

학도의용대에게 총살 당한 삼백 여덟 원혼들 사이

당신의 어머니마저 화전민 집터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밤낮으로 진영이 바뀌는 동안, 인민군에게

국군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도 여자도 노인도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했다

외서면에서 상면에서 하면에서 설악면에서

노루목에서풀잎처럼 쓰러져갔다

밤새 피 냄새에 몸부림치다 눈을 뜨면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비릿한 피 냄새로 가득한

흙구덩이 속 물컹물컹한 몸뚱이들로 뒤엉켜 있었다

곡소리도 없고 제물도 없이

이렇게 묻히고 마는 걸까

무릎이 꺾이고 팔목이 꺾이고 목이 부러져 나갔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세 살 난 순덕이, 열두 살 난 바우, 서른여덟 살 향란이

마흔 두 살 만득이, 일흔 한 살 칠성이

모두 저승길 동무가 될 줄 몰랐다

아직은 대지가 푸르른데 서둘러 붉은 단풍이 들 줄 몰랐다

자갈밭이 온통 노을빛으로 숨죽이며 불타오를 줄꿈에도 몰랐다

▲ 경기도 가평 노루목 고개 민간인 학살. ⓒ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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