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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남자처럼 잘랐어, 그래야 안 달려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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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남자처럼 잘랐어, 그래야 안 달려드니까"

도시가 배제해온 어떤 여성들의 이야기 … 민달팽이유니온, '집과 젠더' 포럼 개최

"남자처럼 보이려고 머리를 잘랐다니까. 왜냐? 안 달려들잖아."

- '2018 홈리스추모제 여성팀' 구술 인터뷰 내용 중

정책적인 배제 속에서 '도시에 머물 수 없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18일 소개됐다.

민달팽이유니온, 빈곤사회연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연희동 연희달팽이집에서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곳에서 살 권리"를 주장하며 '집과 젠더' 포럼을 개최했다.

청년 주거, 성매매, 홈리스, 청소년 등을 주제로 각각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참여 단체들은 이날 포럼에서 "젠더 관점이 부재한 기존의 정책 틀이 배제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제 발표에 나선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특히 남성 홈리스와는 상반된 처지에 놓여있는 여성 홈리스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근본적인 문제는 성인지적 관점이 부재한 정책 구성"이라고 꼬집었다.

거리에 만연한 성폭력 등이 무료급식소, 응급구호방 등 홈리스 지원 시설에 대한 여성 홈리스의 접근을 어렵게 하면서 "도시 속에 여성 홈리스로서 머물 공간이 없"는 상황인데, 이를 고려한 정책이 부재하다는 게 이 활동가의 지적이다.

이 활동가는 발표에서 서울역 등 홈리스 밀집 지역을 찾아가 홈리스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는 '홈리스 인권지킴이' 활동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활동 때마다 서울역 인근을 몇 시간을 돌아봐도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성 홈리스의 수는 손에 꼽았다.

"남성에 비해 여성 홈리스의 수 자체가 적기도 할뿐더러, 여성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대화를 피하려 하는 등 경계태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 활동가는 "여성 홈리스가 마주하는 곳곳에서의 성폭력과 희롱 등은 그들의 일상을 경계 태세로 몰아넣고" 그럴수록 여성 홈리스는 비가시화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여성 홈리스의 비가시화'가 홈리스를 위한 정책 설계 과정에까지 반영된다는 점이다.

2010년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영향평가'에 따르면, 거리 노숙 상태의 여성 홈리스 중 찜질방, PC방 등 유료 시설에서 주로 생활하는 이들이 53.3%에 달했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비용을 감수하는 셈인데, "홈리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당국의 홈리스 실태조사는 이렇게 유료 시설에 머무는 여성 홈리스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 활동가는 "(특정 성별에 대해) 미흡한 통계로 정책이 마련되니 여성 홈리스들은 더욱 갈 곳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빈곤사회연대 측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내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은 남성용 시설의 경우 서울역 등 홈리스 밀집 지역에만 3개소가 존재했지만 여성용 시설의 경우 홈리스 밀집 지역과 동떨어져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에만 1개소가 존재했다.

빈곤사회연대 측이 수집한 사례 중엔,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 지인 집에 얹혀사는 한 여성 홈리스가 무료급식소인 따스한 채움터에서 출입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었다.

"밥까지 차려먹긴 염치없고 미안"해 매일 새벽마다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그는 채움터에서 "집 있는 아줌가 여기를 왜 오느냐"는 등의 폭언을 들어야했다. 여성 홈리스의 입체적인 처지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단적인 사례다.

이 활동가는 △안전 확보 미흡 및 시설화된 운영 중심의 임시주거지원 사업 △가정폭력 등 여성 홈리스의 주요 주거 이탈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는 가족중심 복지지원 체계 등을 현행 홈리스 지원대책의 사각으로 지적하며 '안전과 공간'이라는 도시 주거의 필수 요건에서 "모두 탈락된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여성 홈리스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선 여성 홈리스 이외에도 성매매 여성, 탈 가정 여성 청소년, 혹은 주거정책의 이면에 자리한 청년 여성들 등의 사례가 도시정책 및 주거정책의 사각 속에 놓인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사례로 소개됐다.

포럼을 주최한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 민달팽이유니온의 지수 위원장은 "개인의 몸, 국적, 가족구성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며 "'주거'에 포함된 도시적 맥락, 인간관계, 신체, 섹슈얼리티, 노동 의제가 배제되는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이번 포럼의 취지를 밝혔다.

18일 오후 1회 차를 진행한 '집과 젠더' 포럼은 오는 20일까지 6회 차에 걸쳐서 진행될 예정이다. 주거권과 관련한 가부장제의 문제, 장애 여성 권리, 가족구성권, 이주여성 재생산권 등이 앞으로의 주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서울역 계단에 마련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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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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