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만남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사실상 일본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인 것과 관련, 외교부는 양측이 면밀히 조율한 결과라며 이른바 '저자세 외교' 논란을 일축했다.
22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한일 정상 간 약식회담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통령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것"이라며 "그래서 양 정상이 직접 만나 양국의 주요 현안, 한반도 정세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일본에서는 '간담회'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약식회담'이라고 칭하는 등 그 개념조차 명확히 합의되지 않은 채 진행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일본의 간담과 한국의 약식회담이 의미가 다르지 않다고 해명했으나 만남 과정을 돌아봤을 때 양측 정부가 이번 만남에 가지는 무게감은 분명히 달라 보였다.
우선 만남 전부터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흔쾌히 합의됐다며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바로 다음날인 16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외무성 간부가 "(정상회담) 합의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전하면서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18일 <산케이신문>은 한일 정상회담 합의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며 한국 측에 항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급기야 21일 <아사히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기시다 총리가 한국 대통령실의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며 "그렇다면 반대로 만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국은 만나자고 하지만 일본은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한국이 일본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고 이는 양측 정상 간 만남의 형식에서도 드러났다.
한일 정상은 21일(현지 시각) 낮 12시 23분경 만남을 시작했는데 장소는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이 있는 건물이었다. 윤 대통령이 해당 건물로 찾아가 만남이 성사된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취임 이후 첫 만남"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이 무색하게도 이번 만남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국기도, 동행한 취재진도 없는 썰렁한 상황에서 30분 간 진행됐다.
만남 이후 일본은 이를 외부에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22일(한국 시각) 현재 일본 총리실 홈페이지 영문판에는 지난 20일과 21일(현지 시각) 각각 터키 대통령‧필리핀 대통령과 만났다는 기록이 있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만남에 대해서는 명시된 바가 없다.
만남을 통해 양측이 특정한 합의를 이룬 것도 아니다. 22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정상 간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정상회담을 가졌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는 양 정상의 의지를 확인한 것은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는 곧 양측이 강제동원 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해 구체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렇듯 만남 전부터 만남 내용, 만남 이후 대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성과를 내는 것이 어려워보이는 상황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상과 만남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에 대해 '저자세' 외교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당국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번 정상회담은 일측에서 주관하는 차례였고, 회담 장소는 기시다 총리가 참여하는 행사 일정이 있었고 우리 대통령도 이동 동선상 그 장소에서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측면이 있어 한일 간 조율에 따라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정상이 일부러 (일본 정상을) 찾아가서 만난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회담 개최 이전에 한일 양국 간 긴밀한 소통과 협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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