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등한 집값, 그에 따라 또다시 높아진 전월세…. 세입자를 살기 힘들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세입자를 지켜줄 이렇다 할 법이나 제도도 요원하다. 여전히 을의 위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과 정치권에서 언급되는 부동산 정책은 말 그대로 '부동산' 자체에만 머물러 있다. 사람 중심이 아닌 재물 중심의 정치적 담론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람 중심의 '주거권'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집걱정없는세상연대, 서울하우징랩 공동주최로 5월부터 11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2022 주거권 대전환 포럼'을 진행한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 포럼을 정리해 기사로 올릴 예정이다.
영국의 기후 정보 웹사이트 <카본 브리프>는 1850년부터 올해 5월 사이의 이상기후 현상 504건의 연구 보고서 400여 개를 분석한 결과, 71%가 인간 활동 영향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날이 지날수록 빨라지고 있다.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연평균 기온은 13.3도로 체계적인 기상관측이 이뤄진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가장 높았던 2016년보다 불과 0.1도 낮은 수준이다.
더 문제는 이러한 기후위기를 피하기는 요원하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보면 현재 진행 중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성공해도 평균 기온의 상승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상승 폭은 상당히 낮출 수는 있다. 실제 이를 위해 산업 전반 분야에서 탄소 중립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시행되고 있다. 건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냉‧난방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여러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녹색건축 활성화 방안'을 보면 그린리모델링 사업의 확대와 제로에너지빌딩 보급의 조기 추진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서울하우징랩, 집걱정없는세상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영등포구 하우징랩에서 열린 '2022 주거권 대전환 포럼'의 네 번째 포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주거정책'에 발제자로 나선 추소연 RE도시건축연구소 소장은 현실적으로 건물의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저 에너지 성능 기준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체 건물 중 주택이 차지하는 에너지 소비 비중 45%"
추 소장에 따르면 전체 건물의 에너지 소비 중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45%나 된다. 특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아닌 다가구, 단독주택에서의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크다. 이는 이들 주택 형태가 노후해 추위와 더위에 취약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추 소장은 "전국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의 76%는 외벽 단열 두께가 5㎝ 이하로 충분히 냉난방이 되지 않는 주택"이라며 또한 "전국 주거용 건축물의 75%, 연면적의 48.9%가 20년 이상 된 주택들"이라고 설명했다. 주거지의 단위면적당 1차 에너지(냉난방) 사용량은 노후도에 따라 증가하는데, 그 비율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다.
추 소장은 "더구나 이들 노후주택에는 60대 이상이 대부분 살고 있고, 점차 젊은이들로 교체되고 있다"며 결론적으로 저소득층일수록 노후주택에서 생활하고 그에 따른 냉난방 부담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축공간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 단독주택의 약 48.5%의 가구주 연령이 60대 이상인데, 이들은 여타 다른 주거형태 거주자에 비해 월평균 소득은 가장 적었으나 월평균 소득 대비 생활비 비율은 79%로 타주택 유형 대비 매우 컸다.
추 소장은 "이런 상황에서 노후 주택을 그대로 둘 경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며 "기후변화에 적응한다는 건 폭염과 한파에 적응하는 것"인 만큼 결국 "변화에 적응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온실 가스를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후 주택의 기후 변화 대응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더구나 대다수 노후 주택에 실거주하는 사람들은 임차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살지도 않는 집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한다. 임대인은 반대로 자신이 거주하는 집이 아니니 투자를 하려 하지 않는다.
다세대 등 주택을 쪼개서 권리를 나눠가진 형태의 주택은 주택에 사는 모든 가구가 리모델링에 동의해야 변화를 꾀할 수 있기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추 소장은 "전체 가구의 85%가 임대 또는 집합소유(다세대 등)이고 약 15%만이 리모델링 등에 주체적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 적응 위한 비용, 경제성 문제로 접근해선 안 돼"
최근 유럽연합(EU)에서는 에너지 진단과 성능기준에 따라 개별 건축물의 단계적인 리모델링을 통한 탄소중립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벨기에의 주택증명서(Woningpas), 프랑스의 에너지효율증명서(Passeport Efficacité Energétique), 독일의 개별 건축물 리모델링 로드맵(Individueller Sanierungsplan) 등은 그 사례다.
주목할 나라는 영국이다. 최저 에너지 성능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현재 E등급) 이하의 건축물은 임대와 매매를 할 수 없도록 한다. 민간 임대용 건축물의 기준을 2030년까지 B등급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추 소장이 말하는 규제는 영국에서 도입한 '최저 에너지 성능 기준'이다. 최 소장은 "영국의 경우, 이를 2018년 새 임대계약에 적용했고, 2020년부터는 진행 중인 주거용 건물 임대계약에, 2023년부터는 진행 중인 상업용 건물 임대계약에 확대 적용한다"며 "단계적 성능개선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추 소장은 이 제도를 한국의 현실적 상황에 맞춰 적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추 소장은 "리모델링의 모든 비용을 60대 이상의 수입이 없는 집주인들이 부담하기란 어렵다"며 "맞춤형으로 사회적 비용을 지원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경우,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리모델링 비용을 일정 보전해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에너지 관련 리모델링(단열, 태영광 등) 비용의 8%를 연간 임대료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추 소장은 "내진설계기준 강화 등을 언급할 때 비용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기후변화의 적응을 위한 성능개선 비용은 경제성 문제로 접근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건축물의 제로에너지 전환에 대한 지원과 규제를 재산권 침해로 보기보다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고 기후 위기에 보편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으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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