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의원을 꼽히는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연방 차원에서 임신중지술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24일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한 보수 대법관들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은 것은 기독교 극우세력(복음주의)의 오랜 숙원이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오랫동안 보수성향의 연방대법원 판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연방대법원을 통한 보수적 가치의 제도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복음주의 세력의 오랜 숙원의 달성이 정치적으로는 공화당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8월 보수 텃밭인 캔자스주에서 주민투표 결과 임신중지권 보호를 명시한 주헌법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더 높게 나와 공화당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공화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일부 주에서 소위 '트리거 법'으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자마자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기세를 뽐냈지만, 이제 채 두달도 안 남은 중간선거에선 공화당에 불리한 변수로 작용할 조짐이 보인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최측근 중 하나인 그레이엄 의원이 13일(현지시간) 연방 차원의 임신중절 금지 법안을 발의하고 나선 것이다. 이 법안은 강간, 근친 상간,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임신 15주차 이후 임신중절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6월 연방 대법원 판결 이후 연방법 차원의 임신중절 금지 법제화는 처음이다.
그레이엄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을 공화당이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레이엄 의원이 이런 법안을 내놓은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보수표를 결집시키기 위한 깃발인 '임신중절 금지'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판결 이후 각 주에서 우후죽순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임신중절 금지법이 도입됐다. 임신 6주, 강간과 근친상간 등의 경우도 예외로 허용하지 않는 등 과도한 법이 도입되면서 오하이오주에서는 10세의 강간 피해 아동이 인디애나주로 이동해 수술을 받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러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여론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트럼프 진영에서 임신 1기에 해당하는 15주라는 시한을 제시하고, 예외 조항에 대한 기준선도 제시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레이엄 의원은 법안 발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취지를 설명하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이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할 것"이라고 법안을 발의한 이유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공화당을 하원 다수당으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다.
매코널 "임신중절은 주법으로 결정할 문제" 선 그어…중간층 눈치 보기
그러나 그의 바람대로 임신중절 문제를 전면화하는 것이 공화당의 의석 수를 늘려줄 것인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미치 매코널 대표는 그레이엄 의원의 법안에 대해 "대부분 동료 의원들은 이 문제는 주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일이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중간층의 표심까지 잡아야 이기는 선거에서 임신중절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공화당 입장에서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이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레이엄의 법안 발의는 트럼프 진영의 유불리로만 좁혀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복음주의 세력에게 진정한 우군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내의 쟁투를 위한 밑밥인 셈이다.
민주당 쪽에서 내심 환영하는 모양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그레이엄 의원의 법안을 거론하며 "이 법은 미국의 50개 모든 주에서 여성의 권리를 뺏어갈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임신중단권 수호를 위한 싸움에 앞장서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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