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인 고등학생 풍자 만화 '윤석열차'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엄중 경고'가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야권에서는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여유를 주문했다. 야당에서는 공모전 수상작에 대한 '엄중 경고'는 후원사인 문체부의 권리라는 주장은 물론 '어린' 학생이 정치화된 내용을 내는 건 옳지 않다는 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5일 "멸콩은 되고, 윤석열차는 안 됩니까?"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올해 1월 윤 대통령이 이른바 '멸공 챌린지'에 대해 밝힌 의견"이라며 "왜 윤 대통령의 기본자세는 표리부동인가. 본인의 표현만 자유롭고, 타인의 표현은 '엄중 경고'하고 '후원명칭 승인 취소' 등의 위협을 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정의 자유가 아니라 전제군주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멸공 챌린지'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멸공, #반공방첩" 등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자 국민의힘 인사들이 이에 화답한 사건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신세계 계열사 이마트를 찾아 '멸공'을 뜻하는 멸치와 콩을 사는 사진을 올렸다. 나경원 전 의원, 최재형 의원 등도 비슷한 사진을 올렸다.
박 의원은 이어 "학생이 창작을 통해 정치적 주제를 다룬 것이 왜 문제되나"라며 "대한민국의 오늘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단 하나 꼽으라면, 바로 청소년의 창작 욕구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나라가 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박 의원은 "우린 선거에서 왕을 뽑은 것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국민들의 욕과 비난보다 무관심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라고 썼다.
박 의원은 "자유를 사랑하는 대통령이라면 문체부를 통해 화를 낼 게 아니라 '윤석열차' 그린 학생에게 대선 때처럼 '석열이형네 밥집'이라도 초대해서 밥이라도 한 끼 해먹이면서 격려하라"며 "그게 나라의 어른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도량"이라고 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고등학생에게는 현직 대통령을 만화로 풍자할 자유가 없나? 아니면 현직 대통령이나 영부인, 검찰을 풍자한 작품은 수상작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나? 윤석열 정부의 금과옥조 '자유'는 역시나 말뿐이었던 건가"라고 썼다.
장 의원은 "문체부에 묻는다.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이 왜 그 자체로 만화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행사 취지에 어긋나는 일인가"라며 "문체부가 무슨 근거로 엄정 조치를 취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역풍을 맞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혹여나 대통령실은 이번 일로 문체부 팔 비틀 생각 말고 그냥 허허 웃고 지나가시기 바란다"며 "웃자고 그렸는데 죽자고 달려들면 더 우스워진다. 최고권력자로서 비판의 목소리에도 눈과 귀를 여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與 "엄중 경고는 문체부 권리…'어린' 학생 정치화 옳지 않아"
반면 여당에서는 문체부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종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에서 "학생 만화공모전을 주최한 만화영상진흥원인가? 정부로부터 연간 100억 원이 넘는 지원을 받는 걸로 안다"며 "그리고 그 행사를 하면서 문체부 후원을 요청해 문체부가 후원한 걸로 돼 있는데 그 안에 보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후원을 빌미로 작품 선정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비대위원은 "개입했으면 이게(윤석열차) 금상을 받을 수 있었겠나"라며 "그거(엄중 경고)는 후원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권리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심사 과정에 대해서도 김 비대위원은 "이 그림은 2019년 <더 선>지에 나온 트럼프와 보리스 존슨을 풍자하는 내용을 누가봐도 그대로 표절한 거"라며 "심사위원님들께서 <더 선> 지에 나온 일러스트 내용을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 부분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한 게 아니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투표권이 없는 '어린' 학생이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도 꺼냈다. 김 비대위원은 "그 고등학생이 투표권이 있는 연령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어린 학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에 좀 더 어린 학생이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이 너무 청지적인 부분에 대해 정치화된 내용을 내는 것 자체가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감장에도 등장한 '윤석열차'…野 "표현의 자유 침해" vs 與 "본질은 표절"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대상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야당 의원들이 문체부의 '경고'가 헌법 가치인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지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에게 묻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여야 간의 설전이었다.
박범계 의원은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며 김 처장의 의견을 물었고, 김 처장은 "그림만 봤을 때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비판,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표절 의혹 때문에 논란이 크다. 외국 작가 작품을 그대로 베낀 것과 다름없다"(조수진), "본질은 표절이다. 2019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비판하는 정책 카툰을 표절한 것"(유상범)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문체부는) '정치적인 문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한 건 학생의 만화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경고한다'고 했다. 표절이란 단어 자체가 안 나온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문체부 입장은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논문 표절 논란을 끌어와 "표절을 따진다고 하면 대학의 학문 자유와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킨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을 얘기하는 게 맞다"(김남국), "김건희 여사 논문을 떠올려 보면 이 만화는 완전한 창작으로 보인다"(기동민) 따위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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